엄마가 되어가는 기록
솔직히 이 기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기사 이순신 님의 난중일기도 김구 님의 백범일지도 누구를 위해 썼을까.
가장 혼란한 시절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썼겠지.
나도 그런 마음으로, 기록을 시작해 본다.
2024년 8월 중순 즈음.
아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테스트기를 해봤다.
뭔가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몸 상태가 예전이랑 조금 다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갓 신혼생활을 시작하느라 빠듯한 살림에 테스트기 사는 것도 조금 부담이 되어서
쿠팡에서 5개 8000원 정도 하는 테스트기를 사서 3일 내리 아침마다 테스트를 해봤는데
날마다 아주 조금씩 진해지는 선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복잡했다.
내 삶에 언젠가 아이가 있었으면 했고,
짝꿍의 나이도 적지 않아서 결혼하고 아이를 염두에 두고 있긴 했지만, 이제 겨우 신혼 1달 차인데.
게다가 건축에서 그림책으로 전향한 지 이제 2년이 된 나는
올해 말 첫 그림책 출간과 더불어 많은 일들을 벌려둔 상태였고
거기에 예기치 못한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보태어졌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2024년 8월 21일.
산부인과에 가서 땅땅땅, 확인을 했다.
3주 그리고 5일이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빨리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병원에 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스스로의 몸을 빨리 알아차리는 편인 것 같다고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피검사 수치가 높아 임신확인서도 정말 빨리 뗐다.
(덕분에 그 주에 예정되어 있던 순천 여행에 특실을 탈 수 있었다. 고마워 감자!)
그즈음 나는 한참 '감자'에 빠져 있었다.
그전에는 한동안 '눈사람'에 푹 빠져 눈사람 그림책을 오래 그렸는데.
아빠가 치악산에서 감자를 한 박스 사 오고 나서부터였나,
길 가다 감자를 줍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안내문에 감자 주인을 찾는 문구를 보기도 하고.
이상하게 자꾸 눈에 밟히는 감자 때문에
감자에 대한 생각들을 엮은 책을 만드는 중이었다.
특별하고 비싼 재료는 아니지만, 어디서든 기꺼이 멋진 조연이 되어주는.
흔한 덕분에 배고픈 사람들을 배고픔에서 구해줄 수 있었던.
왼손으로 엉성하게 그려도 대애충 완성할 수 있는 넉넉함이 있는.
그런 감자에게 홀랑 빠진 나는, 태명을 '감자'로 골랐다.
그리고 나랑 짝꿍은 가족들에게 감자를 나눠주며 감자의 존재를 알렸다.
우리는 그날 감자를 테이블에 모아두고 신나게 웃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