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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Dec 19. 2023

2023년 장르 음악 결산

장르 고인물이 말아주는 2023 장르 음악 지형도

2023년 한 해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참으로 뻔한 말이지만 올 한 해는 양질의 음악들로 들을 것이 풍족했던 해가 아니었나 싶다.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장르들은 서서히 몰락하고 다른 성질의 장르들끼리의 융합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던 해였으며, 그 속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전 음악의 충실한 재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힙합과 알앤비, 락과 팝이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어떤 장르가 대세였고 어떤 앨범이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아보자. 

(각자의 고유한 영역 속에서 큰 변화 없이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는 포크와 재즈, 혹은 메탈 음악은 본 글에선 제외한다.) 


2023년 가장 좋게 들었던 앨범들.




힙합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숙여 언더를 보게 하라 


베실베실 선정 2023 힙합 앨범 Best 5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은 부진으로 고전했던 한 해였다. 상반기에는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곡은 단 한 곡도 없었으며, 하반기 들어선 Doja Cat의 ‘Paint The Town Red’나 Drake의 ‘Slime You Out’, ‘First Person Shooter’가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그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곡이 좋아서였기 보다는 순전히 가창자의 인지도에 기댄 것이 사실이다. 단순 성적뿐 아니라 퀄리티 면에서도 Travis Scott의 [UTOPIA]와 Ken Carson의 [A Great Chaos] 말고는 크게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없었기도 하다. ‘Old Drake’를 천명하며 나온 Drake의 [For All the Dogs]는 민망할 정도로 별로였고, 힙스터들의 기대를 모았던 Kaytranada와 Amine의 합작 앨범 [Kaytramine]는 나쁘진 않았지만 여러 번 챙겨 들을 만큼 좋지도 않았다. 올해 발매한다던 A$AP Rocky의 [Don’t Be Dumb]은 올해는 맥거핀으로 남게 될 확률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Lil Uzi Vert나 Lil Yachty 같은 기존의 트랩 랩퍼들은 네오 싸이키델리아나 트랩 메탈 같은 장르로 외연 확장을 시도하며 탈 트랩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내년의 메인스트림 힙합 역시 순탄치 않게 흘러갈 전망이다.


메인스트림 힙합의 자존심... 과 동시에 10년 전에 칸예가 이미 시도했던 음악.


그렇지만 시선을 조금만 낮춰 언더그라운드의 장르 힙합을 본다면 참으로 들을 앨범이 많다. Nas와 The Roots 출신의 Black Thought의 신보는 그들의 명예는 운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증명했으며, Mckinley Dixon과 Noname의 앨범들은 재즈 힙합 씬의 자존심을 지켰다. 특히 괄목한 것은 JPEGMAFIA와 Danny Brown의 콜라보 앨범 [SCARING THE HOES]이다. 각종 매체에서 100점을 맞음과 동시에 빌보드 200에도 84위로 진입하며 익스페리멘탈 힙합이, 그리고 장르 힙합이 서서히 대중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의미 있는 앨범이었다.


이런 앨범이 어떻게 빌보드에?


10년대 중후반 이후 장르 힙합을 지배해 온 앱스트랙트 힙합 ~ 드럼리스 힙합 역시도 특히나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해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billy woods는 솔로로, 그리고 듀오 ‘Armand Hammer’로 각각 [Maps]와 [We Buy Diabetic Test Strips]를 발매해 두 작품 모두 AOTY 급이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Mike와 Aesop Rock, Earl Sweatshirt 등 다른 전설들의 앨범도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랩퍼 slowthai의 앨범 [UGLY]도 미국에선 별다른 성과를 얻진 못했지만 영국 내에서는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 잡은 훌륭한 앨범일 것이다.


billy woods는 정말 전설이다.


이런 상황이니 Westside Gunn의 [And Then You Pray for Me]이 너무나도 아쉽다. 그를 비롯해 Conway the Machine과 Benny The Butcher와 같은 Griselda 소속의 랩퍼들은 2020년대 계속해서 소위 말하는 ‘네오 붐뱁’, 즉 갱스터 힙합과 드럼리스 힙합이 섞인 음악을 선보이며 붐뱁의 재부흥을 위해 노력해왔다. Scott의 [UTOPIA] 앨범에 Westside Gunn이 피쳐링으로 참여한 것은 (게다가 기존 Griselda 사운드에 가까운 트랙이 Scott의 앨범에 수록된 것은) 지난 그들의 행보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목을 받은 시점에서 발매한 신보가 이전 앨범들만큼의 퀄리티만 나왔다면 더더욱 그 장르가 큰 사랑을 받았음은 뻔했겠지만, 이번 Westside Gunn의 앨범은 트랩이 섞인 어정쩡한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져 모두를 실망시켜버리고 말았다. 이릉 전투에서 결정적인 순간 진을 잘못 쳤다는 것을 전보를 받은 ‘삼국지연의’ 속 제갈량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98년 데뷔한 거장의 품격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리바이벌??


베실베실 선정 2023 락 앨범 Best 8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온 포스트 펑크, 아트 펑크 계통의 음악들이 여전히 장르 씬을 장악하고 있다. 작년에는 런던 윈드밀 씬의 3대장 중 Black Country, New Road와 Black Midi가 장르 락 계의 뜨거운 감자였다면, 올해는 남은 1팀인 Squid가 출격해 [O Monolith] 앨범 또한 호평을 받았으며 멤버 변화를 겪은 Black Country, New Road의 라이브 앨범 역시 좋은 앨범이었다. (물론 지금의 BC, NR은 포스트 펑크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긴 했다.) 특히 올해는 shame의 [Food for worms], Asia Menor의 [Enola Gay], Model/Actriz의 [Dogsbody], Protomatyr의 [Formal growth in the Dark] 등이 그 포스트 펑크의 기조를 이어갔는데,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의 포스트 펑크 음악은 사운드가 조금 더 Noise Rock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겠다. 80년대의 Joy Division, This Heat, Wire, Television 등의 포스트 펑크를 계승한 00년대의 Interpol과 The National의 아티스트들은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다시 전성기를 맞은 지금의 포스트 펑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노이즈와 펑크, 인더스트리얼이 완벽하게 배합된


포스트락과 슈게이징 계열에서도 꾸준하게 수작 이상의 앨범이 쏟아져 나오긴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씬을 바꿀 만큼 대단한 앨범은 없던 것도 사실이다. 포스트락 장르의 대부 Swans의 [The Beggar]도 호불호가 갈렸으며, 마찬가지로 오랜 커리어를 자랑하는 Slowdive나 Sigur Ros, Yo La Tengo의 앨범 역시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인상 깊은 앨범이라면 한국의 밴드 파란노을의 [After the Magic]이나 Yves Tumor의 [Praise a Lord …], 혹은 Sprain의 [The Lamb as Effigy] 정도였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게 들은 올해 포스트락 앨범은 영국 맨체스터의 밴드 Maruja의 [Knocknarea]였는데, 앨범 커버부터 Slint의 [Spiderland]를 잔뜩 오마쥬한 것처럼 보이는 이 앨범은 음악에서도 역시 Slint 특유의, 초기 포스트락 사운드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포스트락 장르의 음악이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하는 지금 시점에 원형으로 돌아간 듯한, 초기 포스트락의 음악이 되려 가장 큰 임팩트를 남겼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슈게이징 음악은 이제 장르 그 자체로 순수하게 쓰인다기보다는 다른 음악들의 서브 장르로서 활용되는 느낌이다.


포스트락 붐은 온다...



더욱 퓨전 하거나, 더욱 복고이거나.

베실베실 선정 2023 R&B 앨범 Best 5

이전 고멘트 음악 칼럼에서도 다뤘듯이, 지금은 피비 알앤비와 복고 음악 열풍을 넘어 지금은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네오 소울과 같은 특정 장르 하나로 앨범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기에 가깝다. 올해 인상 깊었던 앨범들로 예를 들자면, Sampha의 [Lahai]나 Kelela의 [Raven], 혹은 메인스트림의 PinkPantheress나 Tinashe 등은 각자의 얼터너티브, 콘템포러리 작법에 개러지나 드럼 앤 베이스와 같은 브레이크비트 계열의 드럼 소스를 결합한 음악을 선보였고, Amaarae나 Janelle Monae와 같은 아티스트는 최근 유행하는 아프로비츠 장르를 퓨전 하기도 했다. 물론 10년대 후반부터 내려져 온 네오 소울과 알앤비, 그리고 약간의 몽환 (혹은 싸이키델릭)을 섞은 음악. 즉 Kali Uchis 라거나 Victoria Monet, Daniel Caesar, Liv.e, L’Rain의 음악들도 제법 괜찮은 성적표를 받으며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유행하는 R&B 장르의 완벽한 예시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복고로의 완전 회귀한 음악들이다. 이전의 복고 (그러니까 10년대 중반의 훵크, 디스코 열풍이나 10년대 후반과 20년대 초반의 신스웨이브, 누디스코 열풍)까지는 콘템포러리 알앤비나 얼터너티브 알앤비와 같은 현대의 알앤비 장르의 하위 격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올해는 그보다 더 본격적으로 예전 장르 음악 자체를 구현한 앨범들이 인상 깊었다. 20년부터 Disco 음악을 내세웠던 Jessie Ware는 [That! Feels Good!]을 통해 전작 [What’s Your Pleasure?]보다 더 지독하고 철저하게 80년대 디스코 음악의 재현을 시도했으며 Lonnie Holley나 흑인 음악 밴드 ANOHNI and the Johnsons와 Gabriel 등 역시 70년대의 Soul 음악을 주 무대로 삼았다.


후반부 스트링은 70년대 필라델피아 소울의 지독한 재현이다.


현재 알앤비 씬은 그 어떤 장르들보다도 더욱더 장르적 소모가 큰 씬인 것만 같다. 몇 년 주기로 계속해서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이 씬에서, 다음 키를 잡을 게임 체인저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Frank Ocean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결국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The Weeknd의 뒤꽁무니만 쳐다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희망을 걸어본다면 그나마 PinkPantheress가 아닐까?


들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차세대 게임 체인저



그 외 음악들은 지금


베실베실 선정 2023 팝 앨범 Best 8


여러 장르 음악이 서로 결합하고 메인스트림을 넘보기까지 하는 지금, Carly Rae Jepson 류의 정통 댄스 팝, 일렉트로 팝 음악이 두각을 보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The Loveliest Time]은 이전까지의 Jepson 음악이 그렇듯 여전히 믿고 들을 만한 작품이었으며, Jepson 외에도 Caroline Polachek의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나 Hannah Diamond의 [Perfect Picture], Slayyyter의 [STARFUCKER] 같은 앨범이 그랬다. 



드림 팝과 배기, 글리치 등이 자유롭게 섞인 포크트로니카의 상위 격 장르. 인디트로니카 계열의 음악도 풍성했는데, George Clanton의 [Ooh Rap I Ya]는 특유의 칠웨이브 사운드에 싸이키델릭, 배기 음악을 얹었으며 yeule의 [Softscars]는 드림 팝을, Yaeji와 Ohzora Kimishima는 글리치 사운드를 메인으로 택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underscores라는 밴드의 [Wallsocket]은 락 사운드 위에 인디트로니카 감성을 섞어 역시 좋은 평을 받았다. 이러한 장르들은 10년대의 네오 싸이키델리아, 드림 팝 음악의 연장선으로 느껴지는데, 마찬가지로 기존의 큰 장르들 하나로는 식상해진 시기가 온 지금 인디 씬에서도 지금처럼 여러 장르의 퓨전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중도둑 나와!




By 베실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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