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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an 29. 2023

사랑한 노래들 | 마음을 채워 완성한, 비어있던 노래

민제(MINJE) - 사랑은, (2022)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는 평일 아침마다 자전거를 탔다. 아르바이트 출근 때문이었다. 한쪽 이어폰을 꽂은 채 대략 3~4km 정도 떨어진 택배 물류센터까지 페달을 밟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또 출퇴근 길에 인적이 드문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시기여서 흔한 이별 노래를 듣다가 곧잘 눈물을 글썽였는데, 자전거를 타면서도 그랬다. 지구에서 가장 슬픈 사람인양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차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때 제일 많이 듣던 노래가 ‘사랑은,’이다. 첫 정규앨범으로 2018 한대음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아티스트, 민제(MINJE)의 당시 신보. 여느 곡들과 마찬가지로 신곡 발매 목록을 체크하다가 별생각 없이 플레이했지만, 듣자마자 느꼈다. 앞으로 이 노래를 사랑하게 될 거란 걸. 그렇게 이 노래와 연이 닿았다.


민제가 기존에 추구하던 얼터너티브 알앤비 스타일이 아닌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곡이라는 점이 의외였다. ‘Do’ 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섹시한 이미지와 넘치는 그루브가 민제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제의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의 보컬은 이 곡의 기타와 피아노, 현악기로 구성된 사운드와 잘 묻어난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섹슈얼리티가 지배적이었던 예전과 달리, 지나간 시절의 사랑을 노래하는 그는 꽤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그리움만 남겨두고 예전처럼 / 우리로 때로는 혼자로 / 불어오는 바람에 눈물을 흘려도 / 사랑이야 사랑이야 사랑이야”


곡의 첫 구절은 텍스트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잘 파악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난 이 가사가 좋다.  노래를 듣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 의미의 빈 공간을 충분히 채울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나는 자전거를 타며 불어오는 바람을 쐬었고, 이 구절을 들었다. 그 순간 노래는 내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 느끼는 그리운 감정은 현재에 남겨두고, 서로 사랑하던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불완전한 가사에 이런 마음이 덧입혀지자 노래는 아무 문제없었다.


어느 매거진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바 있지만, 민제는 가사에 공을 많이 들이던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1집의 다수 곡은 작업 당시 프리스타일 하듯 내뱉은 가사들을 수정 없이 발표할 정도로 ‘날 것’이었다. 하지만 ‘사랑은,’의 가사는 결코 그때와 같지 않다. 내가 이 곡에 처음 매력을 느낀 것은 사운드 때문이었지만, 사랑하게 된 것은 가사 때문일 정도로 깊고 울림이 있다.


언뜻 좋은 가사의 기준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가사는 밀도가 있어서 음가를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은 콘텐츠일 수 있다. 또 어떤 가사는 적절하게 빈 공간을 남겨놓아서 부르는 사람이, 혹은 듣는 사람이 그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대부분의 좋은 가사는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작자, 실연자만의 이야기를 넘어서, 듣는 모두가 참여해 완성해나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싱글의 앨범 소개글도 인상적이다.


저는 아직도 당신의 잔에 담긴 고독을 모두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낭만이 어디 있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만들고 있는 이 음악 안에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그 시절 뜨거웠던 우리들의 사랑과 청춘에 대해 노래해 봤습니다. 저의 이야기임인 동시에 나의 벗, 나의 이웃,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써 이 작품이 귀결되기를 사랑으로 기도드려봅니다.


그가 하고 전하고 싶은 말을 쉽게 풀자면 아마 이런 뜻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느낄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물에서 그 노력과 시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나의 뜨거웠던 사랑과 청춘이 당신에게도 있었다는 걸 압니다.’


이런 진심 어린 말을 전하려는 뮤지션에게 청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저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이런 글을 쓰는 것뿐이다.



by 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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