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룻밤 만에 멜론 팬 7천 명을 모은 아이리 칸나
지난 5월 16일 버츄얼 유튜버(스트리머)인 ‘아이리 칸나’가 정식 데뷔하면서 싱글 [ADDICTION]이 발매됐다. 버츄얼 아티스트의 유행에 힘입어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음원 사이트에 앨범을 내놓고 있지만, 이번 아이리 칸나의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상상 이상의 팬덤 화력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앨범이 발매된 지 하루이틀 만에 멜론 팬 수는 7000명을 넘어섰고, 곡은 좋아요 4000개를 얻으면서 웬만한 중형급 아이돌 이상의 트래픽을 이끌어냈다. 물론 초반의 관심 이후 지속적으로 바이럴을 일으키며 성장세를 보여준 건 아니지만, 크리에이터를 향한 관심이 직접적인 음악 소비로 쉽게 전환되지 않는 음원 사이트의 특성상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더불어 필자가 지난 번 작성했던 ‘커버곡 크리에이터는 뮤지션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가’에서도 유튜브 구독자 수백만 명씩을 거느린 그들도 음원 사이트의 벽을 뚫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리 칸나의 행보는 기적적인 수준이다. 칸나는 현재 6월 말 기준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 트위치 17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중소형급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기에 언급한 커버곡 크리에이터보다 트래픽 수치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당연하다. 더불어 멜론 팬이 수만명 되는 중대형 아티스트들 또한 이런저런 마케팅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내에 좋아요를 수천 개를 받고 1백만 스트리밍을 찍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슈가 될 만한 퀄리티의 뮤직비디오나 공격적인 마케팅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IP를 가져도 히트를 치기 어려운 세상이니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적으로 서브컬쳐+버튜버 특성으로 인해 팬덤의 밀도가 매우 높다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해도 견고한 팬덤으로 인해 의외의 트래픽을 만들어 내는 특수한 상황은 가끔 존재한다. 비유적으로 말해 내가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인데 국내보다 해외에서 말도 안되는 수요가 존재하는 에이티즈, 어떤 수록곡이나 OST라도 시간이 지나면 만 개 이상의 멜론 좋아요를 얻어내는 이승윤 등 팬덤의 밀집도는 씬과 장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이리 칸나 또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콘텐츠를 소비해주는(크리에이터로서가 아니라 뮤지션으로서도)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논의를 확장시키면, 지금 시대에는 대중 전반 타겟의 아티스트를 키우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사람들 모두가 ‘누구인지 아는’ IP가 아니라 ‘닥치고 사랑해주는’ IP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00만명이 아는 가수이지만 진짜 팬은 2퍼센트인 아티스트와 10만명이 알지만 절반이 진짜 팬인 아티스트를 가정했을 때, 단순 곱연산을 해도 부가가치가 꽤나 차이난다. 많은 대중들이 ‘알고는 있는’ 아티스트에게는 물론 방송 출연이라던가 광고 등 부가 수익이 존재하겠지만 그 정도로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일에는 가시밭길이 따르고 선택받은 소수만 가능하다. 더불어 넘쳐나는게 음악이고, 그 외에 OTT, 게임, 유튜브 등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음악을 소비해주고 공연을 가며, 앨범을 구매해주기까지의 길은 너무나도 험난하다. 이런 상황에서 도달 그 자체보다는 밀도 있는 팬덤을 키우는 방향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버츄얼 유튜버는 서브컬쳐 쪽 시장 기반에 기본적으로 스타와 연예인보다는 실시간으로 시청자들과 교감하면서 활동하는 이들이기에 이러한 부분에서는 내실이 있다.
아이리 칸나 외에도 플레이브 등 신진 버츄얼 아티스트들의 활약도 긍정적인 트래픽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과거 괄목할 만한 기록을 세운 이세돌도 1회성 인기에서 끝난 것이 아닌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플레이브의 두 번째 싱글인 ‘왜요 왜요 왜’는 발매한 지 한 달가량 지난 지금 멜론 누적 스트리밍 220만 이상을 기록했고, 6월 22일 발매된 이세계아이돌의 새 싱글 ‘LOCKDOWN’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멜론 스트리밍 260만 회를 기록하며 한 달 전 발매된 프로미스나인의 '#menow' 스트리밍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그게 뭔데 x덕아” 소리를 들었던, 각지에 분포된 군소형 시장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한 단계 나아가서 이러한 현상은 취향 중심의 롱테일이 두터워진 소비 시장을 다시 한번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콘텐츠 씬에서 소비자 간의 교집합은 적어지고 대중성은 밈과 함께 빠르게 휘발된다. 좋은 IP를 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도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지금, 팬덤 기준에서의 접근은 아티스트에게 조금이나마 지속가능성을 안겨주지 않을까. 미적이고 예술적인 부분은 평준화되었으니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에서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by 최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