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본인의 의지와 10% 조언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한국에서 사라져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간다는 말이 한 아이의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정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냐는 질문에 그 어떤 부모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 지금도 변함은 없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한 대세다. 게다가 가려면 제대로 된 대학에 가야한다는 조건까지 붙는다.
벗어나면 일탈로 간주한다. 다양한 생각은 생각일 뿐 실천하기 두려운 것이다.
허나 이 땅에서 대세가 정말 대세였던 경우는 많지 않다. 대학 나와야 인간취급 받는다고 했지만 대학나와 인간취급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었다. 대학가기가 조금 수월했던 시절엔 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고 대학가기 힘든 시절엔 쉽게 갈 수 있는 대학은 나와봐야 소용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는다는 말은 절대 다수에게 적용되는 말인 적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좋은 대학에 갔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일부의 목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과반의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알량한 대기업, 공기업으로의 취업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이기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들을 한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조언을 구실로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의지는 없다. 장기간의 조언은 강요가 되어 세뇌가 되어 버린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중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대부분은 짧은 견문을 바탕으로 '아직 꿈이 없다.'고 얘기한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듣고 본 것이 적어 그렇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어 그렇기도 하다. 어찌보면 중학생 시기에 걸맞은 답변들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그렇다면 부모들의 장기간 세뇌? 강요? 조언?!?을 받아들여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떨 것 같은가.
"취직이 꿈이죠."
"공기업에 가고 싶어요."
"대기업에 가고 싶어요."
"아직 꿈이 없어요. 일단 취직부터 해야죠."
아 바람들 어디에 행복이 묻어있다고 생각이 드는가. 강요같은 조언을 받고 자란 어른아이들이 하는 말이다. 그 막연하고 무책임한 조언의 결과는 본인의 의지를 죽여 여태 꿈을 찾는 어른아이들이다.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대신 살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일은 어떤 부모도 더 잘 알 수 없다. 겪어야 하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는 주체는 아이들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있는 뻔할 미래가 아니기에 초등, 중등,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예측마저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강요한다.
90% 본인의 의지와 10%의 조언.
최소한의 행복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