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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sk May 03. 2021

늙어가는 후배들, 미안해.

황혼기 "인생의 가치를 회사에서 찾지 말아라."

암울했던 IMF시대를 거쳐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기업은 많은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업 구조조정 효과로 대기업들의 순위가 바뀌고 생명을 다해 사라지는 기업이 생기고 반대로 새로운 국면을 맞아 폭발적인 성장을 겪는 신생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존 기업들도 체질개선을 통해 평균연령도 낮아졌고 실질적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시적이나마 나이차가 있는 선후배 간 신구 조화의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그만큼 선배들은 덕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IMF 이후 운 좋게 회사에 남아 새로운 후배들을 맞이하게 된 선배 임직원들은 20여 년이 흘러 현재 임원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큼 거대 경제 흐름의 덕을 보기도 했다.


힘든 일을 겪고 난 뒤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체질개선을 한 기업들은 그 전보다 탄탄한 재무상태를 만들었고 제법 안정을 찾은 사업을 바탕으로 다시 사세를 키우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구조조정의 효과로 인원 공백이 컸기에 채용인원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모대기업은 상하반기 공채를 통해 한해 8천여 명을 채용할 정도였다.


IMF 탈출 후 시작된 대규모 채용은 향후 불러올 후폭풍을 예감할 여력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 대거 입사한 청년들은 행복했을지 모른다. 새롭게 시작한 사업과 새롭게 진행되는 기업의 체질개선 후 보완작업에 투입된 그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불과 몇 년 차이의 선배들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대기업으로부터 시작된 연봉 선진화 작업의 덕을 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그때 월드컵이나 연평해전 등 사건들은 청년들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단지 세기가 넘어가는 의미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던 21세기의 시작은 이 사회 전체에 많은 사건과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10년, 20년 후 어떤 후폭풍을 맞이해야 할지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말이다.


후폭풍을 예감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입사 후 수년이 채 안된 시간이 흐른 뒤 승진을 논할 때부터 예감은 불안감으로 성장했다. 대규모 채용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이어졌고 2005년 이후 급격히 감소해 적정규모를 찾았다. 수년간 대규모로 채용된 그들은 한동안 신입사원 없이 회사를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고 말도 안 되는 경쟁을 겪기 시작해야만 했다. 직급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은 이후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다만, IMF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선배 임직원들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IMF를 극복한 것은 국민 모두의 노력이었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IMF를 끌어들이고 '신호'를 무시한 것은 분명히 정부의 실책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국민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고 기업과 국가의 노력은 상을 받을만한 것이 되어버렸다. 기업의 자구책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스스로 최적의 상황을 꾀하긴 했으나 결국 흘러가는 대로의 정책에서 손해를 줄이려는 쪽으로만 머리를 썼다. 그래서 상당한 피해자가 나왔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평가를 받았고 시장에서 극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축복의 대상일 줄만 알았던 그 시기의 신입들은 손해를 줄이려는 쪽으로만 머리를 쓴 기업의 후유증을 치료할 말로서 선배들은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고생을 해야만 했다.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해야만 했다. 다만, IMF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선배 임직원들은 그 신입들의 성과를 오롯이 자신들의 성과로 인정받았다.


이전에 언급한 IS(Information System)를 도입해 기업의 정확하고 효율적인 경영체제 확보를 도운 굴지의 시스템 컨설팅 기업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굴지의 기업이라고 하는 수많은 대기업들이 우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우리에게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수도 없이 요청했습니다. 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영방식을 완전히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을 열고 듣고 보고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돈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 배운다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거의 싸우다시피 그들에게 시스템의 개념과 활용법을 전달했으나 결국 그들은 최종적인 Report만을 원했습니다. 그 Report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가 활용하고 활용결과를 경영진에 Reporting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임원들은 한 장 짜리 Report만을 원했습니다. 결국 그 숙제는 모두 실무진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 종이 한 장을 받은 경영진은 그 종이를 본인에게 들고 온 직책자들을 평가했다.


그때부터 신입들과 직책자들 간 업무 세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크게 배울 것 없는 업무환경에서 신입들은 스스로가 업무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업을 Set up 하는 과정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경영체제는 외국의 것과 국내 환경에 맞춰 설계된 체제를 뒤섞은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과거에 비해 매우 훌륭한 복지를 갖추게 되었고 임금체계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선진화 작업을 거쳐 고액화 되어갔다. 그 와중에 선배들은 신입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본인들이 신입일 때 겪어보지 못했던 것을 신입들은 누리기 시작했다며 행복한 세대라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로는 선진화된 복지를 빌미로 후배들을 발판 삼아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의 암울했던 과거를 거친 것이 본인들이라며 보상받기를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금피크제, 정년연장 등 여러 정책도 그들만의 리그에 일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어디로든 떠날 생각도 없고 떠날 능력도 없던 그들은 버텨낸 직장에서의 정년을 목표로 21세기 초를 짊어졌던 후배들을 밟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 사이 21세기 초 대규모 채용의 함정에 빠지기 시작한 후배들은 늙어가기 시작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내 기준(차장급)에서만 봐도 지금 우리 상무, 전무급 임원들 나이를 감안할 때 이 인간들은 내 나이 40대 중반에 이사를 달았더라고. 그렇다면 이 인간들은 도대체 언제 차장, 부장을 하고 있었다는 거야. 허허. 정말 엄청난 인재들이었나. 약이 오를만하지. 난 지금도 차장급으로 일을 받고 그 월급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 인간들은 이 나이에 벌써 임원 승진해서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는 거 아냐."


"그럼에도 이 인간들은 우리에게 미안한 감정 하나 갖지 않아. 그 자리에서 또 ‘라떼’를 시전하고 있지. 실무 놓은 지 수십 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들이 ‘라떼’시전은 조금 심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들은 성공의 경험이 더 많아. 그것도 운과 흐름에 의한. 본인이 직접 극복했던 사례는 사실 뭐 없어. 그런데 그게 꼭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야. 시대가 변하고 시간의 흐름에 있어 그 길이가 달라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 그래도 얄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같은 조직에서 견디고는 있는 거지. 그 인간들은 그 인간들이고 우리는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후배들아. 미안해. 우리는 그 선배들처럼 너희들 앞을 가로막지 않고 싶어. 그러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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