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에 딸기잼 바르는 법

취향 차이로 기억하는 아빠 모습

by Gomsk

봉지에서 바로 꺼낸 식빵은 약간 촉촉하고 말랑하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식빵 가운데 부분에 코를 가져다 대면 옥수수 냄새가 났다. 노란색 뚜껑에 과일 그림이 그려진 오뚜기 잼병에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넣어 듬뿍 퍼낸다. 진득한 잼을 굽지 않은 식빵에 척 올린다. 꼼꼼하게 바르지 않는 게 포인트이다. 더 맛있게 먹는 법도 아니고 이대로 하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그렇게 해야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일부러 성긴 모양새로 딸기잼을 얹을 때 아빠가 다가왔다. 내가 듬뿍 한 수저 퍼냈던 것과 달리 조심스럽게 잼을 떠서 아주 얇게 펴 발랐다. 마치 딸기잼 막을 입히는 것처럼.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버터색 식빵에 딸기씨가 납작하게 골고루 묻었다. 아빠가 잼은 이렇게 바르는 거라고 웃었던 것 같다. 내가 열두 살 때 일이다. 나는 식빵에 잼을 바를 때마다 그날이 생각난다. 사소한 순간이라 아빠는 기억 못 할 것 같다. 내가 아빠의 가장 다정한 면을 느끼고 그날 아빠 목소리와 얼굴과 미소를 특별하게 간직했다는 것도.


그런 아빠가 밥상을 엎을 때는 정말 치사했다고 생각한다. 앉은뱅이 밥상은 내동댕이쳐진들 스텐 밥그릇과 반찬 보시기가 부서지지 않는다. 분노가 당신의 내면에서 발화하는 와중에도 아마 아빠는 계산했을 것이다. 다만 치우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장면은 기억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꼭 슬로모션으로 저장된다. 좀 더 어렸을 때였던 것 같고 나는 단칸방 한쪽에 비켜 앉아있었다. 정리는 엄마 몫이었겠는데 그렇게 밥상 엎고 나서 아빠는 밖에 나갔었는지 아니면 그 상황에 다섯 식구가 다 함께 한 방에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올해 가을 아빠는 당신의 늦둥이 외아들의 혼사를 치른다. 남동생의 신혼집을 계약하고 아빠가 여태껏 짊어지고 있던 마지막 짐을 내려놓는 것을 느꼈다. 마주 앉아 소회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알 수 있다. 밥상을 엎을 때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도 짐작해 보게 된다. 낮은 밥상 앞이 아니면 울분을 토해낼 곳조차 없었을 것이다. 빠듯하게 살림하는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감정은 꼭 그렇게 파괴적으로 표현되었다. 새까만 머리의 젊은 아빠가 안쓰럽다. 혼자 속 끓이며 그 역정을 받아냈을 엄마까지 떠올리면 지금도 버거워진다.




어릴 때 먹었던 식빵은 건포도가 든 것도 종종 있었는데, 확인하지 않았지만 체르노빌 원전 사태 이후 오염된 농산물이 대거 수입된 후 사용된 재료였을 거라는 얘기를 가족과 나눈다. 그때 구멍가게에서 장차 건강을 구멍낼 각종 군것질도 가열차게 했었는데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난 후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아련하다. 묵직한 델몬트 주스병에 담긴 끓여서 식힌 보리차와 이따금 외식하러 나섰던 경양식 레스토랑까지. 지금 일흔 중반이 된 아빠는 나에 대하여 어떤 기억이 있을까?


현재 이 몸은 좋은 거 먹고살려고 유기농을 찾는다. 식빵도 통밀로 산다. 방부제 없고 유화제 없고 계란과 버터도 들어있지 않은 먹거리로 산다. 통밀식빵을 토스터에 구웠다. 빳빳하게 구워진 갈색 식빵은 입천정을 할퀼 것 같다. 평소처럼 툭툭 얹지 않고 잼을 곱게 펴 바른다. 딸기잼 수분으로 식빵이 누그러지길 바라면서 가장자리까지 꼼꼼하게 채운다. 끈적한 단맛이 스며드는 걸 잠시 바라본다. 이런 순간마다 내가 아빠를 떠올리며 마음이 뭉근하게 풀어지는 것을 아빠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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