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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Aug 25. 2024

완전히 개판이네요

오전 10시 40분, 드디어 사장님이 나오셨다. 시공팀은 이런 일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분위기로 인사를 하셨다.


"지연 씨 좋은 아침. 내가 어제 술을 좀 먹어서 컨디션이 너무 안 좋네. 간단하게 몇 가지 알려주고 갈 테니 오늘은 혼자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아, 네..."

"전화 오면 받아주고, 툴 다룰 줄 안다고 했으니까. 할 수 있는 것 들어오면 좀 만들어보고. 급한 일 있으면 전화 줘. 자, 설명해 줄게. 이 폴더 안에 우리 회사가 여태까지 했던 모든 작업물이 있어. 시간 있을 때마다 보면서 어떤 식으로 했는지 파악하면 되고."


사장님께서 회사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주셨다. 그리고 작업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난 빠른 진행에 어리둥절했지만 긴장하며 메모를 했고, 시간이 흘러 오후 3시가 되니 사장님께서 들어가시겠다며 업무 하나를 지시하셨다. 동네에 위치한 꽃가게 홍보 전단지 작업이었다. 내일 아침에 1차 시안을 보여드리기로 하고, 퇴근하시는 사장님 뒷모습을 보니 입이 바싹 말랐다. 첫날부터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다니, 혼자 작업을 하는 것도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제목을 빨갛게도 해보고, 노랗게도 해보며 작업을 했다. 

'이게 나은가, 아닌가 저게 낫나.'

처음 만들어보는 전단지라서 어떻게 해야 예쁜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퇴근시간이 됐는데, 전단지 작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가 완성일지도 감이 오질 않았고, 내가 했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촌스러운 결과물이 나와서 끝낼 수가 없었다. 회사의 다른 작업물을 찾아보며 비교도 해보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며 따라도 해봤지만 어떻게 해도 촌스러웠다. 그날 밤 9시가 돼서야 회사불은 꺼졌고,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숨을 쉬며 퇴근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사장님은 첫날과 다르지 않게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시는 일이 빈번했다. 다행히도 전단지에 대해 사장님께서는 별말씀 없이 인쇄가 됐다. 오히려 신입 직원을 한 명 더 채용하시겠다며 면접을 진행하셨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직원이 채용됐다. 채용된 날도 며칠 차이가 안나는 나에게 실장님이라고 부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후배가 생기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뭐라도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알려줄 것이 더 많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디자인은 며칠이 지나도 촌스럽기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근 후 집에서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다. 매일 새벽 2시가 돼서야 잠에 들었다. 촌스러운 디자인 작업을 후배에게 보여주기가 싫었다. 점점 디자인 작업은 집에서 하고 회사에서는 인쇄를 넘기거나 고객 상담 전화를 받는 일을 위주로 했다. 회사에 출근하시는 횟수가 줄어드는 사장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아실리가 없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지연실장, 여태까지 보아하니 혼자서 책임감 있게 일을 잘하더라고. 많이 힘들 텐데 실장역할도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고. 실장인데 월급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좀 더 올려주려고."


월급을 올려주신다는 말에 기분이 하늘로 솟았다. 두 달 동안 고생을 하며 일을 한 보람이 있었다. 인정을 받으니 실장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더 생기고, 이 회사를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사장님께서 따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하청 인쇄소들을 방문해 거래금액을 협상했다. 더욱 저렴한 금액으로 거래를 하는 일이 늘어나니 사장님께서 나를 더욱 인정하기 시작했다. 두 달 된 직원이 맞냐며, 나의 능력을 높이 샀다.


회사에 매년 큰 행사에 필요한 인쇄물과 디자인작업을 의뢰하는 기관이 있었다. 이번 해에도 축제 포스터와 리플릿 등 큰 작업물들 의뢰가 들어왔다. 디자인에 자신이 없었던 나에겐 부담되는 일이었다. 번역거래처에 외주를 맡겨서 작업을 해야 하는 일정까지 더해서 기한이 촉박했다. 이 모든 걸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꼬박 4일 동안 잠을 못 잤다. 커피로 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고, 결과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까지 왔다. 잠을 못 자니 몸은 가라앉는데 긴장이 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니 말하는 입이 생각하는 뇌와 따로 놀았다. 말을 수 없이 버벅댔다. 결국 듣다 못했는지 고객 측 담당자가 벌떡 일어났다.


"뭐 하자는 겁니까! 디자인도 개판, 번역도 개판, PT도 개판! 이렇게 개판 쳐놔도 됩니까?"


자료로 나눠 준 프린터물이 날아다녔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서류를 던지는 장면이 나에게도 연출된 것이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눈이 붉어졌다. 악몽 중에도 가장 끔찍한 악몽 같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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