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집착하고 일만하며 살아온 내 자신이 이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실증이 났다. 디자인 작업을 하려고 노트북을 열면 '아자아자'라는 비번을 입력해야 화면이 바뀌는 것, 내 책상앞에 붙여 있는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없다'라는 말에도 짜증이 났다. 뭘 얼마나 대단하게 살려고 매번 아자아자를 외치고 최선을 외쳤던 건지.
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이라는데 난 그말이 와닿지 않았었다. 인생은 모든것이 재가 될때까지 불태워야하는 것으로 여겼고, 굵고 짧게 살다가자는 말이 더 와닿았다. 하지만 정신치료를 받고 난 후 인생을 마라톤처럼 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물론 내 머리와 몸은 그런데에 익숙해져 있지 않아서 자꾸만 큰 이상을 꿈꾸게 되지만 그런 나를 연민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면 잠시동안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쉬는동안 내가 일 말고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취미미술 학원에서 그림을 배워보기도 하고, 밤에 노트북을 열어 글을 끄적거려봤다.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굉장히 자유로운 기분을 가져다 주기는 하는데, 취미거리나 하는 이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은 조금씩 항상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나에대해 물어봤다. 하나같이 지연이는 바쁜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모임에도 매번 빠지거나 늦고, 친구들 행사가 있을때도 참석을 못하는 일이 빈번한 얼굴보기 힘든 연예인이란다. 한편으로는 모두 걱정을 했다. 그렇게 일하다가 무슨일 생기는거 아니냐고.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1등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아직 그걸 강요하고 있었다. 요즘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쉬고있다고 하니, 쉬면서 잘 생각해보란다. 뭐든 하면되고 안되면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된다며, 열심히 살아야 살아남는다고 조언을 해주셨다. 이젠, 아빠말이 지겨웠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인문분야 베스트셀러에 대부분 깔려있는 자기계발서 제목을 훑어보다 구역질이 났다. 그렇게 좋아하던 자기계발서였는데 내몸이 밀어내다니. 내 인생에 단단히도 굴곡이 생긴모양이다.
이제는 생긴대로 살자. 그냥 살자. 흘러가는대로. 이런말이 더 좋다. 어짜피 그래봤자 나는 무언가 또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예전처럼은 하지말자는 생각이다. 성공? 하면 좋지만 성공에 목메이지는 말기로 했다. 성공 안하면 뭐 안한대로 어떻게든 살겠지. 모든사람이 다 성공하는건 아니니까. 그런사람들이 모두 불행하게 사는건 아니니까. 우리도 자연의 일부분처럼 누군가는 꽃을 피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봉오리가 올라온채 머무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새싹에서 그치기도 하겠지. 그렇게 생긴대로, 주어진것 안에서 흐르는대로 사는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아무리 애를 써봤자 거기서 조금 더 가거나 말거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