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로 수술 주위에 남아 있을 미세 암세포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방사선 치료는 매일 이루어졌고, 18일 동안 병원을 출퇴근하다시피 다녀야 했다. 요양병원에서 매일 셔틀을 해주셨다. 그런데 편도 40분이 걸렸고, 도로가 밀릴 때가 많아 1시간이 걸려 도착할 때도 많았다. 왕복 2시간 정도를 매일 왔다 갔다 하니 정말 출퇴근 같았다. 그런데 서서히 몸이 안 좋아지니 병원 냄새도 지겨웠고, 매일 보는 치료사분들도 지겨웠다. 그야말로 짜증투성이었다.
치료는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기계가 왼쪽 가슴을 왔다 갔다 하며 10분 정도 돌아다니는 게 끝이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섭다고 하듯이,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점점 살이 붉어졌다. 후에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고름이 생기고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항상 후끈거리고 쓰라려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씻을 때마다 내 피부 같지 않은 피부들을 만지는 느낌이 속상했다. 점점 치료를 받기 싫어서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 피부를 이렇게 망가뜨리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덧 치료가 마무리되었고, 경구약으로 복용하는 젤로다라는 약물치료만 남아 있었다. 이건 부작용이 심하지 않다고 해서 요양병원에서 퇴원하기로 했다.
'드디어 퇴원인가'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집에 가는 날만 기다렸더니 감격스러웠다. 신혼생활을 못하고 병원에서 보내는 날이 길어져 신랑과도 애틋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짐을 챙겼는데 이삿짐처럼 많았다. 나르느라 고생을 좀 했다.
한편으로는 요양병원에 계속 남아계시고 치료를 이어가셔야 하는 분들을 보니 마냥 좋아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병실에서 키우던 작은 식물을 병원 로비 창가에 선물로 남겨놓고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길게 뻗은 나무들, 햇살, 지나가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였다. 다시 태어난 것 마냥 모든 것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신랑을 지겹게 보며 다투기도 할 날까지 기다려졌다.
'아, 정말 행복하다'
집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그동안 항암치료하면서 못 먹었던 입이 터져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먹고 싶은 것들을 직접 해 먹기도 하고 배달도 시켜 먹고, 잔뜩 먹었다. 야식도 마다하지 않고 먹어댔다. 살이 찌건 뭐건 음식이 그렇게 다 맛있을 수가 없었다. 미각이 살아난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점점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숙제가 있었다. 보험사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 것. 내가 들었던 실비보험은 통합보험으로, 수술비와 암 입원일당 등 몇 가지 보상이 되는 보험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전화를 해서 확인하거나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씩 빼먹기 일 수였다.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수시로 빼먹어서 항상 체크를 해야 했다. 퇴원하니 책꽂이에 서류만 한가득 채워졌다. 이걸 언제 다 체크하나 싶었지만, 보험금 없이는 생계가 어려우니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보험사 보상팀 직원분들은 전화를 끈질기게 안 받으신다. 전화를 하면 할수록 더 안 받으신다. 컴플레인을 걸어도 안 받으신다. 배 째라다. 아쉬운 건 나니 어쩔 수 없이 난 또 전화를 건다. 보상팀 직원분들은 불친절한 사람도 많다. 기본적으로 친절이 몸에 밴 나는 그런 사람들 상대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암진단 후부터 쪼그라든 마음으로 상처도 많이 받는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니. 오늘은 조금 더 강해지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