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 대부분 암크기가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 같던데, 난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허탈했다. 결국 유방외과 의사 선생님은 왼쪽가슴 부분절제가 아닌 전절제를 해야 한다고 하셨고,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도 그대로라며 겨드랑이 곽청술까지 말씀하셨다. 그렇게 수술을 하고 나서 병실에 누워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왼쪽 유방 전절제는 잘 되셨고요. 겨드랑이 림프절은 총 43개를 떼어냈고 검사 결과 림프절 전이는 없었습니다."
"네... 잠시만요. 겨드랑이를 다 떼어냈는데 전이가 없었다고요?"
"네.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후다닥 다른 병실로 가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의사 선생님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결과를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수술 전 진료 때 겨드랑이 곽청술을 하면 겨드랑이에 림프액이 순환하는 길이 없어져서 팔이 붓는다고 했다. 그리고 붓는 것 이외의 부작용들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영상으로는 전이가 된 걸로 판단해서 곽청술을 했던 것이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집도의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어찌할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다음날 집도의선생님이 또 회진을 오셨다. 신랑이 말을 꺼냈다.
"어제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전이가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곽청술을 했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영상학적으로 전이가 된 걸로 판단되어서 곽청술을 진행했고, 떼어내기 전에는 영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진행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이가 안된 것으로 확인됐으니 좋은 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곽청술을 하면 팔 부종과 같은 부작용들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건가요?"
"네."
별일 아닌듯한 어투에 참 난감했다. 그리고 첫 진료 때나 지금이나 의사 선생님이 차갑고 냉랭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이 선생님을 택한 게 잘못이었겠지.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수술이라는데 내가 뭐라 할 입장이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병원가서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올라오는 감정을 추슬렀다.
(퇴원하고 다른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타 병원 유방외과 선생님께 여쭤봤다. 표준치료는 그렇긴 하지만 의사마다 수술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떼어내기 전에 확인해 보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병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의사, 병원을 많이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수술 후 보조해 주실 분이 필요해서 3일 정도 간병인을 신청했다. 유방 수술하신 분들은 회복이 빠르시고 수술 다음날부터 활동하는 걸 많이 보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걷기를 추천하셨다. 그분은 병원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셨고, 나는 걸음이 너무 빠르시다고 천천히 걸어가자는 말을 못 하고 그분께 맞췄다. 큰 수술을 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쪼그라들어서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어려웠었다. 결국 수술한 부위에 찌꺼기를 빼내는 배액관이 막히기도 하고, 겨드랑이가 아파서 회복이 조금 더뎠다.
간병인 또한 환자에게 맞춰서 잘 대해 주시는 분을 찾는 게 어려운 것 같다. 6인실에 일어나지 못하시는 환자분 간병인분이 있었는데 얼마나 환자를 못살게 하시는지 폭언을 하시며 환자를 막무가내로 대했다. 나는 보다 못해 간호사님께 말씀드렸고 가족분들이 찾아와서 간병인을 교체하셨다. 내가 오지랖을 떨지 않았다면 그 환자분은 계속 괴롭힘을 당하셨을 걸 생각하니, 세상의 어두운 면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또 느꼈다.
열흘 정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했다. 꼭 교도소에서 퇴소하는 사람처럼 햇살이 낯설게 느껴졌다. 방사선 치료를 기약하며 다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진 않았다. 이 생활 언제 끝나나. 저 낯선 햇살이 언제쯤 친근해질 수 있으려나. 갑자기 새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하나씩 하겠다고 마음먹어. 그러면 못할 것도 없을 거야.'
그래도 가끔은 인간적으로 말해주는 새엄마의 말이 힘이 될 때가 있다. 대학병원 입원은 하루하루가 닭장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래, 하나는 또 해결하고 나왔다. 남은 것들도 하나씩 해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