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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Aug 13. 2024

내가 다닌 요양병원의 현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으려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봐 무서웠다. 요양병원에 입원해야겠다고 결정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요양병원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뭐가 좋은지 모르는 상태라서 고를 것 없이 신랑의 회사 근처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생긴지 얼마 안된 병원이었다. 수간호사님이 채용이 되어 병실마다 인사를 하러 오셨다. 환자마다 위로의 말을 해주셨다. 똑부러지는 말투와 리드하는 손길이 느껴져서 믿음이 갔고 좋은 분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날이 너무 더워 에어컨을 조금 낮춰놨더니 수간호사님이 버럭 화를 내셨다.


"아니 에어컨을 이렇게 낮춰놓으시면 어떡해요. 온도 왠만하면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웃으면서 얘기해도 될 것 같은데 환자한테 왜 저렇게 화를 내시나 하며 병실에 함께 계신 분께 투덜댔다.


항암치료 중에 오른 팔꿈치가 계속 아팠다. 혈액종양내과에서는 항암부작용일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하게는 모르겠다며 정형외과 협진을 잡아주셨다. 그런데 정형외과 협진 날짜가 한달 뒤라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일단은 진통제로 버티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요양병원에서 진통제를 놓아달라고 부탁하며 지내다가 갑자기 수간호사님이 또 버럭하셨다.


"자꾸 이렇게 진통제만 놔달라고 하시면 안되죠. 병원을 가보셔야지 이러고만 계시면 어떡합니까."

가뜩이나 치료받으며 소심해지고 두려움이 많은 상태였는데 수간호사의 버럭하는 말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서운했다. 한편으로 정말 걱정이 되어 그날 저녁 신랑과 함께 본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4시간을 앉아서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칠때쯤 침대에 누워 채혈을 시작했는데 혈관이 안보인다며 이곳저곳 발등에 주사기를 찔러 채혈을 시도했다. 너무 아파서 나도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낮에 운영하는 본 병원 채혈실은 한번에 잘하시던데, 응급실은 오히려 경험이 없는 간호사와 의사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결국 검사결과 특별한 소견이 없으시다며 정형외과 진료날까지 기다려서 방문해달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고생만 더럽게 하고 아무 소득없이 요양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응급실은 쳐다도 안본다.


요양병원에서 의사선생님 진료를 받다가 배에 가스가 너무 찬다고 심각하게 여쭤봤는데, 살을 빼면 될 것 같다는 이상한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너무 이상하게만 생각하나 싶어서 본 병원 혈액종양내과 의사선생님께 여쭤보니 흔한 항암부작용이라며 살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다. 요양병원을 옮겨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셔틀을 해주는 요양병원을 찾다가 용인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한 당일에 잠을 한 숨도 못잤다. 찜질방인 줄 알았다. 같은 병실 분들은 암환자는 시원하게 있으면 안된다며 에어컨을 30도로 맞춰놓으셨다. 난 너무 더워서 로비에 있는 쇼파에서 잠을 청했다. 병실을 옮겼는데 그 곳에는 말기암 환자분이 계셨다. 그 분은 자신이 이병실의 방장이라며 모두 그 분 말에 따르길 원하셨다. 4인실에 3명이 27도를 원하셨고, 그분만 29도를 원하셨다. 항암주사를 맞고 온 나는 너무 예민한 나머지 온도를 높여놓는 따뜻한 병실로 옮기시는 건 어떠시냐고 말씀 드렸다가 폭풍이 일었다.


또 요양병원을 옮겼다. 심신이 지쳐있었다. 다행이도 1인실로 옮겨서 다른 환우분들과 마찰은 없었다. 평온하게 지내나 싶었는데 그 곳은 다른 환우분들이 병원 음식이 맛이 없다며 영양사님과 실갱이가 많았다. 나는 그냥 먹었다. 어짜피 잘 먹지도 않았고, 정말 먹고 싶은 건 배달 주문해서 먹었다. 워낙 다른 병원에서 트러블이 많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무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요양병원들 후기를 보면 대부분 병원음식이 맛있는 곳으로 많이 간다고 한다. 맛 없게 나오는 곳들은 비주얼만 봐도 심하긴 하더라.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적은 것들 이외에도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내가 운이 안좋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암 요양병원 위주로 입원해서 환자분들 대부분이 암환자였고 그 중 90%이상이 유방암이었다. 그래서 좋은 정보도 많았다. 부작용 관리하는 나름의 노하우들도 들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는 암환자가 평범하게 여겨져서 다른사람과 비교하며 슬퍼지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주 찾아오는 암환자라는 현타와 항암의 고통 속에서 가끔은 함께 슬퍼해주는 간호사나 의사분들이 적다는게 아쉬웠다. 암에 대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간호사분들에게 나 또한 암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얼른 퇴근하고 싶다며 한탄하시는 물리치료사 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오히려 위로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씁쓸했다. 


그렇게 7개월이라는 긴 기간동안 요양병원의 세계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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