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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Aug 08. 2024

수술이냐, 항암치료냐, 아니 배아동결이 먼저입니다

유방외과 의사는 암 종양 사이즈가 커서 항암치료로 좀 줄이고 부분절제를 하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항암치료로 암이 모두 사라지는 완전관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다. 내가 가진 종양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하루 빨리 진행하기를 권하셨다. 나도 고민 할 것 없이 바로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가지 난관이 있었다.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리신데, 아이 계획이 있으신가요?"

"....."

"항암을 한 후에는 아이 갖기가 여러가지로 힘들어지실 거예요. 일단 산부인과로 협진 예약잡아드릴테니 상담 받아보세요."


암이라는 사실에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중대한 일을 결정해야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나와 신랑은 산부인과 진료대기실에 앉아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산부인과에서는 결혼을 했으니 난자동결 보다는 배아동결을 권하셨고, 동결 후 항암을 진행하고 몸이 회복되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난자채취까지 20일 정도 예상되며, 그 후에 항암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시급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항암이라는 것이 나에게 낯선 단어 였고 체감도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도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이렇게까지 하는걸까? 라는 의문과 함께 갖가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루라도 빨리 항암을 권하는 상태인데 무리하게 난자채취까지 했다가 암이 더 악화 될까봐 걱정이 됐다. 2세보다는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신랑 입장이 달랐다. 나중에 내가 아이가 갖고 싶어지면 그땐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동결을 해놓자고 나를 설득했다. 


"내가 갖고 싶은걸 걱정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갖고 싶은거 아니야?"

"난 아이없는 삶을 상상해보지 않았어. 우리 닮은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리고 싶어. 자기도 나중에 그런마음이 들면 어떡해. 일단은 동결해놓고 나중에 상황봐서 결정하는게 낫지 않겠어?"


역시 남자의 번식 본능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암인데 무슨 행복한 가정이며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는건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신랑이 원망스러웠다. 이해도 안되고 존중도 안됐다. 빠르게 결정은 해야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눈물과 함께 언쟁이 일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는 말에 그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다라는 발언. 결혼하고 심각하게 싸운것도 처음이었다. 결국 신랑은 모르겠다며 연신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한참 울고나니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각자 주장만 하면 결론이 안나겠구나 싶어서 내가 설득당하는 걸로 했다. 이 상황에 내가 동결 안하겠다고 주장하고 항암을 바로 해버리면 나만 잘살고 신랑도 시댁도 나를 외면해버릴 것 같았다. 내가 무엇때문에 살려고 하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만약 건강하게 산다고 해도 외로운 삶이 두려웠다. 차라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사랑받고 사는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정도로 신랑이 좋았고, 신랑이 주는 사랑이 좋았다. 받는 사랑없이 사는게 그토록 싫은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서 참 슬프기도한 결정이었다. 이런 사실을 말하면 신랑이 괴로워할 것이 분명해서, 나중에 아이를 안가지더라도 일단 동결해놓자는 걸로 말했다.


난자채취를 바로 시작해야했기때문에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오후4시에 병원에 진료예약 전화를 했는데, 그것도 준비해야할 서류와 바로 먹어야 할 약이 있다고 했다. 3군데 약국을 돌았는데 약이 없다고 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5시 30분에 약국문이 닫는데 29분에 약이 있다는 약국에 도착을 해서 바로 약을 받아서 시작했다. 


난자채취를 위해 배에 주사를 맞는것도, 부작용도 힘들었지만, 나팔관 조영술이라는게 정말 아팠다. 애기 낳는 고통이라는게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살면서 처음 가져본 고통이었다. 자연분만 엄마들은 진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배란 난자채취로 몇가지 부작용을 남겨주고, 21개의 배아동결이 이루어졌다. 배아가 많아서 나중에 임신 성공률은 높을 것 같다는 희망이 든다. 한편 찜찜한 감정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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