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종류는 4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난 그 중 호르몬과 관련없고, 유전자와도 관련없는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했다. 요즘에는 부작용이 적고 암에 적중해서 치료가 가능한 표적치료도 많이 있는데, 삼중음성은 걸리는 비율이 적다보니 부작용이 많아서 가장 힘든 일반항암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직은 개발중이라고 한다. 이마저도 참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걸린 암중에 왜 이런게 걸린건지.
"유방암은 암도 아니다. 수술하면 금방 낫는다더라. 항암치료도 생각보다 안힘들고 괜찮은것 같더라."
주변에서 이런말을 참 많이 해주셨다. 그냥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건 초기의 암인 경우에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2.5기 ~3기 정도 된다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그것도 삼중음성 유방암의 경우에는 더욱 맞지 않는 말이었다.
항암치료는 3주 간격으로 8차례가 진행됐다. 항암치료중에 AC라는 빨간약이 있었는데, 말그대로 에이씨였다. 그 약을 맞고나면 3일밤을 깨지도 않고 잤고, 입덧하는 것처럼 구역질이 올라왔다. 모든 음식에서 약 맛이 나서 아무것도 먹기가 싫었다. 첫 항암주사를 맞고 바로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 요양병원은 뷔페로 음식이 나왔다. 병원에서는 끼니를 거를 수록 치료에 도움이 안된다며 뭐라도 먹기를 권하셨다. 하지만 항상 썩은 표정으로 젓가락질 몇번하고 내려놓는 나를보며, 입원해있는 환우분들이 그렇게 맛이 없냐며 안타까워하셨다. 항암을 앞두고 계신 암환자분들은 나를 보며 항암을 두려워하셨다.
나는 난자채취의 부작용으로 배에 복수가 찼다. 그상태로 항암주사까지 맞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어느날 구역질이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요양병원 복도를 서성이다가 쭈그려앉았다가 소파에 누워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이트타임 간호사한분이 나에게 찾아와 두유를 건네주셨다. 아무것도 못드시니 더 못 주무시는 것 같다며 옆에 앉아서 위로해주셨다. 그때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두유가 삼켜졌다. 서러움이 복받쳐 울었다. 내가 이러다 죽는거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간호사분도 눈물을 보이셨다. 그 분도 뇌종양이 있어서 한동안 치료를 받았고, 잠시 회복이 되어 일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같이 울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분이 계시니 참 감사했고 감동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간호사분이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랄뿐이다.
2번의 같은 항암이 진행되니 약간의 요령이 생겼다. 약을 좀 천천히 맞으니 부작용이 덜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독한 약이라서 30분 안에 맞는게 좋지만 원하신다면 4~50분으로 늘려주시겠다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나처럼 천천히 맞으면 부작용이 덜한 분들이 계셨다. 조금의 안도를 하고, 항암병동 간호사분께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의사선생님이 오더를 내려주신거라고 확인해보라고 해도 안해주려는 간호사분들이 많았다. 주사를 맞을때마다 간호사와 실갱이를 했고, 세상 불친절한 간호사분들 덕분에 나는 점점 눈치를 많이 보게 됐고 소심해졌다.
주식은 멜론이었다. 다른건 하나도 입에 맞는게 없고 오로지 멜론만 들어갔다. 그때 알았다. 과일 하나로도 사람이 살 수는 있구나. 살이 쪽 빠져서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머리도 한웅큼씩 빠졌는데, 심각한 일을 여러번 겪으니 그정도는 놀랄일도 아니었다. 점점 암환자라는 꼬리표와 병원생활이 적응이 되었다. 두상이 예쁘다는 말에 기분좋아 웃는 날도 있었고, 혼자 씩씩하게 항암주사를 맞고 온 날도 많았다. 주사 맞고 왔으니 며칠동안 말을 걸지 말아달라는 귀여운 문구를 병실 문 앞에 붙여놓기도 했다.
암이라는 것이 찾아와도, 힘든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내자신을 보며 놀랍기도 했다. 인간의 생존본능으로 사는게 당연하기는 하지만, 나는 사는 특별한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그 이유가 있어야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를 하는 중에 만난 죽음을 앞둔 분들, 말기암 환자분들,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이유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야하는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서 사는 것 또한 집착을 만들어내는 것, 하나의 강박이지 않을까. 그냥 생긴대로, 본능대로 살되 죽음에 대해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자세로 사는게 좋겠다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주어진 것 안에서 조금은 즐겁게 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