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나고 초라해 보이는 어떤 날에

불안, 걱정과의 동침

by Grace Lee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중에서-


인생의 여러 골목을 지나다 보면 내 모습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여 견딜 수 없이 우울한 날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인 것 같고 남들보다 모자란 것만 같고 불안한 마음까지 드는 그런 날들. 오늘은 그런 날들에 대해 이야기 보려고 한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사회문화 시간에도, 도덕 시간에도, 정치 시간에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여러 번 수도 없이 교과서에 반복되어 나왔다. 그렇다.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누가 날 알아주면 으쓱해지고 그 반대라면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흔한 심리학 이론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라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존감을 높이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조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특히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평범한 30대라면 더더욱 이 해법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알랭 드 보통도 그의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아무리 자존감이 높고 건강한 사람도 때로는 타인의 영향에 따라 자존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만약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배우자, 상사의 폭언이나 동료들에게 당하는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무시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자아가 건강한 사람도 위축되고 자신감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최근 문제 된 크고 작은 가정폭력, 직장 내 괴롭힘 사건들에서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는 이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현대인은 모두 어느 정도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우리는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기도 하고 심각한 병으로 진화하기도 하지만, 약한 불안을 그때그때 스스로 다스리는 방법을 깨우친다면 큰 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


뇌의 병변, 호르몬 변화 등 순수하게 생물학적 문제로 찾아오는 우울이나 불안을 제외하고는 사실 우리 마음의 문제는 대부분이 나와 외부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자꾸 초라하고 못나 보일 때, 우울해질 때 요즘 나의 환경에 대해 먼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대화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혹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난 멀쩡하다가도 사람 때문에 불안해질 수도 있고, 사람 때문에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불안을 조절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하며 내 마음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째로, 나의 행동은 옳고 나는 소중한 사람인데 나를 둘러싼 타인의 잣대에 의해 의기소침해진 것일 뿐이므로 다른 이의 말에 연연하거나 휘둘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의식적으로 다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무어라고 하든 나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의 평가와 내가 나를 바라보는 평가를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 인식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영향에서 백 퍼센트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나에게 격려를 주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나를 정서적으로 억압하거나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기꺼이 거리를 두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 또한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편, 불안의 원인이 사람이 아닐 때도 있다. 승진이 누락된 날, 시험에서 낙방한 날, 혹은 집값이 너무 올라 내가 갈 곳이 없는 막막한 그런 날도 있다. 누구 때문에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불행이라는 단어만 떠오르는 이 두 번째 경우의 처방전은 '우리 인생은 비와 햇볕이 반복된다'라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은 잠시 슬프고 멈춰 있는 타이밍이다 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덤덤하게 불행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장 중에서-


지금 나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있다. 어제까지는 비가 왔고, 오늘은 해가 쨍쨍하다. 지금은 물이 빠져 갯벌이 보인다. 이제 세 시간 후면 다시 물이 들어와서 내 앞까지 가득 찰 것이다. 비록 우리 인생은 간조와 만조처럼 정해진 시간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햇볕이 비치는 날이 오긴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햇볕이 내리쬘 거라고 믿고 용기를 품어야 한다. 절망 안에 있을 땐 이 희망과 믿음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은 겨울철 과일나무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 나뭇가지들이 다시 초록색으로 변하고 꽃이 필 것 같아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괴테 -


우리는 또한 흔들리면서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사실 금수저로 태어나도 인생에 힘든 순간이 찾아오는 건 다르지 않다. 돈이 많으면 그것만으로 몇 배 더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어느 인간도 모든 시련을 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어둠을 이겨낼 힘은 우리를 꿈꾸고 성장하게 한다. 인생이 너무 편안하고 평탄하면 사람은 서서히 꿈을 잃게 된다.


나는 학창 시절 잦은 전학으로 따돌림을 당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곁에 소중한 친구들이 많고 직장에서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잘 생활하고 있다. 또한 이 경험 덕분에 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과 성찰을 많이 하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둠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무기나 경쟁력을 하나 만들어라. 앞서 소개한 방법들이 모두 소용없을 만큼 추락하고 먼지처럼 작아져있는 순간에도 나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다시 자신감의 촛불을 붙이기가 쉽다. 대단한 자격증이나 큰 업적을 이루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제일 기쁘게, 오래 잘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해내면 된다. 작은 성취를 통해 얻은 자기 만족감이 쌓이면서 점점 더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고, 타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되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불안이나 열등감은 무언가에 불타는 열정을 쏟게 해 주고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는 장작불이 될 때가 많다. 따라서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나의 일이나 성취에 건강한 열정으로 바꾸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어보기를 바란다.


내가 아는 ‘다솔 맘’이라는 분은 육아를 하다가 우울증에 걸린 주부였는데, 어느 날 다시 밝고 건강하게 살아내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하루에 십 분씩 홈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간 영상을 찍어 올리다가 지금은 건강한 몸짱이 되어 방송 출연은 물론 트레이너와 다이어트 식품 사업까지 병행하면서 꽃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같은 처지에 있는 주부들에게 늘 따뜻한 조언과 응원을 건넨다. 힘든 시간을 건강하고 멋지게 반전 드라마로 이뤄낸 그녀의 신화는 그녀뿐만 아니라 나도, 당신도, 어쩌면 불안하고 아픈 시간을 견디고 있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일지 모른다.


하여, 오늘 당신에게 닥친 불안과 아픔이 당신을 너무 갉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불안을 쓱쓱 털어내고 건강한 촉매로 바꿔 멋지게 써먹을 줄 아는 약은 당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