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결정은 이성적으로

회사가 가족은 아닙니다만

by Iro


그동안의 퇴사자 모두가 한 사람, A를 지목하며 나갔다. 이후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그 사람과의 마찰로 퇴사를 고민하거나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3년여의 시간 동안 A와 업무로 엮여 스트레스를 받아온 내가 바란 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자리 분리, 명확한 업무 분담 딱 두 가지였다. 그마저도 불가능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따뜻한 공감도, 힘들었겠다는 위로의 말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동료는 가족이 아니며, 회사는 학교가 아니니까.


그저 사실 그대로를 듣고, 일반인 수준의 이해능력을 발휘해 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냐는 말, 갑질을 한 건 아니지 않냐는 말이 아니라.




당장의 문제는 해결 됐다. 그렇게 힘들면 자리를 옮겨 주겠다고, 연구 미팅도 개별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상처 난 곳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근본 원인은 그대로다. 여전히 상사는 A가 뭐가 문제인 건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해결의 의지가 없다. 깨끗한 물로 닦고 연고를 바르는 단계가 없었다.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권고사직 이야기를 꺼내 들었지만, 코스프레일 뿐이었다. 난리 칠 것 같다는 이유로 A에게는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말 잘 듣고 묵묵히 일하는 나와 후배만 불러 면담을(자기 의견 전달)을 진행했다.


덮어둔 밴드 안에서 상처는 곪아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여기보다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 일이 더 바빠질 수도 있으며, 빌런은 어디에나 있다. 이미 이곳에서 '가면을 쓴 나르시시스트'에게 적응했으며, 같이 욕하고 털어버릴 동료들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한 판단이었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어서가 아니다. A를 마주하는 게 힘들어서도, 상사의 말에 상처를 받아서도 아니다. 여기가 죽을만큼 싫어서 도망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이 바쁜 것은 문제가 아니다. 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그러나 나를 인정하지 않는 상사를 위해서는 열정을 다하지 않겠다.


고용주에게 직원이란 언제든지 갈아 끼워질 수 있는 부품일 수밖에 없는 존재일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말로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리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기서는 내가 원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10년 뒤 나를 위해 조금 힘든 길을 가려 한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후회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5년 후, 10년 후에 그리는 내 모습이 이곳에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이곳에서의 나는 밝은 마음을 갖지 못할거다. 바뀌지 않는 A를 욕하며, 상사도 그와 똑같다며 한숨 쉬고 싶지 않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돈이 부족하다며 직원들의 월급부터 동결하는걸 별수 없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숨통이 트일만하면 일을 떠넘기려는 A와 더는 씨름하고 싶지 않다.



문제를 터뜨려 준 A에게 , 더 나이 들어 이직이 힘들어지기 전에 떠날 마음을 갖게 해준 상사에게 오히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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