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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U Dec 07. 2023

현정화로 만들어 줄게요

그게 뭐든, 넌 할 수 있어. 그냥 웃자.

떼구루루 공이 굴러간다. 바닥의 떨어진 공들을 보면 얼마나 연습했는지, 공을 배불리 머금은 자동서브머신이 굉장한 속도로 쉬지 않고 쏘아댔는지 짐작케 한다. 떨어진 공들은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 탁구공 수거기 안에서 다시 만난다. 또다시, 시작이다.


동기 옆에서 속삭이며 전화를 받았고, 당황해 도착할 때까지 벙어리로 있었다 @unspalsh


나의 첫 직장은 지방이었다. - 서울살이만을 할 줄 알았던 인생이다. 친가, 외가 모두 서울이라 지방은 여행가 본 것이 전부이다 -면접은 수원이었지만, 합격했다는 문자 안에는 떡하니 지방 사업장이 적혀있었다. 당시 여의도에도 동시 합격을 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정확히 하루가 지나 연락을 받았다. 기차에 내려 기숙사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말이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가야 되나.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본 적도 없고, 혼자 잘 지낼 수 있을지를. 내 성격에 절대로 취소하겠다고 말도 못 하니, 그저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였다. 내 팔자에 지방 생활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매일 붙어살던 딸을 주말만 만났었던 게 지금도 아쉬우셨는지 엄마는 여의도 빌딩을 지날 때마다 아직도 한 소리 하신다. '거기 다녔으면 한강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었을 거야'라고.




회사의 구내식당 위에는 네 대의 탁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업장의 우두머리가 탁구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매년 탁구 대회가 열렸고, 부서마다 남녀 선수를 뽑아야 했다. 누가 하고 싶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누가가 내가 되고 말았다. 내가 가장 어려서였을까. -비록 한 두 살 차이지만- 아니면 민첩해 보인다고 심하게 잘못 본 걸까. 아니다. 분명 거절 못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GOMU 씨, 못해도 돼요. 그냥 공 딱 한 번 넘길 줄만 알면 돼요. 내가 현정화로 만들어 줄게요."

'현정화라니요. 나에게 왜 이러시나요.' 앞으로의 공 튀기고 있을 나의 미래가 두려웠다.

"공 넘길 줄만 알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대회 수상경력이 있던 과장님은 면접을 진행하듯 남녀 선수들을 모집하러 다녔다. 매일 회식해도 모자랄 판에 아저씨들과 연습을 해야 하니 누가 좋아할까. 입은 웃고 있었으나 머리는 당황했고, 눈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 나름 최선을 다해 거절하는 티를 많이 냈다. 허나, 아무도 알아 채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표정 표현은 다시 한번 셀프 검증되었다 - 당당히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해요. 죄송합니다.' 그 한 마디를 못했다. 아니, 했어도 오랜 시간 - 짧은 시간이겠지 - 붙들려 강제 설득 당했을 것이다.


선수가 꾸려지고, 회의실에서 간단한 미팅을 통해 리더, 총무를 선출하고, 팀 이름을 만들었다. 곧바로 새마을금고에 회비 통장이 만들어졌고, 다음날 바로 메일이 날아온다. 단체복 투표, 탁구채 고르기, 연습 계획, 장소 등 첨부파일명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미리 대회를 알고 있던 것처럼 본인 업무보다 몇 배로 빠른 행동력을 보여주시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집에서 놀고 있는 탁구채


아빠가 쓰시던 탁구채를 잠깐은 본 적이 있지만 손에 닿는 경험조차 없었다. 생김새가 뭐가 다른 지도 몰랐고 러버도 고르라는 말에 검색은커녕 제일 걸로 고르려 작성 중이었다. 회신이 늦어 답답하셨던 걸까. 내 자리로 친히 오셔 탁구라켓 설명을 시작하셨고 추천해 주시는 리더님이다. - 결국은 현정화 탁구채, 러버로 내 손에 들어왔다 - 그 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모여 짜인 계획대로 레슨 받기 시작했다. - 물론 개인 연습은 구내식당 위에서 매일 해야 했다 - 큰 탁구장에서 초보인 나는 복싱 전 줄넘기로 몸 풀듯 한쪽 구석에서 입으로 소리 내 숫자를 세가며 공 튀기기 백 번으로 탁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탁구에게 거부당하고 있었다.  팀으로 나눠 팀전 연습을 때면 나보다 월등한 실력의 간부들은 나에게 맞춰 최선을 다해 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 그리고 레슨이 있는 날이면 무조건 회식으로 이어지며 팀워크를 다졌다. - 모이면 탁구 이야기를 하니 지나가던 상무님은 '너희 탁구 이야기하니'라고 커피를 쏘고 가시고는 했다. 그만큼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원팀 느낌을 내보았다.


시합날이 다가오자, 저녁에 회사로 실업팀 여자 감독을 초빙해 일대일 과외를 시작했다. 레슨을 받아도 되는 레벨인가 의구심이 솟구쳤지만, 스케줄에 내 이름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차지하고 있었다.

레슨은 매우 전문적이었다. 여러 기술을 소개받았다. - 차마 연마라고는 못하겠다 - 오른쪽으로의 스텝은 쉽게 이동했지만 왼쪽 방향으로는 발이 꼬였다. 내 몸이지만 그 몇 발자국이 컨트롤이 안되었다. 몸치인 게 확실하다. 기계에서 공이 마구 날아왔고 민첩한 척 넘겼지만 속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웠다.

여보게들, 어찌, 내가 선수가 될 상인가.


대회날, 회사 운동장에는 농구대회가 한창이었고, 탁구대회도 세팅을 시작했다.

벽에는 크게 oooo배 탁구대회가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있고, 그 아래는 트로피와 상금 등이 적혀있다.

나 홀로 여 선수였기에 개인전과 탁구 혼성전 두 번을 출전해야 했다. 두 번이나 말이다. 손은 살아있는 사람 손인가 싶을 정도로 차가웠고, 얼굴과 몸에는 닭살이 돋아 있었다. 실력이 부족하고 당당치 못하니 미리 미안함과 쪽팔릴 걱정만 가득했다. 그래도 부서 대표로 출전한 것만 해도 큰일 했다는 응원에 힘입어 어설피 웃음 지어 보이며 시작 전 기념사진을 찍는다.


'한 번만 넘기면 된다' 시절보다는 실력이 우상향 했기 때문에 상대편 선수와 한동안의 티키타카가 가능했다. 배운 기술들도 나름 활용도 해보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졌잘싸였다. 그래도 남자 개인전에서 우리의 리더님은 모두의 바람대로 승리를 하셨고, 우리는 또 회식을 했다. 우리뿐 아닌 부서 전체 회식 말이다. 그 뒤로도 꾸준히 레슨과 연습을 했지만 다음 해의 우두머리의 교체로 더 이상의 탁구 대회는 없어졌고, 일이 많다는 핑계로 몇몇만 모여 게임을 하게 됐다. 후에, 신입사원들에게 우리는 벽에 붙은 사진으로, 다시는 구성되지 못할 왕년의 탁구팀으로 회자될 뿐이었다.




@ Unsplash


"엄마, 운동할 줄 알아요?" 어디서 탁구채를 찾아들고 온 아이들의 물음에 옆에 있던 최애씨가 답한다.

"너희 엄마 선수였어."

"맞아. 나는 선수였지."

이 한마디 하려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한 것인가.


돌아보니 좋았고, 그렇지 않았다 해도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모든지 삶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후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낙심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루하루가 지나며, 어리기만 했던 나의 과거를 통해 지금의 나이 든 내가 깨닫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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