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 밖에서부터 엄마 이름으로 노래 부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오복이의 목소리가 들리니 곧 일어날 일들이 예상된다. 산 정상에 오른 듯한 숨소리와 기쁨에 넘쳐흐르는 상기된 표정으로 후닥닥 달려와 품에 안긴다. 여느 때와 같이 기분 좋은 일이 굉장히 많았다는 아이는 두 가지만 알려주겠다고 인심을 쓰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사물함을 열었는데, 정말 정말 잘 그려진 꽃 편지가 들어있는 거야. 거기에 '나 너 좋아'라고 쓰여있었어."
"뭐야, 매니토(manito)야?" 얘가 좋아하던 친구인지 속으로 추측해 본다.
"아니, A라는 친구가 쓴 거였어. 어쩌다 보니 알게 됐는데, 아무튼 부끄러운데 기분이 진짜 좋아."
어린이집이 아닌 초등 신분으로 처음 받은 고백 편지에 제자리에서 콩콩 뛰는 오복이다.
"우와, 좋겠다. 그래서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했어? 용기 내서 정성 들여 쓴 걸 텐데." 아이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준다.
"아니, 편지를 발견했을 때 A는 없었어. 그리고 내가 원래 좋아하던 B는 이제 안 좋아. 왜냐하면 단발로 잘랐더라고."
나의 웃음유발자. 내 핏줄의 이상형이 긴 머리 스타일인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편지보다 더 좋은 게 있다며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하는 오복이.
'오복아, 너는 정말 큐브를 잘해서 네가 부러워.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
'너는 착해. 귀여워. 공부를 잘해.'
'방송 댄스를 했을 때, 춤을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 등 좋은 말이 계속되는 칭찬 쪽지였다.
어른들의 칭찬이나 한 번 보고 던지는 상장보다는 소중한 친구들의 한 자 한 자 적은 쪽지가 더 행복한 어린이는 몇 번을 더 보여주고, 자랑하고, 읽고 또 읽는다. 아이들의 눈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의 모습은 좋아 보이고 같이 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학교에서 사랑으로 채워진 아이는 그날의 오후를 동생과 엄마에게 사랑을 베풀며 보냈다.
그는 밝기만 한 것 같지만 울기도 잘 우는 감성적인 아이다.
"엄마 이 책 꼭 읽어보세요. 강추예요."
학교 프로그램으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맨 앞자리에 앉아 성우의 생생한 낭독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홀로 눈물을 흘렸다는 아이. 사인받은 페이지를 펼치며 '감동적이고, 슬펐어요'라며 다시금 그 순간을 느껴보는지 두 손을 가슴에 놓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한다.
어느 날은 흐느낀다. - 무슨 일이었는지, 내가 왜 아이에게 샤우팅을 뽐냈는지는 아이도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반복되는 나와 아이의 징그런 패턴으로부터 발생된 그저 보통의 하루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잊었을까. 뭐든 후련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해서 잊는 것은 결코 아닌 그냥 잘 잊는다 -
"도대체 왜 울어? 울어도 엄마가 울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엄마도 울면 되잖아요. 슬프면 울어야죠. 눈물이 나오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엉엉엉"
-어렸을 적 혼이 나면 다음날까지 펑펑 눈물을 흘렸고, 퉁퉁 부은 얼굴의 딸을 보고 엄마는 '누가 보면 초상난 줄 알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는 아이를 보며 과거의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로부터 '우세요'라는 권유는 처음 있는 일이다. 드라마 대사하듯 울면서 본인 감정을 '슬프다'로 끝이 아닌 세세하게 풀어내는 아이를 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 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면에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돌아다니는 잡념들과 눈물만 흘리는 행동 등 시시각각 만나는 여러 감정들을 나는 과연 오복이처럼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본인의 감정을 다 내뱉었는지 금세 웃고 까불기 시작하는 오복이. 이렇게 쿨한 남자를 내가 슬프게 했다니 미안했다.
연말이라 그런가 매니토가 유행인가 보다. 매니토를 매일 뽑는다는 오팔이의 유치원. 덕분에 좋아하는 편지 적기 시간을 갖는 아이는 나에게도 본인 이름이 드러난 쪽지를 비밀이라며 슬쩍 건넨다.
잠자리 독서시간, 짝다리를 하고 책장 앞에서 중얼거리는 오팔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책 제목을 하나씩 읊으며 진지하게 책을 고르는 모습이다. - 읽는 시간보다 고르는 시간을 더 갖는 아이다 - '이 책은 엄마가 눈물 날 것 같으니까 안되고, 이 책은 엄마가 잘 것 같으니까 안되고.' 읽는 사람을 배려한 그녀의 귀여운 기준에 엄마 눈에는 하트가 뿅뿅 박힌다. 관찰하고 관찰당하는 것은 알았지만 나만큼이나 파악도 잘하고 있었다. 여러 기준에 통과된, 심사숙고해서 골라온 책을 펼치는 오팔이. 최선을 다해 읽고 있던 엄마가 어느새 헛소리로 문장을 만들어내자 아이는 '이럴 줄 알았어'라며 내 어깨를 톡치며 눈 제대로 뜨라고 경고를 보낸다. '네'하고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잠이 들이닥치기 전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그러고는 아이의 다리를 베고 누워 톡 튀어나온 배에 얼굴을 묻으며 '다음 권은 이제 네 차례'라고 부탁한다.
"최애가 잘해주니?"
친정엄마는 인사하듯 매번 질문 같은 확인을 하신다. 한결같이 서글서글함이라고는 없는 사위가 딸에게 정말로 잘해주는지 궁금한 우리 엄마다. - 엄마가 항상 묻는다는 말에 놀라던 최애씨 표정이 우습다 -
사위의 캐릭터를 보면 딸 성격에 꼼짝도 못 하고 사는 게 아닌지 사서 걱정하는 어미 마음을 나도 안다. 그래서 더더욱이 그에 대한 자랑은 엄마에게 몰아서 한다.
"엄마, 오빠는 말로 표현하는 걸 부끄러워해. 그런데 요새 오빠의 사랑을 느낀 일이 있어."
귀를 쫑긋하고 집중하는 엄마에게 말한다.
"결혼하고 10년이 넘었지만 머리카락으로 채워진 수챗구멍을 볼 때면 아무말 없이 치워주는 거야." 진지한 딸의 표정에 어이없는 웃음으로 답하는 장모님이다.
"그런데 고맙다고는 말 안 해. 안 해줄까 봐." 결국 '으이구'라는 말을 듣고야 만다.
티 내는 사람이 티를 안 내니 더 고마웠나. 부끄럽지만, 뻔뻔하지만 몇 안 되는 최애씨만의 표현을 빼앗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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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넷이 밥 먹고 부대끼며 지낼 날이 그렇게 길지 않아. 오복이는 이제 3학년 되고, 오팔이는 일곱 살 형님반 올라가네. 정말 빠르다 그렇지?" 셋이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다. 둘러앉아있으니 기분이 좋은지 아이들 눈이 더 반짝인다.
"우리가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거야. 얼마 남지 않았어."
"맞아요. 2학년이 한 달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끝이래요. 너무 아쉬워요." 오복이가 말한다.
"맞아요. 뿌리반도 꽃잎반도 어제 같아요. 나는 다 기억나요." 오빠에게 질세라 오팔이도 한 마디 거든다.
"우리 잘 지내보자. 가까울수록 더 배려하고 예쁘게 행동해야 해. 그리고 엄마, 아빠는 너희가 잘못 행동하는 '것'을 혼내는 거지 너희들이 미워서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해." 미안하다 대신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최선을 다한 상냥함으로 진심을 전해본다.
"우리도 알아요. 오늘도 엄마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화난 거잖아요. 맞죠? 걱정하지 마세요." 콕 집어내는 우리 딸이다.
무수한 감정이 오가는 조금씩은 다른 보통의 하루가 반복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말, 편지, 행동 등 각자의 방식으로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 듯 돌아오지 않을 시간은 흐르고 있다.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표현의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