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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명식 Apr 01. 2023

선택. 지우개가 필요하다

너무 애 쓰지 말자

집을 산다.


"잘 샀나? 바가지 쓴 것은 아닐까?"  

가계약금을 입금한 후 갑자기 밀려드는 의심과 불안. 부동산 매매 어플을 열어보고 시세를 확인하고도 여전히 불안은 남는다.


정식 계약을 하는 일주일 여 간의 기간 동안 자금 마련은 순탄할 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매매가 잘 이루어질 지 걱정이 쌓여 간다. '아닌가?' 싶어 다 되돌리려 하니 며칠 사이에 날려버릴 가계약금이 속쓰리다.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자금 조달 계획을 수립한다. 최악의 여러 시나리오 중 한 두 요소만 풀려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증명을 시작한다.


부동산 매매는 그냥 밥 한 끼 먹는 일이 아니다 보니 나의 선택이 옳았는 지, 지금 시기적으로 적절했는 지 누가 묻지 않아도 계속 불안과 염려가 들이닥친다. 더구나 구매비용을 조달하는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커지고,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집을 좀 더 꼼꼼히 살폈어야 하지 않았나?', '수도는 괜찮겠지?', '냉장고 자리는 하나였던가? 두 개였나?'. 이런 불안과 염려는 입주하는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나 해소되지 않을까. '시간이 답이다'는 말은 진심 진리다.



옷을 산다.


"어때? 나랑 잘 어울리나?" 이리저리 살펴봐도 잘 어울리는 듯 한 마음에 내 손에는 이미 쇼핑백이 들려있다. 아마 작년에도 같은 생각으로 그렇게 옷장을 채워갔으리라. 시계도 그렇고, 구두도 그렇고, 아주 작은 물품 하나 사는 데도 일상은 그렇다. 그렇게 채워져간 옷장과 신발장과 사물함은 몇 년이 지나도 손길 한 번 거쳐가지 않는 '선택 받은 아이템'들로 겹겹이 쌓여간다.


그러다 들여야 할 것은 있는 데 쌓을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름의 대청소가 시작된다. 쌓여 있는 물건들의 저 깊은 지하층부터 하나하나 지상으로 올려지고, 버릴 것과 그래도 남길 것을 구분한다. 애매한 판정을 받은 놈들은 결국 또다른 지하층으로 잠시 보관하곤 한다. 그렇게 다시 넣으면서도 사실은 알고있다. 그렇게 내려간 물건들은 조만간 다시 올려져 '폐기' 판정을 받게 된다는 걸.


이런 과정에 나름의 위안을 주는 것이 바로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내가 채웠던 쇼핑백의 10분의 1이나 될까 말까 한 금액을 손에 쥐고 넘기면서도 '그래도 오늘 몇 만원 벌었다'는 위안으로 그동안의 방치에 명분을 입혀준다.


때로는 거래가 아닌 '선의의 나눔'을 하곤 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감사하다. 내 삶의 공간에 여유를 만들어줘서 고맙고, 돈 아껴줘서 고맙다. 눈에 보일 때 마다 죄책감을 갖게하는 런닝머신과 골프 퍼팅 연습기와 책장에서 오래 주인행세 하고 있는 전집류의 책들. '제발 가져만 가다오' 하는 마음으로 몇 만원, 때로는 무료나눔으로 작별을 고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리자마자 울리는 채팅 알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죄책감에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고, 선택의 흔적을 지우는 순간이다.



관계, 커뮤니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와 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끊임 없이 '관계 지속'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이 사람에게 내 시간을 이렇게까지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를 시작으로, '이 사람은 왜 한번도 밥을 안사지?'라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그 사람과의 관계 지속 여부를 고민한다.


그 관계가 고객이나 파트너처럼 수익이 전제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경제적 이익이 고려되지 않은 관계일 때는 '소리없는 과감한 단절'의 유혹이 항상 있다. 경험상 그렇게 해도 내 삶에 큰 변화는 없다.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고 싶다'는 쓸데 없는 자존감이 과감한 단절을 단절시킨다. 지지부진 하게 이어가는 관계는 결국 내 시간과 돈의 충전 게이지만 끌어내릴 뿐이다. 종종 부질없는 관계를 지울 과감한 지우개가 필요하다.


조찬모임 같은 관계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도 마찬가지다. 모임의 성격과 참가자의 유형상 대부분 이른 새벽, 또는 저녁 2~3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모임 참여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크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지속해야 하는 경우엔 그 관계나 모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했나?'라는 후회는 '나의 평판을 포기하겠다'는 결의 없이는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관계가 1:1이 아닌 n:n 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선택이 바로 '있는 듯 없는 듯 유령 회원'이다. 나 역시 그렇다.

 


이런 여러 유형의 선택과 습관처럼 되풀이 되는 '후회성 검토'에 지우개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든 뭔가를 구매했다면 더이상 관심을 두지 말자. 가격이 적정했는지,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아예 관심을 두지 말자. 반품을 하거나 교환을 하거나 거래상태를 강력하게 조정할 행동이 따르지 않을거라면 결정된 과거는 그냥 두고 가면 어떨까?


'후회성 검토'는 시간낭비, 감정낭비인 경우가 많다. 물론, 나중에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한 반성과 검토는 의미 있지만, 자가발전 되는 '후회성 검토'를 어디까지 할 지 잘 살펴볼 일이다.


갈수록 '시간이 귀하다'는 말은 진리다.  어느 설교 영상에서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뭔지 아세요? '두려워 말라'입니다."라고 하던데,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걱정과 염려, 의심과 후회는 그저 내 시간과 감정만 소비할 뿐이다. 단 1초 앞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앞 일 걱정하기도 바쁜데, 이미 나름 고민해서 결정한 과거를 붙들고 있을 일이 무언가?


선택했다면 그냥 앞만 보고 가자. '내가 했던 선택은 옳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 속에서 지울 것은 과감하게 지우자. 그리고 그 다음 선택에 집중하자. 그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택. 그 흔적에 대한 지우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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