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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May 18. 2020

전 지금 불안과 썸타고 있습니다.

3. feelings, nothing moe than feelings

  

 불안이나 공황에 대해 다룬 책들을 읽으면서 종종 전문가들이 실제로 불안에 대해서 얼만큼 알고 있는것인가 의아할때가 있다. 물론 암을 앓아봐야만 암질환의 명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불안과 그 극대점인 공황의 원리를 설명하는 도피 - 투쟁 반응은 경험자인 내게는 뭔가 충분치 않다.

 

<도피-투쟁> 반응은  위험에 직면했을때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신체의 생리적 활동이다. 가장 흔한 예가 바로 숲속에서 곰을 만났을 때이다.  죽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극도의 공포감속에 우리의 몸은 도망갈 준비를 하게 되며 이런 빠른 판단에 의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제는 더이상 이런 생존의 위험에 맞닥드릴 일이 거의 없는현대인들이, 일상의 환경에서 과도한 도피- 투쟁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공황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직접 이런 공황이나 불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설명이 크게 공감이 가진 않을것이다. 


작년여름, 지리산의 리조트로 여행을 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시간에 혼자 빠져나와 산책하기를 즐기는 나는 호텔 주변의 제법 우거진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다 들릴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고, 조식을 준비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기에 안심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와 대나무바람소리를 즐기며 걷고 잇는데 오솔길 끝자락, 동네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무언가 하얀것이 눈에 띄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백구였다. 새벽에 거리를 활보하는 모양새가 주인 없는 들개인듯했다. 멀리서 봐도 송아지정도의 크기인데다가 비쩍마른 체구는 날렵해보였다. 우리는 100미터 남짓한 거리를 사이에두고 눈이 마주쳤다. 백구도 잠시 멈칫하는듯 하더니 내 쪽으로 한 발 디디면서 다가올 기미를 보였다.  순간 나의 몸속에서는 말로만 듣던 투쟁-도피반응이 일어났다. 극심한 공포가 밀려온 것이다. 전화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것도 의미없는 상황이었고, 호텔로 달려가 도움을 청하는 시간보다 백구가 전력질주하는 시간이 짧을꺼라는 계산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백구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뛰어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호텔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도피-투쟁의 매커니즘이구나하고 공황/불안과 비교해보았다. 두 느낌은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첫째, 투쟁-도피에는 실체가 있었다. 백구를 만났을때 내 몸은 이 불안과 공포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황이나 불안은 실체가 없다. 지하철, 비행기, 터널과 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황의 예는 사실 실체라고 할 수 없다. 막연하게 불안하고 막연하게 내가 빠져나갈수 없을것같거나 정신줄을 놓을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 촉매재가 되는 상황은 점점 더 범위가 확대될뿐더러 언제 어디서 공격해올지, 어떤 공격인지 조차 명확히 알 수 없다. 

둘째, 도피-투쟁반응에서는 오히려 의식이 명료해졌다.  백구와 마주쳤을때 내 몸은 온 에너지를 다해 이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갈것인가에 집중했다. 백구를 자극하면 안되겠다라고 판단할 수 있었던것도 온전히 이 사태에 집중했기때문이며 아마 호텔과의 거리가 짧아서 내가 내달려야 겠다고 판단했다면 평소보다 더 초인적인 에너지를 내서 달릴수 있었을것이다. 고층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내는 엄마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황이 시작되면 이처럼 이성적이고 명료한 사고를 하기 힘들어진다. 이러다가 내가 죽는건가,  사람들앞에서 쓰러지면 어떡하지와 같은 일어나지 않을 상황들을 계산하고 고려하느라 정작 내가 닥친 상황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백구가 사라지자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심지어 운이 좋았다고까지 느꼈다.  또 백구를 만나게 되면 어쩌지같은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공황은 다르다. 터널을 아무일 없이 빠져나왔다고 한들 안도감이 느껴지기는 커녕 불안의 파동이 계속해서 남아 있고 그 기분은 오래도록 남아 또다른 예기불안을 만들어낸다. 

 

많은 전문가들이 공황을 도피-투쟁의 결과물이라고 말을 하는데 생리학적으로는 같은 원리일지 몰라도 경험자가 느끼는 공포는  훨씬 더 강렬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의 경우는 불안장애지만 불안이 누적되어 폭발하면 공황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버린다. 다른 환우들과 비교해봐도 나의 공황의 정도는 그다지 심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도 않지만 잔잔하게 계속해서 파고를 높이하며 불안의 임계치에 다다르는 시간이 초 스피드로 짧은편이다. 그 임계치를 넘겨버리면 공황처럼 훅 스치고 지나가면서 불쾌함이 하루 이상 지속된다. 그런데 이것이 심해지자 어느순간에는 이제 더이상 불안할 것이 없는데도 내 스스로 불안을 찾고 있고 또 가만있다가도 불안이 내부에서 꿈틀대며 올라오는것이 느껴졌다. 공황처럼 숨이 가빠오면서 또 왜이러지, 나 어떡하지 같은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빛의 속도로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야하나, 이번에는 진짜 심각한거 아니야 여태까지와는 양상이 다른거 같은데. 같은 시나리오도 쓴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로맨스소설을 읽을때였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졌을때 하는 이야기였다. "요즘 항상 같이 지냈죠. 낮엔 일터에서 만나고, 퇴근하면 둘이 시간 보내고. 당신 원고쓸 시간까지 뺏는 줄 알면서. 오늘 아침도 오피스텔을 나올 때부터... 사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게 사랑이 아니면 또 뭐란 말이야." 


그렇다! 불안의 기재는 도피-투쟁이 아니라 사랑에 가깝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그 대상을 시도때도 없이 생각한다. 잠시 몰입할때는 잊기도 하지만 존재를 주장하듯 수시로 삶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로맨스소설을 읽으면서 불안을 떠올리는 것을 보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생각했는데 자꾸 생각이나고 거슬린다. 심지어 그와 전혀 상관이 없는 물건조차도 그의 존재를 떠올리게한다. '그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될까?'와 같은 불필요하게 먼 미래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속에 몰입한다. 그 앞에서면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면 말을 실수한다. 사랑에 빠졌을때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살이 빠지며 예뻐지는 효과 역시 불안의 신체화와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사랑 역시호르몬에 의한 신체적 반응 , 종족보존을 위한 인류의 본능이라고 설명할 수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는 그것을 '감정'이라고 부른다. '불안'도 똑같다. '사랑'처럼 억눌러지는것도 아니요. 말로 설득한다고해서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슬프게 예를 들어 사랑해서는 안될 상대를 사랑하는것이라 치자.  잊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수시로 튀어나오고 억누르자 할수록 더 크게 활개치며 몸과 마음을 휘젓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 은 이해와 공감을 받지만  '공황/불안'은  나약한 정신과 의지에서 꽃피는 것으로 오해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 환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살라'던가'운동을해라','너무 한가해서 그런 일이 생기는거다', '적극적으로 살아라', '그만 잊고 놓아버려라'와 같은 말들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의미가 없을 뿐더러 상처까지 남긴다. 그 사람 그만 잊으라고 술잔을 기울이며 상담해줬더니 끝끝내 나쁜남자와 헤어지지 못하는 친구는 당신만큼 영리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답을 몰라서도 아니다. 물론 고통받는 친구에게 조언을 건네지 않는 것도 나쁜 친구겠지만 만약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공황이라거나 불안이 있다면 '사랑'에 빠진것과 비슷하겠구나 그저 이해해보자. 그리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저 물어봐주자. 결국 사랑을 감당하는 것도 잊는 것도 그 사람만의 몫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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