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엇을 상상하건 그것은 최악이 될지니
종종 불안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이 있다. 무엇을 생각하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는것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막연함이기때문에 불안의 실체를 알게 되면 무서울게 없다는 소리다. 롤러코스터를 탈때보다 타기 전 줄이 내 코앞으로 올때까지의 시간이 더 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과연 그럴까? 불안이 얼마나 대단한 시나리오작가인지, 그 디테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구체적인지 안다면 아마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는 말은 접게 될것이다. 또 그 상상을 하는 사람이 일반인과 같은 회로가 아닌 불안을 기저에 깐 회로로 상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런 조언은 오히려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테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일반인은 물론 불안증 환자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확진자가 되는 것일 것이다. 공황장애 카페는 물론 위장병카페만 가보더라도 많은 분들이 집에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검사를 이차 삼차까지 끝낸 경우도 많이 보았다. 나만하더라도 코로나가 시작된 지 5개월동안 정말 다양한 증상을 겪었다. 위장병을 시작으로 작열감, 목이물감, 호흡곤란, 인후통과는 다른 목통증, 가슴 답답함, 오한, 몸살은 물론이요 기본적으로 있던 어지러움과 두통은 수시로 찾아왔다. 그리고 현재는 복통과 설사로 고생중이다. 한쪽 목도 불편하다. 그렇게 걱정된다면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된다. 일반인들이라면 그것만으로 간단하겠지만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또 선별진료소를 가서 없던 병이 옮아오는것도 두렵다. 어떤 분은 바이러스가 옮을까봐 우비를 입고 진료소를 찾아갔는데 코로나일리가 없다하여 검사도 못 받고 돌아왔다 한다. 둘째로 음성이 나왔다한들 혹시 검사 키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다. 셋째, 당장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어차피 또 신체화증상이 시작되면 코로나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코로나 검사를 받을순 없는 일이다. 응급실에서 또 오셨냐고 귀찮아하더라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 그럼 일단 코로나검사를 받았다고 치자. 설마했는데 양성이 나왔다 치자. 음압병실에 가족들과 동떨어져 격리되는 상상. 가족 전원이 내게 옮아서 확진된다면 그 또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행이다. 차라리 나혼자 걸리면 괜찮지만 남편과 나만 확진이된다면 애는 어찌해야하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치료기간, 대부분 증상이 경미하다지만 내게는 어찌될지 모를 치료의 고통, 그 상황에서 공황이 오면 어쩌나 하는 오만가지의 디테일들이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심지어 격리중에 가져간 물건은 갖고 나올수 없고 다 폐기해야한다는 난 뭘가져가야하나 까지 고민한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일반사람들은 놀란다. 와. 그렇대? 격리되어있는동안 물건은 폐기래? 어디서 그런 정보는 들었어?
불안장애들의 특징 바로 정보화다. 일단 불안한것들에 대해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은다. 불안이 막연하기때문에 그것에 상반되는 자료를 모으려고 하는 본능적인 활동이다. 이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불안이 써내는 시나리오도 점점 디테일해지는것이다.
참. 그런데 시작이 어디였더라? 그렇다. 목이 조금 따끔하고 복통이 있다는것이었지. 그런데 벌써 나는 음압병실에 와 있다. 그런데 아직 최악의 상황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가족도 못 보고 고통스럽게 죽는것 말이다.
이런데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게 과연 불안환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내생각엔 절대 아니올시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는것은 불안장애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뇌 회로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서 코로나 검사 받아보지 뭐. 아님 말고. 걸려도 감기처럼 지나간다니까. 난 기저질환도 없고 뭐.하고 생각을 접는게 다 일꺼다. 코로나는 사실 모든 이들에게 불안을 자아내는 상황이니만큼 불안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공포를 자아낼순 있을꺼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조금 불안한 정도지만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공포가 일상을 휘어잡고 그것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신경을 쏟을라치면 몸에서 신호를 보낸다. '배아픈것같은데? 역시 코로나인가.' '목아픈게 어제와는 또 다른데. 역시 코로나인가?' 하고 말이다. 아프지 않은 순간에도 선별진료소를 가야하나 고민한다.
심지어 지금 이 코로나시대에도 모든 공황불안 환우들이 코로나를 염려하는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그들마다의 화두가 있다. 근육이 이유없이 떨린다던가, 어디라고 말할수 없는 통증이 발생한다. 루게릭이 아닌가, 파킨슨씨병이 아닌가, 코로나는 감기처럼 지나간다지만 내 병은 불치병이 아닌가 하는 더 큰 화두로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코로나 시대인가 아닌가는 불안,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그 정도의 공포와 늘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런고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는 것은 그 불안에 불안을 더하는 꼴이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보다는 도마뱀꼬리 자르듯 생각을 잘라내는것이 더 나은방법이다. 이 또한 전문가들이 많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코로나 증세가 의심된다고? 좀 더 두고보지 뭐. 약을 먹어 보지 뭐. 하는 식으로 생각이 가지치기를 하는것을 막는 연습을 해야한다. 물론 평생을 이런 불안 사고 회로에 사로잡혀왔던 사람이라면 절대 쉽지 않다. 더구나 자기가 걱정을 하는만큼 최악의 상황이 터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미신마저 갖고 있는 범불안장애적 사고가 굳혀있는 사람이라면 걱정을 멈추기란 곡기를 끊는것만큼 힘든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을 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불안할때면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한다. 산책을 나간다. 안되면 워킹패드에서 걷는다. 걸어도 불안이 떨쳐지지 않을때는 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물론 불안한사람들은 몸을 움직이다가도 신체에 불쾌한 반응이 오면 움츠려들면서 또 최악의 상상을 향해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되지만. 그럴때도 생각을 끊고 움직이자. 비록 우리 신체는 계속해서 생각할틈도 주지 않고 불안공격을 해오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