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마약커피
“엄마,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면 미친 거야?”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우리 아이도 종종 엉뚱한 질문을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울음 가득 담아 했던 그 질문도 그런 거려니 했고. 그것이 거대한 불안의 보푸라기였다는 것을 그땐 몰랐었다. 아이가 귓속말로 엄마를 칼로 찌르는 상상을 했다거나, 누군가의 목이 날아가는 생각을 했다면서 울며 매달릴 때서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의 일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을 아이는 24시간을 불안이 많은 나와 붙어 있었다. 공원 운동기구도 못 만지게 하고, 마스크 밑으로 무심코 코만 건드려도 바이러스가 퍼진 것처럼 히스테리를 부려대는 나와 말이다. 8살 아이의 감당하기 힘든 공포는 결국 나에 대한 애증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더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집에서 제일 가까운 심리상담센터에 전화했다.
상담센터는 한남동의 낡은 빌라를 개조한 것이었다. 3층 상담실까지 올라가는 동안 1층과 2층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로 점심 메뉴를 다 알 수 있을 정도의 작고 좁은 빌라였다. 상담 선생님은 굉장히 이성적인 분이라 팩트만 전달할 뿐,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말하는 법은 서툰 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담센터 거실 서재에 꽂혀있던 몇 권 안 되는 책들이 내 취향과 너무 비슷해서 한 번 믿어보자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사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웩슬러 검사 결과 아이의 우울증은 지능을 해칠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이라 했다. 4살에 혼자 한글을 뗀 내 딸이 지능이 이상하다고?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존심을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이의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해야 했다.
대가를 바라고 아이를 기른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진 대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라는 말고 있노라면 엄마로서의 자괴감이 드는 것은 물론 인간으로서도 실격인 기분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같은 말을 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딸은 너무도 어렸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극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에요.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정말로 구체적으로 그걸 실행하겠다는 말은 아니라 자기가 그만큼 힘들다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 가까운 대상이 엄마뿐이잖아요. 엄마가 아니면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겠어요.”
아스퍼거 증후군도 아니고 미래의 사이코패스도 아니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도 보내고, 학교도 보내기 시작했고 아이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어 갔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아이의 불안과 우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탓이었다. 어느 정도 호전의 기미가 보이자 슬슬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근처 카페에 갈 여유도 생겼다.
마침 상담실 올라가는 길 비탈진 곳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허름한 나무 간판에 '마약커피, 밤에는 바 낮에는 커피'라고 페인트로 대충 이름을 쓴 곳이었다. 처음엔 카페 이름이 마약커피인가 싶을 정도로 간판도 없는 곳이었다. 치료시간은 40분 남짓이라 오가는 시간도 생각해야 했기에 1분 거리에 있는 마약커피가 딱이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카페나 한번 가볼까? 하는 즐거운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생겨나지 않아 다른 카페를 가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반지하를 개조한 '테이크 C'카페(그게 카페의 이름이었다)에는 들어설 때마다 창고에서 나는 묵은 곰팡내가 났다. 한남동 일대의 정리되지 않은, 오래된 가게다웠다. 한가운데는 유원지에나 볼법한 커다란 회전목마가 생뚱맞게 놓여있었다. 회전목마는 실제로 불빛을 빛내고 움직이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이 목마, 아이도 탈 수 있나? 다음에 아이랑 와 볼까? 아... 아이가 다시 나를 따라 즐겁게 다니며 행복해하는 날이 올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미래를 생각하기도 힘들 만큼 지쳐있었다. 그 회전목마는 그날 딱 하루만 운영하고 아이의 상담이 종료될 때까지 다시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 카페에서 정말 신기했던 건 맨 안쪽에 걸린 캔디 그림이다. 90cm 정도의 길이의 제법 큰 액자인데,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인공 캔디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이다 못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림이었다. 캔디라는 캐릭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의아할 것이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 가사가 그랬을 정도로 울지 않는다는 씩씩한 캔디이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에는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아이가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였다. 요즘 아이들은 괴롭거나, 슬프면 참지 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배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잘못하는 거라고까지 한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방문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늦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면 엄마는 괜찮다고 말해주셔야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괜찮다니, 난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꿋꿋한 캔디가 되어야 했다. 아이 앞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했다.
‘어휴 달아.’
마약커피의 첫 모금은 그랬다. 딱히 원두의 질이나 맛의 깊이를 말하기에 앞서 무턱대고 달달하게 해 주겠다고 작정한 듯 한 맛이었다. 나는 단 맛 커피는 눈속임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질 낮은 원두를 가리기 위해 크림이나 헤이즐넛향등을 첨가한다고 알고 있다. 마약커피도 시럽을 몇 번이나 펌핑한 것인지 당도, 칼로리도 염려될 정도였다. 마약커피는 더치커피에 우유를 타고 나름의 비법을 넣은 커피로, 아이스로만 제공되었다. 덕분에 몇 모금 빨다 보면 컵에는 얼음만 잔뜩 남았었다. 어쩌면 그 얼음을 다 녹이면서 먹는 게 마약커피의 정석일지도 모르지만 상담실 왔다 갔다 하고 주문하고 어쩌고 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30분이나 거기 앉아 있었을까. 커피도 후루룩 마시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갖고 간 노트에 연필로 몇 줄 끼적이면 끝나버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카페의 스탬프를 두 번 채울 무렵까지 다녔다. 이름뿐일지라도 마약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메리카노나 라테처럼 다른 선택지가 있었지만 갈 때마다 꼭 '마약커피'만 주문했던 것은 그 터무니없는 달달함이 위로처럼 느껴져서였을지도 모른다.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사실은 달달한 사탕이 먹고 싶으면서도 어른의 음료인 커피를 마시는 척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회복력은 놀랍다. 아이는 고작 2년 전의 일을 한 번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 기억은 아이에게도 상처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잃어버릴뻔한 것에 대한 소중함으로 남았을까. 아이가 사랑스러운 얼굴로 문맥 없이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할 때면 한때 잃었던 그 사랑의 아찔함이 생각나 "고마워."라고 대답한다. 조금은 울컥한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