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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자원: 재능

취미에서 "꾸준함"은 무조건적인 미덕이 아니다.

by 홍충희

저번 글에서는 아주 정량적이고 파악하기 쉬운 여가 자원인 시간을 알아보았다면 이번 글에서 알아볼 자원은 상당히 주관적으로 파악해야하는 자원일 것이다. 심지어 이 글을 모두 읽어더라도 내가 가진 것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 자원은 당신이 무언가를 좋아하게 하고, 무언가를 오래 영위하게 할 것이며, 더욱 몰입이 쉽도록 만들어줄 결정적 자원이다.


오늘의 여가 자원, '재능'이다.



당신의 '재능'을 다루기 앞서 주의할 점이 있다.


당신의 '재능 부족' 혹은 '재능 충만' 현상을 당신의 여가 전략의 참고 사항으로서만 겸허히 접근해야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재능이 없다'는 말을 내뱉는 것은 '넌 해도 안될 놈이다'라는 식의 모욕으로 비치는 것은 사실 '재능'이라는 단어가 함의한 것을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주제에서는 굳이 할 필요없는 반응이다.


우리는 '재미있게 사는 법'을 논하고 있다. 당신의 인간적 가치, 혹은 생사여탈권을 지닌 일을 논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뜨개질에 재능이 없는 A가 있다고 해보자. A는 소근육을 잘 컨트롤 하는 편도 아니어서 가위질도 서툴고 뜨개질처럼 반복적인 행위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뜨개질에 맞지않는 성격과 특성을 지닌 것이다.


그렇다면 A라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 혹은 무능한 사람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A의 천성을 미루어보았을 때 뜨개질을 5년이고 10년이고 붙잡고 있는 것과, 그냥 다른 취미를 시작하는 것 중 후자의 선택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전략적이고 현명할 수 있을 뿐이다.


즉, 당신이 어떤 분야에 재능이 없다고 해서 당신의 인간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생사여탈권에 위협이 가는 일은 없다. 다만 재능은 취미를 계속 이어나갈 것인가, 혹은 더 잘 맞는 취미로 전환해볼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된다.


따라서 나의 재능을 파악하는 것은 나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더욱 현명하게 사용하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으로서 생각해야한다.


더불어 모든 분야에 충만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없음을 명심하시라.



일단 재능이란 무엇일까?


캐나다의 심리학자 프랑수아 가녜의 DMGT 모델에 의하면 재능은 두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1. 선천적 잠재력 - Gift

말 그대로 타고남의 영역을 뜻한다. 훈련되지 않은 자연적인 능력이다. 선천적 잠재력에는 다시

지적 잠재력: 이해력, 추론 능력, 기억력, 논리력, 판단력 등

창의적 잠재력: 독창성, 상상력, 문제 해결의 유연성

정서적 잠재력: 공감 능력, 리더십,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

감각운동 잠재력: 반응 속도, 협응력, 근력, 균형 감각, 오감의 민감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2. 개발된 재능 - Talent

선천적 잠재력(Gift)이 학습과 연습 등 여러 환경적 상호작용을 통해 눈에 띄는 결과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들면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 축구 훈련을 통해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는, 전형적인 과정이 Talent, 개발된 재능이다.


그렇다면 선천적 잠재력을 '재능'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가녜는 선천적 잠재력을 재능으로 바꾸는 것을 촉매라고 불렀는데 이 촉매는 다시 둘로 나뉜다.


1. 개인 내적 촉매 (Intrapersonal Catalysts)

그 사람의 내부적인 특성을 뜻한다.

동기부여: "나는 이걸 정말 잘하고 싶다"는 열망, 열정

성격적 특성: 꾸준함, 끈기 (Grit), 성실성, 좌절을 견디는 힘

자기 관리: 시간 관리, 의지력, 연습에 대한 집중력

2. 환경적 촉매 (Environmental Catalysts)

그 사람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뜻한다.

인적 환경: 훌륭한 스승, 부모의 지지, 혹은 건강한 라이벌

물적 환경: 연습에 필요한 자원 (예: 악기, 운동장, 컴퓨터)

기회와 운: 나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끌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결정적인 대회나 사건


이해가 쉽게 뜨개질을 대입하여보자.


뜨개질을 빠르게 배우고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은 잠재력을 타고났을 가능성이 높다.


-소근육 협응 능력: 두 손가락, 또는 여러 손가락을 정교하고 민첩하게 따로 움직이는 능력

-눈-손 협응력: 눈으로 도안이나 편물을 보면서 동시에 손을 정확하게 움직이는 능력

-촉각 민감성: 실의 장력을 손끝으로 일정하게 느끼고 조절하는 감각

-공간 지각력: 평면 도안을 보고, 그것이 입체물로 어떻게 구현될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능력

-수리/논리력: 콧수, 단수, 게이지를 계산하고, "3코마다 1코씩 늘리기" 같은 패턴의 규칙성을 이해

-미적 감각: 배색을 할 때 어울리는 색을 고르거나, 완성된 편물의 디자인을 상상하는 능력


허나 이런 능력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가 뜨개질로 멋진 크로셰 셔츠를 뜰 수는 없다. 이것은 다시 촉매가 필요한데, 예를들면 다음과 같은 촉매들이 있을 수 있겠다.


내적 촉매

-끈기 및 인내심: 지루하고 반복적인 동작을 견디는 성격

-꼼꼼함: 콧수를 정확히 세고,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성격.

-동기부여: 완성작을 입거나 선물할 때의 기쁨,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에 대한 열망.

환경적 촉매

-훌륭한 학습 자료: 친절한 유튜브 튜토리얼, 잡지, 좋은 도안, 근처에 있 유능한 공방 선생님.

-자원: 고품질의 바늘과 원하는 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커뮤니티: 함께 뜨개질을 하는 동료나 친구

-기회: 뜨개질 전문 자격증 등


즉 "재능"이란 당신이 타고난 잠재력과 내, 외부적 촉매가 만나 완성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당신에게 "재능"의 형태로 표출된다.




자, 이제 당신의 잠재력, 내적 촉매, 환경적 촉매가 만나 '재능'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잠재력, 내적 촉매, 환경적 촉매.


이 세 가지 중 당신의 재능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무엇부터 알아봐야 할까?


흔히 '재능'이 가진 어감 때문인지 자신의 '잠재력'을 먼저 파악해야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천만의 말씀.


먼저 촉매부터 살펴봐야한다.


잠재력을 가장 마지막에 파악하는 이유는, 잠재력이 가장 마지막에 파악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잠재력을 모른다.


'당신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따위의 희망적인 위로를 말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판단할 방법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자신의 잠재력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한 번 제대로 해 보는 것" 뿐이다.


잠재력을 먼저 파악하고 '아 나는 어차피 이거랑 안 맞겠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해보고 '아, 해보니까 나는 이 분야에 잠재력은 별로 없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순서다.


따라서 잠재력-촉매 순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촉매-잠재력 순서로 파악해야한다.


'아 이런 거 재밌겠네, 이거 배워보고 싶다, 이거 한 번 해볼까?' 하는 감정이 들었다면 촉매에 해당하는 '내 시간은 어떤 지, 주변에 학원은 있는지, 독학 가능한 분야인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지' 등을 먼저 파악하고 촉매가 많이 부족하다면 시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촉매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음에도 '해보고 싶긴했는 데 나는 학창시절에 이런 거 싫어했어, 잘 못했는 데 지금 하면 더 못 하겠지' 등 자신의 잠재력을 지레짐작하고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은 성급하다.


다시 역설하지만 당신의 잠재력은 직접 해보아야 파악할 수 있다. 잠재력도 굉장히 많은 요소가 얽혀있어 같은 그림이라도 펜 드로잉에 필요한 잠재력과 수채화에 필요한 잠재력은 상당히 다르다. 따라서 학창시절 수채화를 많이 망친 당신 스스로 '난 미술 자체에 재능이 없어' 라고 쉽게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수채화를 전문적으로 배웠으면 어떤 재능이 드러났을 지 모를 일이며 수채화에 잠재력이 없다 하더라도 펜 드로잉에 잠재력이 없는 지, 도예에 잠재력이 없는 지는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원이나 동호회, 유튜브 독학, 책 독학 등 어떤 경로로든 일단 시작하시라. 먼저 냉정하게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그 이후에나 하는 것이다.




나의 잠재력, 내 성격과 이 분야는 그럭저럭 잘 맞는 지, 나의 시간, 선생님, 취미 친구 등은 어떤 지에 따라 당신의 재능은 30년 동안 취미를 이어가게 만드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6개월 정도 만에 그만둘 수도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전자처럼 무언가를 꾸준히 30년 하는 것이 가치가 높고, 6개월만에 그만 두는 것은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며 취미를 통해 개인의 영달을 이루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취미를 통해 삶에 마음 영양을 고루 공급해 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몰입 상태로 진입할 필요가 있는데 여러 요건들에 의해 내가 "몰입"의 경지에 이를 실력을 갖출 수 없다면, 시작했다고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커리어에서는 꾸준함이 미덕일 지는 몰라도 취미 생활에서는 무조건적인 꾸준함이 미덕이 아니다.


재능은 자원이며, 모든 자원은 소모된다. 취미를 하다보면 빠르든 늦든 벽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비록 벽을 만났지만 몰입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실력이라면 계속 취미를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없는 시점에 벽을 만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겸허히 자신의 재능 자원의 소모를 인정하고 다른 것을 배워도 좋다. 그렇게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 아니겠는가.


기억하시라,

취미의 묘미는 꾸준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싫증에서도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싫증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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