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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자원: 현실

금전과 인프라

by 홍충희

지금까지 우리는 시간, 재능이라는 내면의 자원에 대해서 다루었다. 내면의 자원들은 충분히 조정 및 개발, 발전이 가능한 자원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루어 볼 여가 자원은 슬프지만 냉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할 자원이다.


바로 당신의 '현실',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당신의 돈과 인프라이다.



먼저 당신의 인프라를 살펴보자. 인프라란, 당신이 사는 곳이 갖추고 있는 여러 기반 시설을 뜻한다. 여가에는 여러 기반 시설이 요구된다. 물론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며 여러 인프라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알아서 여가를 영위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는 했으나, 인프라가 없는데 고군분투하는 것과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에서 여가를 자연스레 생활반경에 녹아내는 것 중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즉 여가를 결정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프라이다. 인프라가 당신의 여가에 대한 접근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어떤 이는 '뭐야, 무조건 서울이 좋잖아'처럼 대도시 위주의 인프라를 떠올려 반응할 것이다. 물론 서울 등 대도시가 갖춘 문화, 여가적 인프라가 압도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허나 당신의 여가 생활이 그 인프라를 총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다. 아예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여가도 존재한다. 당신의 여가가 예쁜 카페에서 차 마시며 책읽기라면 반드시 대도시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당신의 취미가 파인 다이닝 탐방이라면 그건 서울에서 주로 가능한 여가일 것이다. 당신이 패러글라이딩에 흠뻑 빠져있다면 서울은 그리 좋은 거주지가 되긴 어렵다. 당신의 적극적 휴식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별을 보며 거니는 것이라면 복잡한 대도시는 최악의 거주지가 될 것이며, 당신의 소비적 휴식이 많은 사람들과 관심사에 대해 수다떠는 것이라면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서울은 최고의 거주지가 될 것이다.


즉,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가를 준수하게 보장하는 인프라를 가진 단 하나의 지역도 없다는 것을 먼저 명심하라.


인프라는 나와의 거리로 분류할 수 있다. 집-동네-도시-지역-국가. 결론적으로 가까운 곳에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당신에게 중요한 인프라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의 집이 갖춘 인프라, 집이 갖추진 못했지만 우리 동네가 갖춘 인프라, 우리 동네가 갖추진 못했지만 도시가 갖춘 인프라... 처럼 더 가까운 곳의 인프라가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게된다. 자연스레 당신과 가까운 곳이 갖춘 여가 인프라가 당신의 여가 활동의 빈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집-동네-도시-지역-국가는 곧, 이동시간 0분 - 도보 15분 이내 - 30분 이내- 2시간 이내 - 2시간 이상 정도의 시간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빈도로 치환되어 매일-매일-주 3회-주 1회-월 1회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쭉 풀어서 설명해보면 내 집을 떠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도보 15분 이내의 거리를 걸어가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량이나 지하철, 버스 등을 타고 30분 이내의 거리를 이동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주 3회정도 즐길 수 있다. 기차나 시외버스, 자가용 등을 이용해 30분 이상 2시간 이내로 이동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주말 등을 이용해 주 1회정도 즐길 수 있으며, 무슨 이동 수단을 이용하든 2시간 이상 이동해야 접근 가능한 것은 월 1회 정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빈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인프라와 나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즐길 수 있는 빈도는 급감함은 어쩔 수 없다. 빈도가 늘어날 수록 당신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여가가 되기 때문에 먼저 집-동네-도시 정도 범위의 인프라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기를 추천한다.






다음은 금전을 살펴보자. 우리는 우리의 재정 범위 내에서 여가 생활을 즐겨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하면 우리가 영위하는 여가 생활이 우리의 경제적 상황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돈이 중요하긴하지만 당신의 행복과 마음 건강을 지켜줄 여가 생활을 그 자체를 돈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희생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돈을 버는 이유의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더욱 질 높은 여가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던가. 돈 때문에 무언가를 영위하기 어렵다면 해결 방법은 아주 단순할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아니면 돈에 맞게 무언가를 즐기거나.


이 책은 후자의 방법을 전하는 책이고, 다시 한 번 역설하지만 내 현금 흐름 사정에 맞게 여가를 조정하는 것은 서글프거나 불쌍한 것이 아니다.


여러 취미와 휴식에는 명백히 비용이 든다. 여가 시간에 다양한 취미와 휴식을 즐긴다면 그만큼 비용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넷플릭스 구독권부터 배달음식비, 재료비, 강의료, 장비, 레슨비, 대여비, 이용료 등 수많은 비용이 당신의 계좌에서 야금야금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여가를 즐길 때 우리는 어떤 비용을 치르게 될까?


여가에 사용하는 비용은 크게 일회성 비용 유지 비용,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목돈을 쓰는, 일회성 비용이다. 예를 들면 초기 장비 , 중간 장비 업그레이드, 환경 구축, 자격증 등과 같이 한 번 지출하면 영구적으로 다시 쓸 필요가 없는 비용, 특정 주기(연 단위 - 3년, 5년 등)마다 사용하는 경우가 일회성 비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회성 비용은 아무래도 큰 금액의 목돈을 소모해야하지만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비용은 아니다.


일회성 비용의 가장 대표적인 항목인 초기 장비 구매 비용은 많은 취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용이다. 특정 취미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특정 장비가 필요한 경우이다. 그리고 이런 취미는 특정 주기마다 개인의 실력 향상, 욕심, 기술의 발전 등의 이유로 인해 자연스레 중간 장비 업그레이드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악기 연주를 위한 자체 악기 구매 비용, 러닝을 위한 신발, 옷, 워치 구매 비용, 디지털 드로잉을 위한 펜슬, 태블릿 구매 비용, 사진 촬영을 위한 카메라 바디, 렌즈, 삼각대 구매 비용, 작곡이나 디제잉을 취한 미디 컨트롤러, 자전거 라이딩 취미를 위한 헬멧, 자전거, 의상 구매 비용, 게임 취미를 위한 의자, 고성능 PC나 콘솔 구매 비용, 공예 취미를 위한 각종 전동 공구, 수공구 세트 구매 비용 등, 수많은 취미들은 초기에 장비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이 장비들은 일종의 자산 형태로 당신에게 남게 된다.


헌데 이 자산은 단순히 물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실력, 자격증, 허가증 따위의 것들도 무형의 자산이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취득을 위한 라이선스 발급비용,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 하기 위한 정규과정 학원 등록비, VFX나 3D 모델링 취미를 위한 고가의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 특정 장인이 며칠간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고가의 마스터 클래스 참가비, 헬스 PT 비용 등 한 번만 지출하면 내게 아주 오랜 기간 남아서 더욱 윤택한 여가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무형의 자산들 또한 우리가 지불하게되는 일회성 비용이다.


즉, 일회성 비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취미나 휴식을 영위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유, 무형의 "자산" 구매 비용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유지 비용은 일회성 비용과 조금 다르다. 유지 비용의 특징은 일회성 비용에 비해 지출의 주기가 더욱 잦은 편이고, 더욱 결정적 차이점은 내게 자산의 형태로 남지는 않지만, 이 취미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꾸준히 소모해야하는 학원비나 레슨비(스포츠 취미의 월간 레슨비, 악기 레슨, 영어 학원비, 보컬 트레이닝 비 등), 재료 및 소모품비(베이킹 취미의 밀가루, 버터, 와인이나 위스키 테이스팅 할 때 매번 구매하는 술값, 도예 취미의 흙이나 유약, 파인 다이닝을 하기 위해 지출하는 식비 등), 공간/시설 이용료(수영장 회원권, 골프 연습장 회원권, 헬스장 회원권, 공방 회원비 또는 이용료 등), 구독료 (OTT, 스트리밍, 소프트웨어, 전자책 등) 등이 유지 비용이다.


한 마디로, 취미나 여가를 시작하면 정말 자연스레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적은 비용이 유지비용이다.


결국 우리는 여가를 영위할 때 자연스레 일회성 비용과 유지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당신이 저금해놓은 목돈, 당신의 현금 흐름에 따라 자신이 즐기는 취미와 휴식의 특성을 파악하여 조정할 필요가 있다. 어떤 취미는 일회성 비용이 크고 유지 비용을 적을 수도, 일회성 비용은 적지만 유지 비용이 많을 수도, 둘 다 많거나 둘 다 적을 수도 있는 일이다. 심지어 같은 취미나 휴식을 어떻게 영위하느냐에 따라서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 비용이다.


금전은 한정적인 자원이다. 당신이 여가에서 비용을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여가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비용이 내 목적에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지를 냉정히 파악해서 어쩔 때는 과감하게 사용하기도, 혹은 아껴서 사용하기도 하는 현명함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무조건 우리가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즐기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들만을 보며 살 수 있다면 참 즐거운 삶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리적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 이상 무조건 하고 싶은 것만 할 순 없다. 여가에도 이는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는 가진 금전, 지역 인프라 등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여가를 즐길 수 밖에 없다.


혹자는 자신이 가진 결핍을 증오하고 혐오하다가 급기야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혐오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결핍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물론 결핍이라는 것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결핍에 순종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말했 듯 우리 사회의 제로섬 게임은 모든 이가 결핍이 없는 상황을 허락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당신이 이 제로섬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매우 존경하며 존중한다.


다만 현재 자신이 가진 결핍을, 행복을 찾는 여가 활동에까지 전염 시켜 안타까움이나 자기연민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해야할 뿐이다. 현실은 현재의 상태일 뿐이다. 이를 그저 냉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시길.


현실은 오히려 여가 생활에서 중요한 필터의 역할을 한다. 당신의 금전과 공간, 지역에 따라 영위하기 어려운 취미들이 걸러지게 된다. 즉, 이 세상에 흩뿌려진 수많은 취미 중 몇 가지 선택권을 당신에게 제시하는 가이드 라인이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현실 '필터'에 의해 '슈퍼카 레이싱'이 걸러졌다고 해서 굳이 슬퍼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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