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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곤 Jan 13. 2018

[캐나다 여행] 폭포 가는 길

캐나다, 나이아가라 폴스(1)

나의 미국, 나의 캐나다

프롤로그 ― 워싱턴D.C. ― 나이아가라 ― 몬트리올 ― 퀘벡 ― 보스턴 ― 뉴욕

나이아가라 폴스(Niagara Falls) 편 : (1)




   해질녘 워싱턴 유니언스퀘어 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른다. 목적지인 뉴욕 주 버팔로(Buffalo)까지는 12시간 남짓. 미국 여행을 오기 전까지는 '대륙의 스케일'이란 게 중국에만 있는 줄 알았다. 멀리 가봐야 부산까지 5시간 걸리는 좁은 땅덩이에서 온 나에게 화장실 딸린 이층버스에서의 하룻밤은 신선한 충격이자 생각만 해도 뻐근한 고통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륙의 스케일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있고 캐나다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고... 하여튼 좁은 한국 땅을 벗어난 대부분의 나라에 존재한다. 그러니 웬만큼 멀다 싶으면 버스보다는 고속철도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편이 신상에 이롭겠다. 뭐 교통비와 숙박비를 한 큐에 해결하려고 야간버스를 고른 거지만.


   캄캄한 국도변 휴게소에 내려서도 행여 버스를 놓칠까 긴장을 놓지 못하던 야간버스 초행길은 허름한 버팔로 터미널에서 끝이 났다. 강을 하나 두고 캐나다와 마주한 이 도시는 '버팔로 윙'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산했다. 개인적으로 버팔로 윙 하면 시끌벅적하게 미식축구 경기를 보며 닭날개를 뜯는 (왠지 아담 샌들러나 세스 로건 같은 외모의) 미국 아저씨들이 떠오르는데, 버스 차창 밖으론 시끌벅적함은커녕 일상의 소음마저도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시내버스를 다시 30여 분동안 타고 가면 국경에 닿는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미국의 버팔로와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폴스(Niagara Falls)는 '레인보우 브릿지'라는 다리로 연결된다. 이 다리는 도보로도 건널 수 있다. 월북을 하지 않고서야 육로로 국경을 가로지를 일이 도통 없는 한국 사람에겐 꽤나 즐거운 경험이다. 다리 위를 걸으며 왼쪽을 돌아보면 저 멀리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니 더욱 즐겁다. 들뜬 기분에 핸드폰 카메라로 최대한 줌을 당겨 연신 사진을 찍어댔는데, 어차피 폭포 가까이 구경을 갈 거라면 더 좋은 위치에서 찍을 수 있으니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걸쳐있어서 양쪽 모두에서 볼 수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대조된다. 미국 쪽은 한적한 국립공원이라면, 캐나다 쪽은 번화한 관광도시다. 온 도시가 폭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버는 까닭에 행정구역 이름도 '나이아가라 폴스'다. 대형 호텔도 여럿이고 이 중 하나에는 카지노도 있다. 왜 여기까지 와서 도박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간다면 캐나다 쪽에 머무르는 게 아무래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장 큰 폭포인 홀스슈(Horse Shoe)가 캐나다 쪽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고, 폭포를 여러 각도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관광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폭포 구경에 질리면 그외에도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서울에도 있는 트릭아트 뮤지엄이나 역시 서울에도 있는 밀랍인형 박물관 같은 것들. 나는 개인적으로 클리프턴 힐 중간에 위치한 공룡 테마 미니골프가 재밌었다. 이건 서울에 없다.



   이제 나이아가라 폴스에 도착했으니 예약한 숙소를 찾아갈 차례.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5성급 호텔을 예약해 두......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서 약간 변두리에 위치한 호스텔에 묵기로 했다. 길이 비슷비슷해 지나가다 발견한 관광안내소에 길을 물어싸.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나 거기 저번 주에 가봤는데 폐업했던데?"


   이역만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어 당황하는 패턴은 어느 여행기에나 등장하기 때문에 이 말은 웬만해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멘붕'이었다. 단돈 1, 2달러도 아쉬운데 예약금을 통째로 먹튀 당하다니. 게다가 낯선 곳에서 당장 오늘밤 묵을 곳을 찾아야 하는 막막함이 엄습했다. "아 그렇냐"며 애써 태연한 척,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은 척하고 뒤돌아 예약 확인증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역시 안 받는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해당 주소를 찾아가보기로 결심했다.


   폭포 주변을 둘러싼 언덕을 넘어가니 화려한 관광도시는 온데간데 없이 한적한 주거 지역이다. 왜, 그 <나홀로 집에>에서 케빈네 집이 있는 주택가 같은 곳 있지 않나. 영화보다는 많이 허름하지만 마당 넓은 이층집이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계속 나오는 동네였다. 표지판의 숫자가 하나씩 바뀌는 걸 제외하고는 똑같은 풍경의 반복. 그 동네를 떠돌다 애타게 찾던 호스텔을 찾아냈다. 동네에 널린 목조 주택이 하나 같이 낡아빠졌지만 그 집은 유난히 더 허름해 보였다. 폐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역시 폐업한 건가...(내 예약금 떼먹고?) 지금으로서는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마당을 가로질러 폐가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주변에 행인도 없는데 안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 집 문을 왜 두드렸는지 모르겠다. 노크가 예의 있는 일일 수는 있어도 안전상 썩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잠시 후 인기척이 들리더니 웬 히피 스타일 옷을 입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나타났다. 아, 버려진 호스텔 건물을 무단점거하고 있는 노숙자인가? 카지노에서 돈도 잃고 차도 잃고 빈털터리가 돼서 이곳에 눌러 앉았나? 나는 곧 콩팥 한쪽을 떼이고 이 사람은 룰루랄라 전당포 가서 자기 차를 되찾으려나? 근데 캐나다에도 전당포 같은 게 있나?


   오만 잡생각이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갔다. 말문이 막혀 어버버 하고 있는데 남자가 말했다.


   "Welcome to ACBB Hostel!"


   어디에도 없는 기묘한 호스텔, ACBB에서의 2박 3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p.s. 근데 왜 관광안내소 직원은 그렇게 당당하게 폐업했다고 말한 거지???




이 승 곤 : Seunggon LEE

―가늘고 길게 여행과 사진,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든 배우는 사람"이라는 은사님 말씀이 아깝지 않도록 살고 싶습니다.

FACEBOOK : INSTAGRAM : 

rupert11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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