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 이야기 6. 로즈마리

실망 후 기대

by 다락방지기

SEOUL MY SOUL.

소리내어 읽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서울에 살지 않음에도 그 곳에 갈 때마다 눈에 띄는 저 문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직장 생활을 하기 전까지 지방에서 살던 내게 서울은 ‘라라랜드’ 같은 곳이었다.


서울의 첫 기억은 아빠가 출장 다녀오는 날이면 ‘만남의 광장’이라고 적힌 호두과자 한 통을 쥐어주는 장면이다.

- 만남의 광장이라니 이름이 참 재밌네. 나중에 서울에 가면 여기 꼭 가봐야지.

그 곳이 경부고속도로 휴게소 이름이라는 것은 좀 더 커서 알게 되었다. 친구가 교회에서 꾸린 대학 탐방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교회도 안 다니고 크리스천도 아니건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서울 명문 대학’ 구경을 갔다. 새벽 버스로 상경하는 와중에 들린 휴게소 입구에 ‘만남의 광장’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웃음이 났다.

- 뭐야, 휴게소 였어?

만남의 광장을 광화문 광장같이 상상한 건 내 잘못이었다. 그 날 버스 창문으로 테헤란로 건물 꼭대기를 보려고 고개를 한참이나 쳐들며 이 낯설고 빛나는 도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친척들이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은 라라랜드 자유이용권이 주어져 있었다. 명절마다 분당이니, 잠실이니, 야탑이니 하는 동네 이름을 말하며 큰 집에 다녀왔노라 했다.

-그래서 잠실은 어느 시에 있는 거니?

그 때는 전철역 이름이 동네 이름으로 통용되는 수도권 사정이 참 의아했다. 무슨 시, 무슨 읍, 무슨 면 이런 행정구역 명칭으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친구들의 서울 및 수도권 방문 후기를 듣고 있자면 대한민국에 그처럼 좋은 곳이 없다.

- 나도 서울 가서 대학 생활하고 싶다.

재미있는 것, 멋진 것, 아름다운 것, 제일 좋은 것들이 모여 있는 서울.



생각지 않게 지방 교대를 다니느라 서울 살이의 꿈은 미뤄야만 했다. 시험이라면 지긋지긋 했으므로 임용고시는 딱 한 번만 보려고 그 해 신규 임용이 가장 많은 경기도에 지원했다. 운 좋게 첫 발령지가 서울 근교라 자취집을 서울에 구할 수 있었다.


지갑이 얇은 대학 시절 상경한 것보다 내 돈 벌어 쓰는 직장 생활을 하며 서울에 사는 게 훨씬 즐겁다는 생각에 지난 4년이 용서되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돈쓸 곳이 넘쳤다. 밤이 되어도 거리는 환하고 보고 싶은 공연과 팬미팅과 콘서트는 날마다 이어졌다.


정신 차리고 보니 모으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고 다달이 나가는 원룸 월세와 공과금도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증금은 죄다 부모님 돈이었으니 언제가 갚아야 할 돈이었다. 부모님은 성실히 살아온 자녀가 이 정도 해방감은 느껴도 되지 않겠나 싶어 별 말씀은 안 하셨지만 하고 싶은 말이 오죽 많았을까.


원룸 계약이 끝나갈 즈음 같이 살던 친언니와 나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신축 원룸’ 월세를 아끼고 싶어 전세를 찾아다녔다. 가진 돈도 빤하고 서울에서 아는 곳도 빤해, 그간 살던 동네 전철역 주변 매물을 살폈다. 그제야 지나다니면서 보던 낡은 다세대 주택들이 진지하게 눈에 들어왔다. 출퇴근 길의 배경일 뿐이던 집들인데 이제 거기 살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라라랜드를 꿈의 도시로 상상한 것은 내 잘못이었다.


무더위 속에서 이사갈 집을 찾는 동안 낙후한 동네의 낙후한 집들은 팔다리 없는 사람들이 길바닥에 앉아 구걸하듯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고?

나의 라라랜드에, 재미있는 것, 멋진 것, 아름다운 것, 제일 좋은 것들이 모여 있는 서울에 누군가는 이런 집에 살고 있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자랐지만 이 정도로 안타까운 집은 주변에 없었다. 철길 바로 옆에 대문이 난 집,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하는 집,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반지하, 현관이 너무 좁아 신을 손에 들어야 하는 집 등등. 매일매일 등산하듯 언덕 위에 있는 집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둘러본 집들은 대게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집주인과 계약이 끝나가는 누군가들. 책상 위에 쌓여있는 프린트물이나 민법총론같은 전공서, 여대생들이 쓸 법한 로드샵 화장품, 아기 옷이 걸린 빨랫대나 뒤축이 닳은 탐스 신발 같은 것들이 그 삶을 짐작하게 했다. 나와 별반 주머니 사정이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


며칠을 허탕치던 어느 날, 비어있는 다세대 가구 2층 집을 소개받았다.

-여기다!

선택은 쉬웠다. 좋은 것들 중에 우열을 가리기란 어렵지만 나쁜 것들 중에 덜 나쁜 것은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그 집은, 낮에 햇빛이 들었다.



이사하는 날 부동산 아저씨가 와서 이것저것 챙기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 여기 앞 전에 살던 사람이 중학교 선생님인가 그런데 집 사서 나갔어요. 여기 있으면서 다들 잘 돼서 나가더라구.

젊은 우리를 응원하려고 하신 그 말에 마음이 착잡했다.

- 서울에서는 집 한 채 사서 나가는 게 잘 되는 거구나. 그게 보통 사람들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구나.


짐이 그다지 많지 않던 우리는 1톤 트럭을 빌려 이사했다. 이삿집 센터를 통해 계약한 거라 용달차 아저씨가 무거운 짐은 트럭에 실어주고 우리는 거들기만 했다. 무더위에 2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짐을 옮기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편의점에서 시원한 물을 한 통 사와 일당 10만원과 함께 드렸다. 이사가 잘 끝나는 걸 보러온 부동산 아저씨는 시원한 사무실로 돌아가며 중계비 수십만원이 이체된 걸 확인했다. 집주인이라는 할아버지는 본 적도 없지만, 우리는 전세금으로 6천만원 가량을 그의 계좌로 입금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계였다. 많은 돈은 쉽게 벌고 적은 돈은 힘겹게 버는 것.

상상 속의 라라랜드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선택하기 전까지는 머릿 속이 복잡하지만 막상 값을 치르고 나면 정들기 마련이었다. 낙후한 동네의 낙후한 집이었지만 아가씨 둘은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가꾸어 나갔다. 체리색 싱크대 문을 글로스 화이트 시트지로 가리고, 중문 대신 레이스 커튼을 현관에 달았다. 도배 장판을 새로 하고 쓸고 닦자 빈 집에 사람의 온기가 더해졌다. 조용한 밤이면 멀리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락말락 느껴졌지만 매일매일 피곤한 사회초년생들은 개의치 않았다.


퇴근 길, 전 부쳐 파는 가게, 고시히카리와 두루마리 휴지를 같이 파는 양곡 가게,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다한 물건이 내 걸린 공업사를 구경하듯 지나 골목 끝 우리 집에 이른다. 집 구하러 다닐 때는 흉물스러워 보이던 가게들이 이웃이 되자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침마다 가게 앞을 쓸고 닦는 주인들과 출퇴근 시간에 맞춰 붐비는 전철역은 일정한 리듬감의 배경음이 되었다. 그리고 현관에서 집 전체를 훑을 수 없는 방 2개짜리 집은 원룸 살 때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을 줬고 이 곳이 자췻방이 아니라 집이라 느끼게 했다.


이 집이 지어진 8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인지 남향으로 난 방의 창문은 유난히 크고 밖으로 튀어나가 있어 창틀도 넓었다. 여기에 작은 화분을 갖다 놓으면 따뜻한 햇빛을 듬뿍 받을 수 있어 식물들이 행복해 보였다. 다이소에서 산 오이 키우기 세트, 로즈마리 포트분 같은 걸 두고 집에 초록을 더했다.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보통 금방 시들거나 죽어버렸고 나는 줄기차게 새 화분을 들였다.


더 이상 내가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재미있는 것, 멋진 것, 아름다운 것, 제일 좋은 것들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 곳만은 내게 좋은 것들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나 미련 없이 서울을 벗어났고 경기도 변두리 집으로 이사 왔다. 테라스에 살고 있는 로즈마리 화분은 여전히 죽이고 들이기를 반복하는 식물이다. 로즈마리를 잘 키워 잎을 따다 차로 우리고, 스테이크에도 올리고, 아이스티에 띄우는 게 나의 로망이다. 몇 번 그런 장면을 연출하긴 했지만 로즈마리가 죽고 나며 그 순간의 기쁨도 함께 휘발되어 버린다. 섭섭해 하다 이번엔 다르기를 기대하며 다시 로즈마리를 데리고 와 키웠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덤덤해 지는 과정을 줄기차게 겪었지만 그럼에도 내 곁에 ‘좋은 것’을 두고 꿈꾸던 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로즈마리 화분 한 개를 욕망할 만큼은 남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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