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를 넓히는 방법
우리 집 문 앞에는 아이 키우는 집답게 킥보드와 세발자전거가 나란히 놓여 있다.
둘 다 아이들이 즐겨 타질 않아 먼지만 뽀얗게 쌓여가고 내 마음엔 안타까움이 부옇게 쌓이고 있었다.
킥보드를 즐겨 타는 아이들은 무려 어린이집에 다니는 시절, 말도 잘 못하는 어린 월령에도 자신감 있게 킥보드로 아파트 단지를 쌩쌩 누볐다. 우리 애는 엄마 손 꼭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데 같은 반 친구들은 쌩쌩이를 타고 엄마를 저만치 따돌리며 등원하곤 했다. 위험해 보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대근육 발달’이 남다르고 ‘신체 운동 기능’이 탁월한 그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 첫 애로 말할 것 같으면 뭐든 한 스텝 씩 늦게 자라나는 아이였다. 그러니 초보 엄마였던 내게는 걸음마도 빨리 하고, 말도 금방 트이고, 킥보드도 쌩쌩 타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부러웠겠는가? 모든 게 엄마의 정성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과 같았다.
- 그래, 내가 조금 더 노력하자. 아이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지.
어린이 날을 맞아 킥보드를 아이에게 선물했다. 원치 않는 물건이라도 5월 5일에 받으면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는 논외로 하고.
매일 밖으로 나가 킥보드에 아이가 올라가게 공을 들였다. 친구가 타는 것을 보여주고, 재미있겠다며 바람도 잡아보고, 잠깐 올라가면 폭풍 칭찬을 하고. 얼마간의 노력 끝에 킥보드는 우리 집 문지기가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꼼짝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든든한 문지기.
- 우리 아이는 걷는 걸 좋아하는 구나. 킥보드는 무슨, 안전이 제일이지.
그렇게 킥보드는 잊혀 졌고 둘째가 태어나고, 새 집으로 이사를 했고 몇 년이 지났다. 둘째도 제법 자라 동네 아이들이 킥보드며 자전거며 뭔가 타고 다니는 걸 보더니 자기도 타고 싶어 했다. 둘째인 아들은 각종 ‘이동수단’에 관심이 많았다.
킥보드를 먼저 탄 것도 아들이었다. 브레이크 잡는 법과 방향 바꾸는 법을 알려줬더니 금방 요령을 익혀 살살 타고 다녔다. 등원할 때 마다 주문서를 내게 넣었다.
- 오늘은 킥보드 한 개, 텐텐 두 개 갖고 와야 해.
하원 버스에서 내리면 주문이 잘 들어갔나 확인부터 한다.
- 킥보드 갖고 왔어?
동생이 바퀴달린 것을 조심스럽게 타는 모습을 몇 번 보더니 첫째도 뒤늦게 타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나보다.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는데 동생이 타던 킥보드를 실랑이 끝에 차지했다. 먹은 밥그릇 수만큼 자란다더니 첫째는 동생보다 훨씬 수월하게 익히고 타는 것도 안정적이었다. 저만치 앞서가며 나를 따돌려도 걱정이 없었다. 우리 첫 애는 초2가 되어서야 이 낯설고도 재미난 킥보드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엊그제 언니가 내게 물어봤다.
- 엄마가 너보고 김치 담그는 거 배워 볼거냐는데? 배울거면 이번에 너, 엄마 집 갔을 때 김치 같이 담그자고.
우리 엄마는 나한테 직접 물어볼 것도 언니랑 이야기하다 흘리고, 발 빠른 언니는 엄마보다 먼저 내게 전달한다.
- 어, 어. 김치?
선뜻 배우겠다고 입이 안 떨어진다. 냉장고에는 늘 엄마가 담아준 김치가 떨어지지 않고 째깍째깍 채워지고 있었다. 없으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먹을 게 없지도 않다. 정 아쉬우면 종가집이 있다.
엄마 없이도 의식주 생활이 너무나 매끄럽게 잘 흘러간다면 좀 억울하다. 엄마 손잡고 시장에 따라가던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는 걸 매 끼니 식탁에 오르는 엄마 김치가 증명해주고 있는 셈인데... 김치까지 잘 담그는 나는 엄마가 더 이상 ‘필요’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충분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응석부리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마지막 보루는 ‘김치’다.
- 엄마, 김치 다 먹어간다. 애들이 잘 먹네.
첫째가 킥보드를 타기 전까지 정체모를 걱정이 있었을 거다.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처럼 나도 김치 담는 걸 배워 스스로 냉장고를 채우게 되어도 엄마가 ‘필요’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거다. 걱정과 생각은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니, 낯선 것일지언정 그냥 ‘해보자.’ 이번 여름에는 김치 담는 걸 배워서 김치통을 내가 채워놔야겠다.
그런가하면 테라스에 심어놓은 글라디올러스도 참 익숙하고도 낯선 식물이었다. 활짝 핀 꽃은 그림과 사진으로, 꽃집에 진열된 꽃다발에서, 흔히 봐서 익숙했지만 자라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꽃이 피기 전까지 매일의 변화가 낯설기만 했다.
새싹은 납작한 석기시대 돌칼 같은 형태로 흙에서 솟아나더니 그 다음 잎은 조금 더 긴 돌칼이 반대방향으로 갸우뚱 기울어져 올라왔다. 내 머릿속 자전적 식물 사전에는 ‘떡잎이 나오고 줄기에서 본 잎이 자라난다.’고만 되어 있어 이 상황을 위한 새로운 페이지를 마련해야 했다.
-이렇게 잎이 나는 식물은 처음 보네. 줄기 어딨어, 줄기?
기다려도 줄기는 안 보이고, 홀짝 놀이를 하듯 왼쪽으로 기우는 잎사귀, 오른쪽으로 기우는 잎사귀가 사이좋게 기존의 잎사귀들 가운데서 샘솟길 반복했다.
- 세상은 넓고 식물은 다양하군. 그럼 도대체 꽃은 어디서 나타나는 거냐?
7월 초 드디어 궁금해 하던 꽃대가 나타났다!
가느다란 꽃대는 잎사귀들 사이에서 위로 곧게 자라났다. 하루하루 다르게 솟아 오르더니 꽃봉오리를 대여섯 개 맺었다. 열흘 정도 지나 맨 아래 봉오리부터 사진으로 익히 봐 온 노란 글라디올러스 오배티의 꽃을 피워냈다.
그동안 제법 여러 식물들을 키워봤지만 글라디올러스야말로 정말 익숙하지만 완전히 낯선 식물이었다. 덕분에 머릿 속 자전적 식물 사전이 좀 더 풍성해졌다.
킥보드, 김치, 글라디올러스 모두 익숙한 듯 내 것이 아닌 낯선 세계지만 그냥 해보는 것. 나의 세계를 넓히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