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사업의 실패
정원 가꾸는 일이 항상 즐겁고 뿌듯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힘들다, 즐겁다 사이 무게 추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매 순간 기운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실패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다음에는 더 잘 해내고 그런 부분도 개미 눈꼽 만큼은 있길 바라지만 ‘성장이니 뭐니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좋아서 꾸준히 한다.’는 게 후천적 노력형 그린 핑거의 덕목이라고 본다. 정원 일에 한해 말하자면 ‘망한 케이스’가 많음에도 지속하고 있는 이유다.
테라스 정원 두 번 째 해는 첫 해의 즐거움과 성취감에 도취되어(?) 잎채소와 더불어 열매 채소에 도전했다. 바로 오이와 호박.
유튜브로 오이 키우기를 찾아보니 이렇게 키우기 쉬운 작물이 또 없다! 중간 크기 화분에 심어 지지대를 둥그렇게 박아 끈으로 연결한 뒤 쑥쑥 자라는 오이 덩굴 손이 지지대를 잡고 올라가게만 하면 된다는 거다. 전문 농부였다가 수 일 내에 유튜버가 된 듯한 이들은, 물 많이 주고 일곱 번째 잎까지는 따주고 등의 간단한 팁만 잘 지켜주면 장마 전까지 내내 오이를 따먹을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대부분의 정보가 비슷하고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다. 주렁주렁 달리는 오이를 따서 시원하게 아사삭 베어무는 상상을 하며 모종 2개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호박 역시 수분만 잘 해주면 열매 맺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던데, 모종시장 간판에는 ‘난이도 중’이라고 써있던 게 의아하기까지 했다.
- 뭐지. 이게 왜 난이도가 있다는 거지. 알 수가 없네.
오래 전 할머니의 시골집에 갔다가 담벼락 근처에 호박 덩굴이 무성하고 앙증맞은 열매가 곳곳에 달려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구순이 다되어 가는 할머니가 부지런히 거름 주고 솎아주고 했을리 없지 않은가. 그냥 둬도 잘 자라는 작물이겠거니 했다.
모종을 심어놓고 나니 벌써 열매를 수확할 날이 기대되었다. 소쿠리 가득 크고 싱싱한 오이와 호박을 수확하며 아이들과 놀라워 할 생각을 하니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 마냥 절로 비싯비싯 웃음이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오이와 호박은 초반부터 애를 먹였다. 오이는 잘 자라는 듯 하더니 초기에 잎을 제 때 따주지 않아서인지 성장이 더뎌졌다. 잎의 노화가 빨라 20여일이 지난 잎은 바로 따주라고 했는데, 쑥쑥 자라고 꽃이 피고 해야 잎을 따던지 말던지 하지 20여일이 훨씬 지나도록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고대하던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지만 이내 열매가 말라 죽어버렸다.
-이상하네, 따로 수분이 필요없다고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되었나 싶어 붓을 들고 나가 꽃잎을 살살 건드려주며 수분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줄줄이 달리는 열매마다 말라버리고 간신히 두 개만 살아남았다. 이마저도 크게 자라지는 못해 노각이 되려하는 손바닥만한 C자 커브 오이를 수확했다. 창대한 꿈을 꾸며, 다닥다닥 수도 없이 달린다고 해서 이름 붙은 ‘다다기 오이’를 심었건만 2개라니...초라한 수확이었다.
매일 아침 테라스에 나가보면 손톱만한 열매가 새로 맺혔는데 며칠 내로 말라 죽어버리니다음 번에 새로운 열매를 봐도 또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하며 애타는 하루하루였다. 수험생 부모가 된 것 마냥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니 이건 내가 꿈꾸던 정원가의 삶이 아니었다. 오이라면 더 이상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어졌다. 내 관심 밖에서도 꽃은 피고 잎은 지고 오이는 그 나름의 생명을 다했다.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오이를 다 걷어냈다. 단 두 개, 테라스에서 수확한 오이는 덤덤했고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냉장고에 사다 놓은 개당 500원짜리 오이가 더 크고 아삭했고 시원했다.
호박도 별반 다르지 않아 암꽃, 수꽃을 구분할 만큼 키우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런데 수정을 해주려고 아침마다 붓을 들고 나서면 타이밍 맞는 게 없다! 암꽃과 수꽃이 동시에 피어있는 게 없었다. 암꽃이 수꽃보다 수가 적은 것이야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하나가 피면 하나는 봉오리 상태이고, 내일을 기약해야지 하고 이튿날 나와보면 이미 암꽃은 시들어있고 뭐 이런 식이다. 그 와중에 꽃이 잘 피도록 호박잎을 솎아주려다가 줄기에 상처가 나는 바람에 모종 하나는 죽고 말았다. 할머니네 담벼락에는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애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던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두 번 째 해에 도전했던 새로운 작물은 실패하고 말았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 조금씩 즐거움의 방향으로 무게 추가 기울길 바랐다. 하지만 오이와 호박은 처음부터 전제가 다른 식물들이었다. 저울의 한 끝은 ‘힘듦’, 반대쪽은 즐거움 대신 ‘성과’가 있었다. 명확한 목표였다. 오이 몇 개, 호박 몇 개를 수확한다는 목표가 있는 경제 작물 아닌가.
-나는 많이 수확하려고 키우는 게 아니야.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가볍게 마음먹고 시작한 일임에도 열매가 맺히느냐 마느냐, 몇 개나 건강하게 수확하느냐 따위에 자꾸 관심이 생겼다. 이들 경제작물을 가꾸는 일은 그 수치로 인해 노력과 과정이 평가되는 일종의 테스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로마 황제가 했다는 말이었나? 번성하는 국가는 비슷한 이유로 부강해지지만 쇠락하는 국가는 서로 다른 갖가지 원인으로 패망해간다고. 오이는 오이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예상치도 못한 원인들로 실패하고 말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씁쓸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오이와 호박이 관상용 식물이었다면 덜 속상했을까? 마트에 쌓여있는 양파가, 호박이, 버섯이, 배추가, 무가 그리 대단해보일 수가 없다. 저만큼 키워 내다 파는 농부들과 그 이 전 대의 농부 아버지들과, 그 전 대의 농부 할아버지들과 그 전 대의 조상들 등등 많은 이들 앞에 겸허한 마음이 든다. 그들은 ‘업’으로 하는 일이었고 ‘업’은 즐거움만 좆는 아마추어 정원사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