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메리골드

by 다락방지기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내 삶에 잘 적용하지 않는 편이라 어디가 좋다더라 해도 득달같이 달려가거나, 댓글이 많은 맛집이라 해도 가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 없는 거다. 자본주의 확대의 적과 같은 사람이랄까?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게 미덕이라는 데 동의할 수가 없다.

남편과도 비슷한 문제로 사사로운 갈등이 잦았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이 써보고 좋다는 물건은 관심을 갖는 편이라 지금껏 전자레인지, 건조기, 정수기, 로봇청소기, 제습기 등에 솔깃해왔다. 아마 나도 비슷한 성향이었다면 열거한 물건들을 수월하게 집에 들였겠지만 나는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는다는 의견이라 몇 개월 또는 몇 년간 실랑이 끝에 겨우 들이거나 아직 남편의 희망 구매품 목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들도 많다.


특별히 아끼려고 하는 건 아닌데 ‘꼭 필요하지 않아서’가 대부분의 이유다. 아기 이유식을 할 때 바로 조리한 것을 먹이거나, 중탕해서 데워먹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 고모가 깜짝 놀라하며 ‘전자레인지 없어요? 우리 새 걸로 바꾸려고 하는데 쓰던 거 줄까요?’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 놀랄 일인가. 나중에 전자레인지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나니 이전에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편리했다. 하지만 이유식을 중탕하던 시절도 전자레인지 없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로봇청소기도 마찬가지라 남편이 자기가 하기 싫은 집안일을 미룰 핑계로 오랜 시간 실랑이 끝에 마련했다. 물론 이전에도 이후에도 청소는 늘 내가 하고 있지만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나 역시 집안일에서 손을 떼야했으므로 남편에게 로봇 청소기의 존재는 강력한 방패와도 같았다. 막대에 헝겊 걸레를 붙여 이리저리 밀고 다니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로봇 청소기를 들이니 다소간 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물을 주입하고, 걸레를 빠는 건 내 몫이었고 집안일이 줄어드는가 싶다가도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게 관리해야 할 물건들만 자꾸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이후 식기세척기, 정수기, 미니 건조기 등 가정 살림을 돕는다는 여러 장비들을 들였지만 글쎄... 크게 집안일 도움 받는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나만 그런걸까? 물론 전통적인(?) 가사 도우미 장비들은 나도 알짜같이 잘 쓰고 있다. 세탁기, 냉장고. 물건이 없으면 관리해야 할 품목도 줄어들고 신경 쓸 일도 줄어드는 법이다.


정원을 가꾸는 데에도 남편과 이견이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식물을 가꾸고 싶었고 남편은 여기저기 검색해보고 좋다는 식물을 가꾸고 싶어했다. 건넛집 마당에 큰 향나무를 보고는 우리도 저런 큰 거 갖다 심자하더니, 옆 집에 꽃나무를 보고는 꽃피는 나무로 갖다 심자하고 메리골드 차가 눈에 좋다니까 메리골드를 키워 차로 만들어 먹자고 하는 식이었다. 그런 사람과 꽃나무 시장에 가면 다소간 신경질이 나기도 하지만 서로서로 양보해 남편이 그리도 원하던 꽃나무(뭐든 꽃이 피기만 하면 된다.) 배롱나무와 메리골드 모종을 두 개 사와서 심었다. 내가 적당히 어린 묘목을 키워가는 즐거움도 있으니 작은 걸로 사자고 우겼더니 남편은 배롱나무가 웬 나뭇가지를 꽂아놓은 것 같다면서 어린 묘목을 사온 걸 두고두고 투덜거렸다. 두고봐라 쑥쑥 잘 커서 멋진 나무되면 당신 코를 납작하게 해줄테다!


남편은 자기가 고른 식물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는지 배롱나무 나뭇가지는 별 재미없어 하더니 이미 노란 꽃이 핀 메리골드는 열~심히 가꾸었다. 그 과분한 사랑 덕분인지 메리골드는 시름시름 앓더니 금방 죽어버렸다. 어찌나 안타까워 하던지 누가 보면 친족 상이라도 당한 줄 알겠다 싶었다.


메리골드를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수목원에서 봄맞이 피크닉 콘서트가 있었다. 잔디밭에 무대를 마련하고 시장과 지역 농협 단체장이 인사말을 하는 그런 자리였는데 수목원이라 그런지 몇몇 종류의 모종과 씨앗을 나눠주는 부스도 운영하고 있었다. 젯밥에 더 관심이 간 나는 아름다운 콘서트 음악을 배경으로 부스를 돌면서 마치 백화점 행사 매대를 비집고 옷을 고르듯이 풍선초와 루꼴라 모종, 그리고 메리골드 씨앗을 분양받았다. 우연히 다시 시작된 메리골드 키우기에 남편은 반색을 들어 기뻐했다.

‘그래, 이렇게나 키우고 싶어하던 메리골드 다시 심어 가꿔봅시다.’

사실 그 즈음 부지런한 건넛집 화단에 키작은 메리골드가 노랗게 피어나면서 제법 보기좋아 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 모습을 바라만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우리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하듯 메리골드는 쑥쑥 자라났고 날 때부터 튼튼하고 무던한 아이처럼 아프지도 않고 걱정 끼치지도 않고 자라났다. 마치 동화에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효자를 기르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크게 자란 메리골드를 볼 때 마다 남편은

- 전에 사온 모종은 품종이 안 좋았나봐.

하며 새로 씨앗부터 심어 가꾼 메리골드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한 줄기에서 가지가 수도 없이 뻗어 나오며 꽃망울을 맺었고 시간차를 두며 피어나 꽃이 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직사광선이 한 나절 넘게 내리쬐는 곳에서도 꽃은 쉬이 시들지 않았고 몇 몇은 첫 눈을 맞고도 노란 자태를 뽐내었다.

- 왕의 사주를 타고난 꽃일세.


메리골드의 일생은 탄탄대로였다. 나와 복닥거리며 마음을 나누기 보다 타고난 훌륭한 유전자 덕분에 쑥쑥 자라나 내가 아닌 누구를 만났어도 저렇게 잘 컸을 거다. 11월이 되어 구근 심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시든 메리골드를 정리하는데 아쉽지가 않았다. 미련이 없었다. 남편의 뜻에서 시작되어서 그런지, 너무 잘 자라서 내가 마음 쓸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화단에 있는 가을 한 철이, 덕분에 아름다웠지만 다시 또 가꾸고 싶은 여운은 없었다.


우리는 탄탄대로를 걸으며 쉬이 잘 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막상 메리골드처럼 그렇게 된다면 뭔가 빠진 것만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흔들리고 고뇌하고 힘든 시간이 그리 헛되지만도 않은 것 같다.

KakaoTalk_20250613_153346843.jpg

메리골드. 주변의 붉은 잎은 배롱나무 잎.

keyword
이전 07화7화 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