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입이 짧았다. 조리원에서 간호사들이 먹여주는 분유도 ‘끊어 먹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태어날 때도 몸집이 다소 작은 편이었는데 먹는 것도 시원찮으니 영유아건강검진을 가면 키, 몸무게, 머리둘레 순위가 하나같이 한 자릿 수였다. 때때로 1퍼센타일이 나오기도 했다. 며칠에 한 번 꼬박꼬박 몸무게를 재어 평균그래프와 비교해보는 게 일상이었다. 이유식을 일찍 해보기도 하고 프랑스식 이유식 책을 빌려 나도 안 먹어본 낯선 음식을 차려내기도 했다. 아기가 잘 먹는다는 걸 매일 검색하며 집에서 만두도 빚고, 바나나도 굽고 머릿 속이 온통 ‘먹이는 노동’으로 가득 찼다.
아기가 잘 먹으면 요리가 즐거운 놀이가 되겠지만 실컷 애써서 차려놓으면 아기는 한 두 숟갈 먹다 휙 집어던지고 식사가 끝난다. 노동도 이런 의미없는 노동이 다 있나. 매 식사 때마다 허망하고 왜 이렇게 안 먹고 안 크는지 엄마는 애가 탄다. 큰 병원에서 피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 식욕촉진제 처방 등을 해보고도 여의치 않아 몸무게가 는다는 영양제를 가지가지 먹여봤다. 아이를 진료했던 한 의사가 차트를 보고는 말했다.
- 참, 어렵네요. 일단 잘 먹여봅시다.
화가 났다. 잘 먹이는 게 안 되서 병원까지 온 사람에게 다시 또 잘 먹여보라니.
이 때의 나는 아이가 잘 안 크는 게, 잘 안 먹는 게 다 내 탓 같았다. 미숙한 엄마, 아이의 요구 사항을 빠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엄마, 음식을 맛있게 못하는 엄마 등 비난할만한 멘트는 차고 넘쳤다. 아이의 몸무게가 엄마로서의 성적표같이 느껴졌다. 성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들이대도 안되는 것 같아 끝끝내 아이에게도 화가 났다.
- 너 때문에, 네가 안 먹어서 내가 무능한 엄마가 된거잖아!
차려놓은 음식을 외면하는 아이를 애원하고 구슬려 보아도 먹는 양이 시원찮으면 화난 마음으로 음식이 남은 그릇들을 싱크대에 집어던졌다. 아이가 건강하게 크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건강검진 하는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성장곡선과 평균치는 마치 육아의 목표인 것 처럼 반드시 달성해야 할 수치 같았다. 음식으로 물질화된 내 사랑을, 아이는 거절했고 난 요리를 하면서 또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렇게 아기 성장을 목표로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녹초가 다 된 밤이면 밥 안 먹는 아기를 둔 엄마들 까페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렸다. 대부분이 하소연하거나 메뉴 레시피, 영양제, 병원 치료 등의 정보였지만 간혹 ‘몇 년만에 까페 들어 옵니다. 아이가 크니까 잘 먹습니다. 때되면 다 먹으니 걱정마세요.’이런 글을 보면 어둠 속 희망의 등불 같았다.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 글을 위안의 이불삼아 잠들던 시절이다. 육아는 ‘나를 기르는 시간’이라더니 엄마가 되고 첫 몇 해 동안은 먹는 것을 두고 씨름하느라 나도 많이 성장했다.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 새로 배운 가치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었던 아이는 지금 초등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먹는 양은 적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다. 반전은 없었다. 아침마다 한 숟가락만 더 먹고 가라고 잔소리를 입에 달고 있지만 안 먹어도 그만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생겼다. 피자, 자장면, 고기, 사과, 옥수수, 군고구마 등. 좋아하는 것도 배가 부르면 숟가락을 딱 내려놓는 것이 아쉽지만 어찌하리오.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이답게 테라스에 옥수수를 심겠다고 했다. 하나로 마트 꽃나무 시장에는 각종 씨앗이 서점에 진열된 이 달의 패션잡지처럼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봉투에는 수확하기 딱 좋을만한 작물이 클로즈업 된 채 프린트되어 있었다. 아이는 보라색과 갈색의 중간쯤되는 옥수수 알이 노란 알맹이 사이 콕콕 박혀 있는 오색 찰옥수수 씨앗을 한 봉지 집어 왔다. 씨앗을 심어놓고 언제 싹이 나올지 아침마다 문안인사 드리는 건 부지런한 둘째 아이의 몫이었다. 씨앗을 물에 하루 정도 불려서 그런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싹이 올라왔다. 도화지를 도르륵 말아놓은 듯 길게 말린 외떡잎을 보니 어릴 때 화분에 심은 옥수수가 떠올랐다.
-내 손바닥만큼만 키워도 참 뿌듯했었는데.
아이들은 이 옥수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다른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옥수수도 기온이 풀리기 시작하자 무서운 기세로 쑥쑥 자라났다. 5월이 되면 식물들이 자라는데 가속도가 붙는다. 모든 것이 순탄할리 없다. 우산만큼 키가 자랐을 무렵 진딧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두 마리 보이던게 순식간에 늘어나 옥수수 줄기가 초록색의 작은 진딧물로 가득 덮일 정도였다! 초보 정원사는 또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 진딧물 퇴치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시도한다. 마요네즈 섞은 물을 이용해라, 분무기로 우유를 뿌려라, 무당벌레를 잡아와서 풀어라 등. 무당벌레 빼고는 다 해봤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결국 진딧물, 깍지벌레, 응애라는 이름모를 적들을 한큐에 박멸한다는 농약을, 그 와중에도 친환경이라는 농약을 뿌려야만 했다. 역시 약은 약이라 며칠 사이 효과가 나타났다. 좀 더 버티지 못하고 농약을 쓴 건 옥수수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충분히 자라면 흔히 개꼬리라고 부르는 수꽃이 삐죽하게 올라온다. 이 수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꽃가루가 이동해 수정되기 때문에 옥수수들끼리 가까이 심는 거다. 이 수꽃이 옥수수 마디에 톡 떨어지면 여기서 열매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나는 분명 수없이 옥수수를 먹어봤다. 시장에서 껍질에 싸인 것도 여러 차례 봤다. 강원도까지 안 가도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가 달려있는 것도 봤다! 씨앗을 심어 작게나마 키워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왜, 옥수수 열매가 거기에 달리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사실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다른 과일이야, 사과나 배나 아름다운 색색의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가 맺히니까 나뭇가지 곳곳에서 달리는거라고 알고 있었다. 옥수수는 얼마나 신기한지. 마디 사이사이에 잘 보이지 않는 암꽃이 있었던거다! 세상은 넓고 꽃의 생김은 다양했다! 우리가 높다랗게 솟아난 개꼬리를 보고 있을 때 조용히 암꽃이 피어나 열매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거다. 진딧물은 이걸 나보다 먼저 알고 옥수수 줄기의 진액을 빨아먹으려고 온 것이었나?! 암꽃이 손가락만한 옥수수가 되어 자라나는 모습은 매일 봐도 경이로웠다.
7월 말 제법 크기가 크고 수염이 갈색으로 변한 옥수수를 수확했다. 제일 큰 옥수수는 매일 열심히 안부인사 하던 둘째가 땄다. 할머니 보여드려야 한다면 외갓집가는 날 아침에 따서 외할머니와 쪄먹었다. 무척 달고 수분이 가득한 알맹이들이 최고였다. 몇 개 안되는 옥수수를 살뜰히 먹는 아이들을 보니 안 먹는다고 괴로워하던 일들이 아주 오래된 옛 일처럼 흐릿해졌다.
에필로그) 옥수수 수확이 끝나고 줄기와 잎을 화분에서 뽑아냈다. 키 큰 옥수수가 바람에 안 쓰러지고 서 있는 건 강인한 뿌리 덕분이라고 알고는 있었다...만 이건 중노동이다. 뿌리는 식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강하고 깊게 흙을 움켜쥐고 있어 나는 뽑아낼 엄두도 못냈다. 남편이 두 팔 걷고 나섰는데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애썼다.
- 다시는 옥수수 심지말자.
남편은 선언했지만 이듬해 옥수수를 다시 심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