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꿀만한 목재 화분이 2개 있었다. 신혼집 작은 베란다에 놓고 쓰다가 다음 집으로 이사가면서 외진 방 한 구석에 세워놓고 안 쓰던 것이다. 4년 가까이 빈 방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테라스에 꺼내어 흙을 채웠다. 빈 방에 세워둔 동안 남편은 목재 화분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더욱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시부모님은 내가 결혼할 때까지도 목재소를 운영했다. 덕분에 남편은 어려서부터 마을과 떨어져 인적이 드문 곳, 목재 공장 옆에 딸린 집에서 먼지와 소음을 배경삼아 자랐다. 새 가족을 맞이하는 예비 시아버지는 꽤나 열성적이셨는데 내가 인사하러 댁으로 찾아간 날 직접 만드신 도마를 선물해주셨다. 이후로도 신혼집 베란다에 놓을만한 길고 납작한 텃밭 화분을 두 개 더 만들어 주셨다. 알콩달콩 소꿉놀이하듯 상추 모종, 토마토 모종을 심어 놓고 뱃 속에 아기와 함께 쑥쑥 자라는 걸 지켜보았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며칠 뒤 더 이상 가꾸기도 어렵고 제법 결실을 맺은 토마토와 남아있던 잎채소들을 따서 정리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감사한 해였다.
시아버지는 여러 차례 간 색전 수술을 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꾸준히 즐기셨다. 같은 해 남편은 공여자로서 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했고 이듬해 시아버지는 공교롭게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첫 아이가 돌잡이를 하고 며칠되지 않은 더운 여름 날 밤이었다. 온 가족이 다함께 있는 사진이 아이 돌사진뿐이라 이게 시아버지 묘비에 각인되었다. 이런 일들이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동안 나는 엄마라는 미지의 동굴에서 더듬더듬 헤매고 있었다. 분명 남편이 곁에 있는 날들이 있었지만 아빠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에게 기댈 수 없었다.
나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문득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마트에 갔는데 우리 애와 같이 문화센터 수업 받던 아기가 엄마, 아빠와 함께 그 곳에 있었다. 무척 행복해보였다.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을 나눌 남편이 없었다. 우린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고군분투 했다. 그 때부터 였던 것 같다. 일종의 목표같은 것이 생겼다. ‘남편없이도 잘 헤쳐나갈 것. 그는 내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괜찮다.’ 마음 속의 숲이 새로운 오솔길을 내고 있었다. 새로운 길 옆으로 예전의 길은 덤불로 뒤덮였다. 남편은 입을 꾹 다물었지만 마찬가지로 내게서 마음이 돌아섰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나는 내 앞가림으로 바빠 시누이에게 왕왕 재수없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내색한 게 그녀일 뿐 그 집 식구들 다 한 마음이었겠지.
몇 년간 방치된 목재 화분을 꺼내어 흙을 퍼담을 무렵 남편은 제법 아버지의 부재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화분은 멋진 유산이었다. 결혼 첫 해 모종을 심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추와 쑥갓을 같은 화분에 심었지만 몇 년 사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달력은 해만 갈아치웠을 뿐 변한 것이 없어 4월 5일 식목일이 약속한 것처럼 따박따박 돌아왔다. 길일을 점쳐 혼사를 치루는 것처럼 식목일은 으레 나무를 심는 날이니 무언가를 심으려면 이 때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그 즈음 모종을 심고 나니 식목일은 길일이 아니라 이 날부터 심어도 된다하는 출발선 같은 거였다!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러워서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추락하면 냉해를 입는게 아닐까 걱정, 바람이 불어 걱정, 미세먼지와 황사 염려, 비닐하우스같이 뭐라도 덮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빛을 가리니까 그냥 둬야하나 고민. 마음 급한 초보 정원사들이 부지런떨며 모종을 심는 바람에 며칠 분의 스트레스를 덤으로 받았다. 그래도 식물들은 씩씩하고 기특하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 태양을 향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라는 속도와 모습이 달라 때때로 관심가질 데가 너무 많아 바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콩은 하얀 꽃을 피우더니 이내 꼬투리를 맺으며 변화무쌍하게 자라나고 곧이어 상추, 쑥갓도 쭉쭉 뻗어 나간다. 5월이 넘어가자 도저히 그들이 자라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매 주말마다 고기를 구워먹어도 솎아야 할 잎이 남을 정도였다. 쑥갓이 하얀 미니 국화꽃같은 제 꽃봉오리를 보여줬을 때야 비로소 고기파티를 멈출 수 있었다.
우리 집 테라스는 남서향으로 나 있어 제법 긴 시간동안 뜨거운 직광을 받는 위치였다. 잎채소들은 그 자리가 딱 좋았는지 기세등등하게 자라나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상추와 쑥갓을 바구니에 따 담으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지난 과거의 이야기는 누구도 먼저 꺼내지 않았고 그저 나무 옹이처럼 단단한 자국으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