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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Aug 20. 2022

캐나다 스타벅스의 아침은 빠르게 시작된다.

새벽의 스타벅스를 여는 사람들.

스타벅스에 출근한 지도 벌써 2주 차. 이번 주부터는 오픈 트레이닝을 받고 오픈 근무에 투입된다.

우리 매장의 오픈 시간은 새벽 5시 반. 오픈 근무조는 5시에 출근을 한다.


오픈 첫 날인 오늘은 트레이닝을 받는 날이다. 전날 일찍이 잠에 들어서 다행히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네시 반에 집에서 나왔다.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 매장으로 걸어가는데 달빛이 너무나 밝았다. 가로등 보다도 밝은 달빛이 내가 가는 길을 비추고, 올려다본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있었다.

이 시간에 길거리를 걸어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평소 같으면 곤히 잠들어있을 시간인데 마치 아무도 모르는 시간의 세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사랑하고 싶어지는 새벽이었다.


매장 앞에 도착해 같이 오픈을 하는 그렉(Greg)을 기다렸다. 오늘 나의 오픈 트레이너는 그렉이다. 그렉은 평소에 말수가 많이 없는 데다 대개 무표정으로 있기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일주일에 몇 번 출근하지 않는 그렉은 그마저도 오픈 시간에만 근무해서 같이 일해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그렉이 도착해 매장 문을 열고 같이 들어갔다.


같이 일하며 그렉에 대한 나의 오해는 단번에 깨졌다. 그렉은 아주 활기차고 텐션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세심하고 친절했다. 푸드 진열하는 걸 배우고 내가 그에 맞춰 진열하고 있으면 중간중간 확인하며 "음.. 괜찮네." 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매장 문을 연 뒤 바에 투입된 나에게 중간중간 "Are you ok?" 하며 상태를 확인해주었다.



스타벅스 오픈은 크게 두 가지 준비로 나뉜다. 하나는 음료 준비, 다른 하나는 푸드 진열이다.


음료 준비는 미리 만들어두고 사용하는 음료 재료나 소스, 시럽을 확인하고 준비해놓는 일이다. 미리 우려 놓아야 하는 아이스티나 아이스커피를 우려서 얼음을 가득 채워놓고, 시럽과 소스 중 폐기할 것이 있는지 확인해서 폐기처리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럽을 꺼내서 오픈을 하거나 부족한 소스가 있으면 만들어둔다.

그리고 오픈하기 10분 전쯤 시간에 맞춰 브루잉 커피를 내린다. 캐나다 사람들은 드립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시기 때문에, 커피가 떨어지지 않게 잘 확인해줘야 한다.


푸드 진열은 매장에 있는 쇼케이스에 스타벅스 디저트와 푸드를 진열하는 일이다. 한국 스타벅스에도 푸드 쇼케이스가 있는데, 이 쇼케이스는 매일 마감할 때 청소하고 다음 날 새로 진열을 한다.

진열은 스타벅스 본사에서 주는 디스플레이 가이드에 따라 소포장된 푸드를 뜯어 선반에 진열하면 된다. 그런데 푸드 종류가 굉장히 많고, 샌드위치는 살짝 데운 후 종이를 접어 샌드위치를 감싼 후 장식용 테이프로 둘러 고정해야 하므로 꽤나 시간이 드는 작업이다.

나중에는 대략적인 위치를 외워서 금방 할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트레이닝을 받았는데도 이게 맞는지 헷갈리고, 가이드 한 번 보고 빵 하나 뜯고 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많이 들었다. 매장 문을 연 뒤에도 진열이 끝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자꾸 손님이 들어와서 왔다 갔다, '이걸 어쩌지' 하며 당황한 적도 많다.




드디어 오픈 준비가 끝나고 5시 30분, 매장 문을 열 시간이다.

처음에 오픈 시간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다섯 시 반? 우리나라에 다섯 시 반에 여는 카페가 있었나? 한국 스타벅스에서 일찍 연다, 하는 매장도 일곱 시에 오픈을 했던 것 같은데 다섯 시 반이라니. 이 시간에 오는 손님이 과연 있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와서 더 놀랐다. 도대체 다섯 시 반에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일까.


오픈 손님들은 대개 단골손님들이 많았다.

근처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리차드라는 손님도 그중 하나였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걸 보니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커다란 풍채와 점잖은 말투가 멋있는 분이었다. 리차드는 매번 벤티 사이즈 다크 로스트 커피를 주문하고 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함께 먹으며 신문을 읽었다.


밴쿠버에서 택시 기사를 하는 인도계 아저씨 손님들도 새벽 단골이었다. 처음에는 화나 보이는 인상과 툭툭 뱉는 말투에 겁을 먹었다. 그들이 계산대에 와서 "또 닼"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아주 정확한 원어민 발음으로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전 세계 손님들의 영어 발음을 이해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또 닼"의 뜻은 '톨 다크'다. 톨 사이즈 다크 로스트 커피. 나중에는 이렇게 짧은 말이 아니고 더 긴 말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역시 영어 듣기는 생존 경험이 최고인 것 같기도 하고.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혼자일 때도 여럿일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오기도 했다. 가끔씩 바나나 로프나 베이글 같은 베이커리를 시키기도 했다. 스타벅스 캐나다는 먹고 가든 포장이든 상관없이 모든 푸드를 종이봉투에 담아 주는데, 항상 포크와 나이프와 함께 푸드를 플레이트에 올려 주기를 요청했던 그들. "또 닼"을 주문하며 "Fresh brewed?(갓 브루잉 된 거니?)" 하고 매번 물어보던 그들.




사람이 거의 없는 깜깜한 새벽의 밴쿠버 다운타운 길거리.

그 와중에 환하게 불이 켜진 스타벅스에 모인 손님들.

고요한 아침에 일찍 하루를 시작한 다양한 삶들을 보며 또 한 번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간다.


캐나다 스타벅스의 아침은 이르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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