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진이라는 지역에 대해 말할 기회는 드물다.
서울 사람들은 강진을 모른다. “땅끝 해남 옆입니다”, “정약용 유배지예요”라고 말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설명은 늘 보조적이다. 정약용이라는 지역보다 작고 역사에 남겨진 이름을 빌려야만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어딘가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강진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 KTX는 닿지 않는다. 기차를 타려면 먼저 버스를 타야 한다. 지리적으로 먼 곳은 심리적으로도 멀다. 나의 어린 시절이 녹아져 있지만, 자주 찾진 않는 장소. 강진은 그런 곳이었다.
2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는 강진에 산다면 매년 반복되었다.
다산초당, 유배, 『목민심서』. 어린 시절, 가파른 오르막길과 소박한 초당, 그리고 그곳에서 책을 썼다는 정약용.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땅에 발로 그림을 그리며, 선생님의 설명을 애써 무시하며, 지루한 시간을 피했다.
역사는 당시 나에게 흥미롭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과거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덜 세련되었고, 덜 똑똑했을 것이다. 전기 없이, 자동차 없이, 컴퓨터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세계를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와 다른 점도 많은 데 역사를 왜 알아야 된담?", "바보 같은 과거의 산물"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3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이 있다. 그곳엔 두 개의 반가사유상이 있다.
반쯤 걸터앉아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른 손은 오른쪽 뺨 언저리를 만지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
나무 바닥의 약한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끝. 불상은 허리정도 높이의 단 위에 놓여 있다. 천장의 조명은 벽면을 둘러져 빛이 벽을 타고 흐른다. 벽은 황토색으로 전부 칠해져 있다. 천장에는 동그란 철근 같은 것들이 길쭉하게 무수히 박혀있다. 공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묘하게 많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4
반가사유상은 익숙한 듯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눈은 감은 듯, 반 뜬 듯. 자세는 안정적이고, 표정은 고요하다. 불교적 해석은 필요 없다. 한 사람의 오래된 사유의 형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나는 그 형상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시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조각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손가락 하나, 장신구의 곡선 하나, 그리고 무릎 위로 흐르는 천의 주름까지. 사유에 대한 관찰과 깊은 생각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문득 500년 전, 1000년 전의 인간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사유하고 생각하고, 만들고 걷고 사는 똑같은 사람. 단지, 이 시대의 전기, 반도체, 컴퓨터와 같은 도구가 달랐을 뿐이다.
그들이 남긴 것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이 물은 질문과 얻은 해답이 남았고, 이어지고, 전달되었다. 나는 사유를 통해 비슷한 질문은 반복하고, 그들이 얻은 답을 참고한다. 내가 역사를 다시 보게 된 방식이다.
5
작품을 바라보는 밀도를 다르게 해주는 공간.
유물들을 동선에 맞춰 네모난 유리박스에 가둬만 두는 기존 전시와 달리, 유물의 의도를 공간으로 풀어내어 사유를 만들어주는 공간.
최욱 건축가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지는 공간이 아닐까 한다.
잘 만들어진 공간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역사를 느끼게 해 준다.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주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건축가: 원오원 아키텍츠 최욱 건축가
- 누구든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공간의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