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 시절, 건축을 전공하던 우리는 서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곤 했다. 대부분은 르 꼬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알바로 시자 같은 해외 거장들의 건축물을 꼽았다. 나 역시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친구가 뜻밖에도 건축가 우규승씨의 환기 미술관을 이야기했다. 순간 의아했다. 부암동 언덕 위, 뭉툭하고 성벽처럼 생긴 그 건물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그저 특이해 보이고 싶어서 그런걸까.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2.
김환기의 뉴욕은 절망이었다. 1963년, 그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길 원했고, 뉴욕은 그 답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익숙한 서울과 파리의 정취를 뒤로하고, 그는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철저한 외로움을 마주해야 했다. 낯선 언어, 낯선 평론가들, 그리고 낯설게 변해가는 자기 자신이 있었다. 그 외로움 속에서 가난에 맞서 신문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처음 김환기 작품을 본 건,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특별 전시회 때 였다. 푸른빛 점들이 가득한 대형 캔버스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단순한 패턴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외로움이 점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푸른 점들을 하나하나 찍어가는 인내에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작업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 구상과 실현을 위한 압도적인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
3.
직장을 다니게 되고, 다시 환기 미술관을 찾았을 때, 나는 그제야 그 친구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김환기의 삶과 작품이 건물 속에 있었다. 심심하게만 느껴졌던 외관은 오히려 김환기의 초기 구상 작품 같은 비움을 품고 있었고, 내부 구조 또한 그와 닮아 있었다. 네모난 큐브처럼 구획된 공간은 마치 거대한 하나의 작품이자 우주처럼 느껴졌다. 그의 점묘가 만들어낸 세계가 미술관이라는 공간 속에서도 확장되는 듯했다.
나는 문득 김환기가 점을 찍을 때의 마음을 상상했다. 그에게도 이 행위는 일종의 기도였을까. 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내가 캔버스 앞에 서 있었던 시간 동안, 점들은 말하는 것 같았다. 절망 속에서도 찍어야 한다고. 찍고 또 찍다 보면,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가 된다고.
김환기는 뉴욕에서 무너졌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점들을 따라, 내 삶의 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를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뭉툭한 성벽같던 환기 미술관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라.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 김환기 1973
장소: 환기 미술관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
건축가: 우규승
- 건물의 정문 뒤로 돌아가는 계단을 올라가면 옥외 정원이 있습니다. 다들 자주 안가는 공간이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 가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공간의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