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탄생

둘째의 탄생

by 공담소

'펑' 9개월 된 물풍선이 터졌다. 자궁 수축이 시작된 지는 오래였다. 그런데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아기 때문에 간호사가 양수를 터트렸다. 아직 참을만한 고통 위에 뜨끈한 온수가 노곤하게 번졌다.

"어? 아기가 힘들었나 봐요. 태변을 봤네요."

태변은 안 좋은 징조였다. 태아가 태변이 섞인 양수를 마시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기겁을 하려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색깔을 보니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일단 지켜볼게요."

차분하고 사무적인 말투를 들으니 굳이 긴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직 아기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출산휴가를 기대하며 월요일을 맞았을 뿐이었다. 몇 개월의 휴직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진정한 휴식 기간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단 3주 정도였다. 그동안 평일에는 직장에서 키보드 타건음을 태교음악으로 삼았고, 주말에는 첫째에게 '좋은 엄마 놀이'를 하며 체력을 단련해 왔다. 나름 알차게 출산을 준비했지만 이제는 정말 쉼이 필요한 때였다. 3주간은 광합성만 하기로 다짐했었다. 이제 5일. 앞으로 닷새만 출근하면 온전히 나와 아기만 생각하며 쉴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주말엔 힘이 솟았다. 대청소를 하고 새로 장만한 분유 포트와 젖병을 소독해 두었다. 아들과 데이트도 놓칠 수 없었다. 남편의 만류에도 아들이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아들이 좋아하는 도서관에 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책을 잔뜩 보고 빌려왔다. 그것도 아들이 좋아하는 나와 단 둘이. 꽤 전략적인 사랑의 방법이다. 이런 걸 일타이피라고 하던가. 이렇게 하면 남편에게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로 출발하려는데 쎄한 기분이 들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다 싶어 오전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달랑 사원증 하나 들고 입원을 했다.


양수가 터져도 진행속도가 빨라지지 않았다.

"어머, 참을성이 좋으신가 보다. 그래도 너무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내 고통을 모니터 속 숫자로 보고 있을 그녀. 잘 참는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렸던 걸 보면 그때까지는 정말 참을만했었나 보다.

'그렇지? 이 정도면 많이 아픈 거 맞지?'

고통을 인정받자 신기하게도 그것이 참을 수 없게 더 커져 버렸다. 심리전에서의 패배. 참고 참다 5분 뒤 남편을 통해 무통주사를 요청했다. 첫째 때 덕을 많이 봐서 출산이 수월했고, 그래서 둘째 낳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좌절스럽게도 이번에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진통은 눈치 없이 더 자주 그리고 더 강하게 몰아쳤다.

"이제 곧 올 거야."

남편이 자궁수축 그래프를 보고 언질을 주면 앞으로 다가올 곧 큰 파도를 대비했다. 몸에 힘을 빼되 입술을 씹고, 손톱으로 살을 꼬집어 가며 버텨냈다. 그중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밖에 눈이 내린단다.

'우리 아가, 눈 내리는 특별한 날에 태어나는구나.'

천사가 꽃가루를 뿌리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며 우리 아가의 탄생이 왠지 더 특별해질 것만 같았다.


2시간쯤 더 흘렀을까? 아기가 내려오질 않았다. 진통 주기는 더 이상 짧아질 수 없는 정도였고, 강도는 100 이상으로 치달아 측정이 무의미했다. 태연했던 의료진이 이건 좀 이상하다며 그제야 움직인다. 아기가 내려오도록 힘을 줘보라고 했다. 힘을 살짝 주었더니 아기 심장 박동이 느려졌다. 간호사가 다급해졌고, 조금 기다려보자던 의사가 초음파 기계와 함께 등장했다. 모니터 속에 아기 얼굴이 보였다. 분명 입원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어느새 하늘을 보고 돌아누워 있는 녀석이었다.

'우리 아가, 조여 오는 뱃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의사가 바로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 했다. 의사는 남편을 쳐다봤고, 남편의 눈은 나를 향했다. 나는 의사에게 대답했다.

"제왕절개 해요. 바로 해주세요."


입원 절차를 밟으며 부장님께 전화를 드렸었다. 오전 반차를 출산휴가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민망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오늘 볼 예정이던 사람이 갑자기 몇 개월 후에 보자며 안녕을 고한 셈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출산만 생각하라며, 순산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아기 키우는 동안 일을 멈춘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면서 당연스러운 것이지만, 동시에 회사에서는 인력 '-1'이 된다. 육아휴직 대체자를 뽑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 회사는 어찌할까 고민하다 어물쩍 어물쩍 같은 팀 동료들에게 휴직자의 업무량을 분배한다.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남은 자들의 업무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건 회사 입장이고! 눈치 보여서 육아휴직 하겠어요? 회사 다니겠어요? 그래서 정부 정책과 제도가 있고, 사칙이라는 게 있는 건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동료들의 얼굴을 보면 그저 미안한 마음 먼저 치고 나왔다. 첫째 때는 휴직 때나 복직을 해서나 이런 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그런데 그것도 옳은 표현은 아니었다. '육아휴직은 미안한 것'이라는 마음을 전이시켜서는 안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름 노력을 했다. 미안함은 가슴에만 두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이 안녕하기만을 마음속으로 깊이 바랄 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료들은 불러온 배를 볼 때마다 순산을 기원해 줬다. '이번에도 쉽게 쑥- 낳을 것 같다'며 응원을 해주었다. 그럼 멋쩍은 마음에 임산부만 할 수 있는 농담을 툭- 던지곤 했다.

"진통으로 고생하다가 제왕절개 하는 것 아닌가 몰라요. 허허-"


말이 씨가 되었나 보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제라도 봐달라며 신께 빌기 시작했다. 후회한다고, 그때의 말은 거짓이라고, 진심이 아닌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해서 죄송하다고 말이다. 내 진정성이 닿기를 바라며 앞으로 안 그러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그리고는 진짜 소원을 말했다.

'그러니 아기만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제왕절개로 장르가 바뀌었다. 수술실은 가족분만실에서 가까웠다. 진통이 오면 멈췄다가 멎으면 빠르게 걸었다. '얼음땡'은 수술대 위에서도 계속됐다. 침대에 눕는 그 몇 초에도 진통이 오고 갔다. 찡그린 미간 속에는 아기 생각 밖에 없었다.

"둘째라고 했죠?"

마취약을 넣으며 하는 질문에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싶었다. 동시에 누군가 수술 부위를 소독을 하고, 또 다른 이는 다리를 묶었다. 이상하다. 이건 아닌 것 같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아기 나와요!"

지금까지 소리 한 번 안 지른 내가 내뱉은 절규에 간호사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묶인 다리를 풀러 주었고 그 사이로 아기 머리를 확인했다. 모든 의료진을 대동해 가족분만실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우니 다 젖은 출산복이 차갑게 내 위에 내려앉았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펑' 아기가 태어났다. 10초의 힘주기로 끝이 났다. 이 녀석은 효녀인 걸까? 불효녀인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성질껏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건강하오' 하고 들려왔다. 그 순간 먹구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린 듯 한 줄기 빛이 아기를 비추는 듯했다. 간호사가 아이를 내 쪽을 데려온다. 그녀의 팔에 안긴 작은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찬란한 빛이 다가와 나와 얼굴을 맞댄다.

"안녕, 아가야."

소원이 이루어졌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