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되어 하루를 보낸다면(둘째 편)

보스 베이비 (전지적 아가 시점)

by 공담소

왼팔이 저릿저릿하다. 또 한쪽으로만 누워서 잤나 보다. '휴-'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보고 돌아눕는다. 팔과 다리에서 전해지는 침대커버의 보송한 감촉에 오감이 발동한다. 창가에 스민 아침햇살, 안전 가드 사이로 들어오는 은은한 선풍기 소리, 그 결에 실려오는 아기 냄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냄새다. 으랏차차- 있는 힘껏 팔다리를 뻗어 찌뿌드드한 몸을 펴내며 오늘을 시작해내기로 한다.


슬며시 오른손을 들어 올려본다. 엄지를 말아쥔 주먹이 제법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흔들리지만 그래도 이제는 휘적거리지 않고 제법 천장을 향해 고정할 수 있다. 멋대로 흔들려서 골치 아팠던 녀석이 점점 컨트롤되기 시작한다. 팔 대근육 움직임은 조만간 마스터할 것이다. 잠시 조용히 들여다보며 전투력을 올린다.

"찰칵"

"아가야~ 혼자 놀면서 엄마아빠 기다렸어? 이구~ 기특해라!"

뭐가 신기한지 부모님은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울지 않고 깨어 있으면 그렇게 기특해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날 관찰한다. 울까? 웃자! 이 타이밍에서는 웃어야 한다. ‘나 대견하지요?’의 미소를 띠면 그들은 오늘도 나에게 빠져들고 말 것이다.

"헤에-"

아직은 목에서 공기소리만 새어 나가지만 효과는 엄청나다. 이 한마디에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목소리만 트여봐라, '엄마, 아빠'를 부르면 그들 좋아 쓰러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지배해 갈 생각이다.


“엄마! 아기 깼어요?”

천적의 목소리. 오빠가 방에 들어온다. 이 집에 온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캐릭터다. 내가 울면 가장 먼저 달려오지만 엄마가 달래지는 못하게 하고, 뒤통수에 뽀뽀는 해주지만 안아주는 척 온몸으로 나를 누르기도 한다. 물론 당하지만은 않는다. 해맑은 얼굴로 그의 머리끄덩이를 잡거나 침범벅을 해버린다. 와 있으면 가끔 억울한 일도 생긴다. 그가 내 퍼덕이는 손 아래 얼굴을 들이밀고는 엄마한테 이르기도 한다. 그럴 땐 미워할까 고민이 되지만, 그럴 수 없게 매력이 넘친다. 나를 웃기려고 일부러 소파에서 굴러 떨어지는 시늉을 하다 엄마한테 혼나기도 는 그는 우리 집 공식 개그맨이다. 그리고 좀 잘생긴 편이다. 지금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머리를 맞대며 부비는 그가 좀 귀찮지만 봐줄 만은 하다.

최근엔 네발기기를 마스터했다. 다른 아가들보다 빠른 편이긴 하지만 다음 달에 걷는 것이 목표여서 개인적으론 초조하다. 힘쓰는 법을 터득하려면 많이 기는 수밖에 없다. 손가락에 잡히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잡고 일어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끔 아기띠를 타고 산책을 하다 보면 스치듯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엄마들이 서로 몇 개월인지를 묻는 사이 우리끼리도 대화하기에 바쁘다. 대략적인 호구조사를 하고, 월령대비 발달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서로 비교한다. 나의 빠른 진도에 질투를 느꼈는지 누군가는 그랬다.

“왜 빨리 기고, 걸으려고 해? 어차피 자연스럽게 터득할 텐데, 애쓸 필요 없잖아? 세 살쯤 되면 다 걷지, 못 걷는 친구 없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비교해서 앞서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고 도전하고 싶을 뿐이다. 누워만 있을 순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서 매주 개인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갓생'을 사는 중이다.


분유만으로도 충분한데, 가족들이 아침을 먹는 시간에 이유식이란 걸 같이 먹기 시작했다. 성의를 봐서 먹어주는 척을 했지만 오늘은 쉽게 먹어주지 않을 것이다. 저걸 먹기 시작하고는 변비로 된통 고생했다. 고개를 숙이고 이리저리 피하면 먹이지 못할 것이다.

“아~ 해봐~ 아~”

눈을 마주치지 말 걸 그랬다. 불쌍한 그녀가 애쓴다. 오늘도 못 이기는 척 몇 입 먹어줘야 하려나 보다. 이 까끌거리는 것들을 목 뒤로 넘기는 건 언제 해도 낯설다. 그녀 몰래 삼키는 척 뱉어내는 전략을 세운다. 이렇게 하면 그녀는 모를 것이다.

“여보, 내가 먹여볼게”

아빠가 엄마와 자리를 바꿔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엄한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그런 그는 더욱이 봐줄 생각이 없다. 소리를 지르며 그를 노려본다. '먹기 싫다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유식 의자에서 빠져나가려는 듯 몸을 버팅긴다. 완강한 표현에 그는 한발 물러나 멍하게 날 지켜본다. 순간 모두 얼음이 되었다. 나의 승리인가 보다.

“엄마! 동생이 왜 저럴까요?”

천적이 정적을 깬다. 그리고 그는 엄마와 눈을 맞추며 밥을 크게 한 술 떠먹는다. 얄미운 오빠. 적은 아빠일까? 오빠일까? 방심한 틈에 입에 숟가락이 들어온다. 당황한 김에 한입 삼켜 버린다. 언젠가 이 맛에 익숙해지겠지, 세 살쯤 되면 다 먹겠지.

분유는 누워서 떡먹기다. 쭉쭉 들어오는 분유 맛이 꿀맛이다. 아는 맛이 가장 좋은 맛이랬나? 이제는 먹는 것보다 소화가 문제다. 위가 눌리면 물총처럼 ‘찍-’ 토가 발사될 수 있다. 큰 트림이 한 번 나오면 엄마는 나를 범보의자에 앉혀둔다. 그녀가 젖병을 두러 잠시 사라지면 나는 '그'를 찾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들쳐 안는다. 겨드랑이 사이로 큰 손을 수욱- 넣어 손바닥으로 몸통을 지지해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우리는 눈을 반짝인다. 신호다. 배시시 웃음이 난다. 그는 팔을 접었다 폈다 하기도 하고, 하늘에서 나를 휘두르기도 한다. 그는 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반응을 살핀다. 더 해달라는 의미로 웃으며 입 사이로 침을 흘려보내 그를 맞춘다. 나름의 애정의 표현이다.

“요 녀석 봐라?”

그의 몸짓이 더 커졌다. ‘끅끅끅’ 웃음과 함께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여보…”

싸늘한 목소리에 아빠가 쏘여 마비가 된다. 아직 트림이 다 하지 못한 내가 토를 할까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은 알지만, 우리는 교감을 했을 뿐이다. 더 탈 수 있었는데 너무 빨리 들키고 말았다. 그가 머쓱해하며 날 내려놓는다. 이번엔 그를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끄악-”

트림 소리로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중재는 나의 특기다. 울어버리거나 웃어버리면 나에게로 시선을 빼앗아 올 수 있다. 그들은 언제까지 날 아기로만 알고 있을까? 난 그저 그런 아기가 아니다. 페셜 베이비다. 제 그들이 날 알아보길 바란다. 지금 졸려 눈이 반 감겨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저들이 언제쯤 내 비위에 맞춰 재워줄 수 있을까? 그것도 세 살 쯤이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