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의 밤

작고 소중한

by 공담소

나의 '밤'은 오지 않기도 한다.

아이를 위해 만든 수면 분위기에

내가 취해 잠에 들기 일쑤다.


'밤'을 잃는다는 것은

기대했던 무언가를 이루지 못함이고,

'밤'을 마주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이 주는 가능성을 만나지 못함이다.


그것이 야식이나 미디어 콘텐츠든, 자기계발이나 꿈이든

나에겐 그렇게나 거창한 것이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만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있어

그저 고마운 시간

그런 아름다운 시간이다.





나·닫·시

아기를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한 집의 최대 관심사는 '통잠'이다.
아기가 밤을 알게 되고, 밤 시간에 깨지 않고 쭉- 푹- 자는 것이다.
보통 100일의 기적을 바란다.
그 기간을 넘기면 100일의 기절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첫째 아이는 두 돌 때까지 새벽에 한두 번씩 깼다.
발버둥 치고 소리를 지르며 우는 녀석을 달래는 데는
운이 좋으면 5분, 아니면 40분이 걸렸다.

한 해 동안은 그러려니 했다. 비슷한 집도 꽤 많았다.
하지만 두 해를 채워갈수록 속이 상해갔다.

- 울음소리에 대한 1차적 청각 고통
- 2-3시간마다 깨야 하는 신체적 피곤함
- 이웃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
- 방금 재웠지만 언제 또 울지 모른다는 긴장감
- 이런 상황이 앞으로 몇 년 지속될지에 대한 두려움
- 이것들의 누적

우리 부부는 이러한 것들을 눈빛으로만 공감하고,
입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부정적인 것들은 극대화하지 않기로 했다.
잠들기 전에 함께 다지는 마음은 전우애로 똘똘 뭉쳐있었고,
전략적으로 철저히 '달래기' 차례를 지켜 피로도를 줄였다.

물론 예민해져서 다툴 때도 있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 때문에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녀석은 이런 우리 마음을 알아주듯 두 돌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 잘 자기 시작했다.

문제는 잠에서 자유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태어난 것이다.
'둘째는 얼마나 갈까?'가 최대 관심사였지만 궁금증은 얼마가지 않았다.

이 녀석은 50일도 안 되어 그냥 잘 자버렸다.

첫째의 잠 문제가 '내 탓'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단했던 밤을 놓아줄 수 있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깨는 게
다시 온전히 행복해졌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