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의 시점.
아직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오롯이 하기 힘들다. 맥주 한두 캔 없이 잠이 드는 날이면 여지없이 새벽 3시 잠이 깨던 그 시절. 그때부터 잠과의 싸움이다. 나는 어디든 머리 닿으면 곯아떨어지는 특기가 있었는데 그렇게 잠이 간절할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이제 그녀가 잠들지 못한다. 걱정이다. 어머님 가신지 1년. 장인어른이 편찮으시다니. 장인어른에 관한 이야기에 그녀는 조금 예민해져 있다.
나의 시점.
아빠를 보러 갔다. 입원해계신 아빠에게 죽을 떠먹여 드렸다. 항상 나에게 산 같았던 아빠. 치료하면 된다고 하고 우리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아빠가 좋아지실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산 같았던 아빠에게 무언가를 먹여드린다는 그 행위! 자체가 마음을 힘들게 한다. 행위.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 상황을 직접적으로 와닿게 하는 너무도 확실한 도구인 걸까. 엄마가 걱정되면서도 건강하신 것이 너무도 다행이다. 그나마 같은 서울 아래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동생들 특히 여동생에게 정말 고맙다. 그에게도 고맙다. 내 마음을 오롯이 느끼면서도 더는 깊이 들어오지 않는다. 먼저 경험한 덕?이라고 해야 하나. 아빠 소식을 전하면서 엄마는 그렇게 미안해하셨다. 우리 큰딸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또 아빠로 인해 마음이 힘들까. 계속 그 걱정이시다. 그래서인지 동생들과 많이 풀어가시는 모습에 나는 또 죄송하면서도 다행이다 싶다. 나는 정말…. 불효녀다. 밤에 잠드는 것이 힘들다.
그의 시점.
섣부른 위로나 혈액암 극복기 등이 그녀를 좀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음을 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주변인은 그렇게라도 돕고 싶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릴 때면 그녀를 가만히 안아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변화된 장인어른의 모습이 그나마 어머님 때 겪었던 일이라 충격이 덜하다. 그래도 많이 좋아지셔서 정말 감사하다. 다만 우리가 옮길 수 있는 다양한 병균들에 위험하실까 자주 못 찾아뵙는 것이 죄송하면서도 아이들이 그리 좋아하는 외가에 못 간다는 것이 안타깝다. 주말 아이들과 그녀를 위해 계획을 좀 짜야겠다.
나의 시점.
아빠가 많이 좋아지시고, 코로나로 조촐하게 치를 수밖에 없어 더 안심된 막냇동생의 결혼식에 무사히 참석하셨다. 아빠를 위해 결혼식을 미뤄준 동생과 그의 아내에게 미안하고도 고맙다. 그대로 진행했으면 코로나로 인해 어차피 어수선하고 위험할 수 있었을 거라는 동생의 말은 나중의 안도다. 많이 기다렸던 결혼식을 미루는 신부의 마음이 어땠을까? 결혼식을 위해 우리는 사회도 화동도 아이들 바이올린 축하 연주도 맡았다. 신랑, 신부 포함 49명이 모일 수 있는 그 시점.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기쁘다. 가족들끼리 온전한 축하를 느낄 수 있었던 그날의 감사들.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함께한 그의 배려가 그와 나, 그리고 우리임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난 어딘가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누군가를 많이 찾았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소울메이트가 되어주자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도 투닥거린다. 서운할 때도 많다. 서로를 좌절시킬 때도, 각자의 삶을 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간다. 서로를 더 깊이, 삶을 더 폭넓게 알아가는 성장의 과정에 함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서울메이트다. 그리고 인생을 함께하는 인생메이트다. 서로에게 서운함만을 가져다주는 '서운메이트'가 되지 않도록, 또 내가 원하는 그의 모습만을 고집하지 않도록.
나는 오늘 그의 소울메이트가 되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