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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점.
그녀가 요 앞 정류장에 내렸단다. 길을 상세히 가르쳐 주었지만, 얼른 나가봐야겠다. 그녀를 초대해놓고 보니 원래 떨었던 적이 없는데 떨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을 좀 더 할걸. '조진스키' 녀석 덕분에 공연하는 건 다행이나 그녀와의 데이트 시간을 연습 시간에 빼앗겨 미안하기 그지없다. 이럴 땐 그녀도 같이 바빠 좀 다행이다. 이해한다고 하니 내 여자 친구는 천사다.
나의 시점
동료 언니와 같이 가자 했다. 금요일 밤 연말 아마추어들의 공연. 가수 '이정봉'도 온다고 하니 겸사겸사 민폐는 아니겠다. 매번 연습하러 가야 한다 해서 서운하기 그지없다. 이해한다고 했지만 바쁜 우리, 주말 데이트가 고작인데. 쿨한 내가 되고 싶어 열심히 하고 오라 외쳤지만, 진짜 내가 괜찮다고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못하기만 해 봐라. 저기서 그가 달려온다. 검은색 양복바지에 무심한 듯 팔만 걷어 올린 흰 와이셔츠. 공연하는데 복장 신박하네? 이리저리 둘러보다 '조진스키'를 소개한다. 그의 공연 주최사 친구이자 밴드 멤버. 러시아에서 유학했나? 그의 상사가 부르는 '조진0,이~너므스키!'의 합성어라 한다. 실소 한 번 터트리고 나니 나도 긴장이 좀 풀린다. 그의 공연이 시작된다. 그가 궁금하다.
그의 시점.
굳이 보러 오겠다는 회사 동료들 뒤로 그녀가 보인다. 드디어 기타 솔로. 그녀와 눈을 맞추며 손은 어찌 흘러간다. 그 많은 관객 중 그녀와 단둘이 있는 기분이다. 그녀가 나를 본다. 나는 그녀를 본다. 우리는 서로를 느낀다. 당신은 나의 소울메이트. 나는 이미 처음부터 당신에게 반했을지도….
나의 시점.
무대 위의 그는 평범한 듯 비범하다. 한껏 꾸민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일 끝마치고 후다닥 달려온 무심한 포스. 내 앞 유독 환호하는 그의 회사 여자 동료 하나가 묘하게 신경이 거슬린다. 환호를 하든 말든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도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에게 반했다. 아니 처음부터 반한 게 아니었을까.
그의 시점. 오늘도 그녀는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육아에 올인했나 보다. 절대 내가 들어오지 않으면 자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누가 깨워도 모르게 아이와 자고 있다. 회사 일이 요즘 너무도 바쁘다. 너무 피곤한데 짬이 나면 회식이다. 나도 그녀를 돕고 싶지만,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다. 한편으론 그녀가 일을 쉬어주어 다행이다. 주말에 아이와 그녀를 위해 올인하겠다. 오늘이 아닌 주말에.
나의 시점.
오늘도 독박 육아다. 아이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내게도 의미 있는 시간일까? 오늘은 묻고 또 묻는다. 육아는 한쪽이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다. 몸이 너무도 안 좋아졌던 그. 바쁘고 힘든 그를 위해 한쪽이라도 편히 자기를 원하여 각방을 쓰지만, 3시간마다 깨어나 수유. 모유 수유라 나 혼자 오롯이 책임지는 밤들. 다행이면서도 서글프다. 아이는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같은 사진 100장도 내겐 다 다른 의미지만 우리가 꿈꿨던 행복한 밤들은 이 모습이 아니다. 과연 끝은 있는 걸까? 그는 나의 깊은 마음을 알까? 난 어떤 의미로 그와 아이에게 인정받고 싶은 걸까?
그의 시점. 둘째 녀석. 한동안은 숟가락을 계속 던지더니 계단 오르내리기를 수백 번. 첫째 때도 이랬나? 더 이상은 못 하겠다. 허리가 끊어진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는다. 그녀는 어떻게 견뎠던 거지? 회사 일에 너무 바빴던 나는 첫째의 유아기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순간순간 백만 장의 사진으로 첫째를 추억한다. 첫째와 시간을 더 가져야겠다. 나의 소중한 딸과 다음 주말은 번개맨을 보러 가야겠다. 잠깐 외출한 그녀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아직 아이들을 혼자 모두 케어하는 것은 무리다. 무섭다.
나의 시점.
아이를 보랬더니 정말 보고만 있다. 아이를 보라는 건 좀 놀아주라는 말도 포함이다. 둘째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라 했더니 순한 둘째 뒤로하고 핸드폰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그. 요즘 그의 진정한 소울메이트는 핸드폰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어느 정도 반성하는 부분이다. 현대인의 소울메이트는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자꾸만 생각나는 '스마트폰'이 아닐까? 그도 나도 스마트폰에 소울메이트를 빼앗겼다. 우리는 다만 서울이라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을 함께하는 단지 '서울메이트가' 아닐까. 그나마 초성이라도 같다 위안 삼아야 하는 걸까…. 대화가 필요하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