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 엄마는 나쁜 엄마다
(모든 사진: pexel)
요즘 젊은 부부는 아이를 하나라도 제대로 길러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만 낳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런 부모는 아이에게 너무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 아이에게만 집중하여 아이의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는 데 힘쓰고자 한다.
그 결과 아이가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 버린다.
6개월 미만의 아기에게 엄마가 사라지는 것은 아기로서는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아기에게 정서 발달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기가 생후 6개월이 지나면서, 엄마의 '일차적 모성몰두'기간이 끝나게 된다.
아기가 무거워지면서, 엄마로서는 늘 아기를 업고만 다닐 수는 없게 된다.
아기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자주 사라진다.
엄마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아기는 '죽음'과 '삶'을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를 자주 오가면서 그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아기는 정신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아기가 요구하는 대로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채워줬을 때 아기는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면서, 스스로 정신활동을 하지 않는다.
라캉의 유명한 공식이 있다.
<요구 - 욕구 = 욕망>
이 공식은, 자녀가 요구하는 대로 욕구를 모두 채워주면 아이가 스스로 욕망하는 것은 0 이 된다.
요구하는 것 중 70%의 욕구를 채워주면, 30%는 아기의 고유한 욕망이 된다.
욕망이 없다는 말은, 자신의 고유한 정신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요구하는 대로 욕구를 다 채워 주는 엄마는 나쁜 엄마다.
여기에는 자녀의 욕망은 없고, 엄마의 욕망만 있을 뿐이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라는 자녀는 자기 존재 욕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엄마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이런 엄마는 아이의 인생에 고속도로를 내줘서 아이로 하여금 늘 상위층에서 최고의 기능만 하면서 살아가게 만든다.
한 번도 국도를 다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세상이 어떤 곳인지, 타자는 누구인지, 시골에서 사는 것이 뭔지 알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명문대 들어가고 사회적으로 높임을 받게 되는 등 사회적으로 쉽게 출세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런 출세는 40대 초반이면, 그 영광이 끝난다.
문제는 40대 중반부터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이 성공한 것은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또는 엄마의 욕망을 위해 살아온 결과일 뿐, 한 번도 자기 존재를 위해, 자기 욕망을 위해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00년 이전처럼 평균 수명이 60~70세일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좀 방황해도 곧 죽을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존재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100세를 방황하며 살아야 한다.
자기 존재를 포기하고 엄마의 욕망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엄마의 긍정적인 사랑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좌절시키는 부정적인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제시해 주는 스케줄만 따라 살아가면 되니까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런 사람의 성공적인 삶은 엄마만의 지지만으로는 안된다.
이런 류의 성공을 위해서는,
첫째, 할아버지의 재력과
둘째, 아버지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무관심,
셋째, 엄마의 광범위한 정보력
등이 세트가 되어 이루어지는 일이다.
40대가 되어서야 겨우 좌절을 경험하는 자녀에게 엄마는 말한다.
"걱정하지 마. 네 환갑잔치까지 내가 차려줄게."
이 정도 되면, 그렇지 못한 부모를 둔 주변 친구들은 자기 엄마에게 불평한다.
"다른 엄마는 아들 환갑까지 차려준다는 데, 엄마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이런 불평을 듣는 엄마의 마음은 괴롭다.
그들은 애당초 인간 되기는 틀려 먹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마인드만 배우고 부정적인 것은 늘 배제하면서 살았다.
긍정적으로만 사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일만 일어나면 항상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이, 주변상황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늘 내게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세상 사는 동안 오히려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변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그 몇 명의 사람에게만 호감을 가질 수 있을 뿐, 나머지는 내게 적대감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나머지 다수의 사람은 나를 공격하고, 미워하고, 침범하는 사람으로 미리 상정해 둔다.
내 주변의 몇 명 우호적인 사람,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를 대해 주는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다.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내 주변에는 온통 나를 공격하는 적들로 가득 차게 된다.
긍정적인 경험하는 만큼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경험, 사랑하는 사람을 충분히 미워해 보는 경험, 우호적인 마음만 주는 사람에게 공격성을 충분히 드러내 보는 경험.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 사방은 적들로 가득 차고, 환경이 나를 공격하고, 어느 순간 늘 긍정적이기만 했던 부모 또는 가족마저도 내게 적대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사람은 사랑과 공격성의 통합, 사랑과 증오의 변증법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정신적 고초를 겪게 된다.
멜라니 클라인도 이렇게 말했다.
"(사랑과 증오가 통합되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지배적이며, 반명 실제적 이미지가 다소간 은폐됩니다." ([클라인의 정신분석 테크닉 강의, 눈, 176쪽)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은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것부터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까지 여러 면에서 유익할 수 있다.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고,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하고, 전반적인 웰빙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마술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특정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항상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 주변 사람들이 항상 우호적이고 지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좌절, 배신, 실망,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현실에서 사는 것은 긍정적인 경험만 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긍정으로 가득 찬 삶을 경험했다는 것은 개인이 삶의 부정, 좌절 및 도전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대처 메커니즘을 개발하지 못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거나 경험 부족으로 처리할 수 없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했을 때 좌절감, 분노,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만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도전에 대처하고 탄력성을 구축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어려움과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을 거쳐 갈등을 겪어내어 다양한 가치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이 제공하는 다양한 경험에 자신을 노출함으로써 우리는 더 강해지고 적응력이 향상되며 어떤 도전이 닥치더라도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긍정적인 삶을 사는 것은 많은 이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전, 좌절, 부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며 인생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탐색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탄력성을 개발하는 것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을 염두에 두되 삶의 현실에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삶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대처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