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의 차이(6): 금성어와 화성어

치열한 갈등 끝에 지구어를 쓰는 지구인이 되는 부부

금성어를 쓰는 남편과 화성어를 쓰는 아내

결혼이란 금성에서 온 남성과 화성에서 온 여성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되어서도 지구어를 몰라 여전히 금성어와 화성어를 사용하는 부부가 많다.

그리하여 나이가 80이 된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도무지 여자는 이해가 안 돼요. 여자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요. 여자를 알기란 너무 어려워요”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절대 저절로 읽히지 않는 존재다.

아내는 10년, 20년, 삶으로 겪어 가면서 남편이 누구인가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대개 여성은 남성을 긍정적으로 알아가기보다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부정적인 면을 겪으면서 알아간다.

또 아내는 남편의 한계를 알게 되고,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체념을 해 가면서 남편을 알아가는 것이다.

30년, 40년, 50년 살았다고 해서 남편은 아내를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평화롭게 잘 살아온 부부일수록 남편은 아내를 잘 알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공간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존재이다.


그런데 만일 40년 동안 살다 보니 아내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내의 페르소나(현모양처, 모성성, 히스테리) 측면을 이해한 것일 뿐, 아내의 여성성을 이해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여성성은 부부간에 오랜 세월 치열하게 부딪히고 모난 것이 깎여지고, 파인 것이 메워지면서 발견되는 것이지, 절대로 평화로운 부부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늘 잉꼬부부로 사는 부부는, 서로 갈등을 노출시키지 않고 나이스하게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였을 뿐이다.

이런 부부일수록 서로 페르소나를 맞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대부분 여자들은 이해한다.

화성어를 쓰는 아내가 남편의 금성어를 이해하게 되어서 금성어로 서로 대화가 가능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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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내의 여성 됨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남편이 아는 아내의 모습은 여성성의 모습이 아니라 모성적 모습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만일 아내가 남편과 가족을 위하여 평생 희생적으로 살아왔고, 별 감정 표현 없이, 그리고 별 탈 없이 남편을 잘 섬기고 돌봐 왔다면, 그것은 아내가 자신의 여성성을 희생하고 철없는 남편을 위해 모성성을 한없이 발휘해 온 것이다.

이런 아내의 내면에는 한이 서려 있다.

남편들은 평생 아내의 모성성으로 돌봄을 잘 받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남편은 아내의 여성적인 면을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것이며, 남편 자신의 이면 인격인 여성성을 만나 본 적이 없게 되었다.

남성이 여성의 여성성을 대할 때는 마치 우주와도 같다.

여성은 자포자기 형태로나마 남성의 언어를 한계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남성은 여성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남성은 자신이 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공로가 큰지를 이해받기 원하는 처지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이나 자녀들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하기는 어렵다.

남성은 자신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자신의 인격인 줄 착각하고 있으므로 어디를 가나 사회적 위치를 가지는 만큼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남성은 자신의 이러한 사회적 지위를 가정에서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러다가 남성이 사회적 페르소나를 내려놓는 순간, 즉 은퇴하는 순간, 가족은 급격하게 어린아이가 된, 모양만 어른인 남편의 모습,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자신만 벗은 줄 모르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게 되고,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바로 이때부터 아내의 보복이 시작된다.


치유적 언어, 여성적 언어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온 예수

이러한 지경까지 이르지 않기 위해 중년기에 접어든 부부는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겪어내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여성은 모성성이 아닌 여성성, ‘지금-여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남성은 여성의 여성적 감정을 받아낼 수 있는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중년기는 노년에 다가올 가정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지옥문을 여는 시기이며 이를 위해 온 가족 간에 칼질이 시작된다.

마태복음 10장 34~35절에 예수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선언했다.

이 구절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시기가 바로 중년기이다.

중년기는 부부간의 갈등뿐 아니라, 자녀들의 부모를 향한 심리적 부친살해, 모친살해가 동시에 감행되는 시기이다.(심리적 부친살해, 모친살해는 다음에 서술하겠다)


받은 상처 되돌려주기: 남편의 철들기

중년기가 되면 아내는 먼저 신혼 초부터 억압해 온 상처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남편으로서는 아내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하여 몸서리치도록 싫다.

그러나 아내는 몸에 간직해 온 상처이기에 그냥 묻어둘 수 없어 몸에서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어 풀어내야 한다.

이것을 끄집어내지 못하면, 아내는 화병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의 미성숙했던 과거를 들추는 아내의 이야기는 끔찍한 일이지만, 자신의 미성숙함으로 칼질한 아내의 상처를 해결해 주지 않고 철드는 남편은 없다.

남자가 철이 든다는 것은 결혼 후 아내에게 준 상처를 아내로부터 되돌려 받으면서 느끼는 뼈를 깎는 아픔을 자신의 성숙 기회로 삼을 때 가능하다.



갈등 겪어 내는 부부의 성숙

남편이 이런 갈등을 겪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가 자신의 감정을 더 억압하지 않고 술술 풀어내기 시작할 때 부부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가 바로 부부관계 성숙을 위한 과제 수행이라는 결혼의 궁극적 목적을 위한 첫 관문으로 입문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아내가 그동안 축적해 둔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미사일이란 먼 거리를 겨냥해서 쏘는 장거리 폭탄이다. 포문을 연 아내는 그동안 억압해 온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온몸을 떨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비명을 지른다는 것, 고함을 친다는 것은 그만큼 부부간에 정서적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조곤조곤 이야기해서는 남편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아내는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감정의 장거리 미사일을 쏴야 목표지점에 겨우 명중하는 것이다. 미사일은 기관총으로 소총의 단발로, 공기총으로 새총으로 나중에는 딱총으로 바뀌게 된다.


금성어와 화성어

남편은 아내의 상처가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의아해한다.

왜냐하면, 아내가 언급하는 사건은 분명 남편도 기억하는 동일한 사건인데 가만히 들어보니 남편이 기억하는 내용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니, 저 여자는 왜 저렇게 기억을 하고 있지?’ 갈등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마다 사건마다 각자 너무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똑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가 바로 남편이 사용하는 금성어와 아내가 사용하는 화성어가 얼마나 다른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많은 아내가 남편과 갈등을 피하고 싸움을 걸지 않는다.

그런 아내들은 ‘내가 뭐라 해도 남편은 못 알아들을 것이다’라는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싸워내고 남편이 맞장구를 쳐 준다고 해도 이런 싸움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빠르면 15년 보통은 20년 늦으면 3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여성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불만이 많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항의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주문을 한다. ‘그 기간을 좀 앞당길 수는 없나요?’ 이런 질문에 대해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니까요.’라고 답하면 말이 쏙 들어간다.


지구어를 사용하여 지구인이 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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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기간이 길어 보이지만, 그래도 한 5년쯤 싸우다 보면 남성은 여성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이렇게 느리다. 그것도 아내가 남편과 싸워내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이야기다. 10년 지나면 남편은 이제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되고, 15년쯤 지나면 척하면 삼척이고, 후다닥 하면 아하~ 도둑놈 담 넘어가는 소리구나 하고 깨닫는다.

빨리 알아듣고 빨리 철들고 빨리 성숙의 단계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아내가 상처받았다는 말에 귀 기울이고, ‘지금-여기’의 감정에 외면하지 않고 그때그때 깨달아 갈 때 그 기간은 빨라질 수 있다.

마냥 싸우기만 하고 갈등의 기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서로가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기 위해 아내의 상처를 반드시 해결해 줘야 한다.

아내의 상처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그 상처가 남편 자신이 준 상처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둘째, 아내의 상처가 남편이 준 것이기 때문에 남편이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아내의 상처로 인한 고통과 아픔의 크기만큼 남편이 고통스럽게 겪어냄으로써 가능하다.

아내가 아픈 만큼 남편이 아파야 하고, 아내가 고통스러운 만큼 남편이 고통을 겪어내야만 아내의 상처를 가져올 수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남편은 철이 든다.

과거 자신의 미성숙함을 현재 고통과 아픔으로 되돌려 받음으로써 성숙한 남성이 되는 것이다.


부부가 이런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금성어를 사용하던 남자와 화성어를 사용하던 여자는 비로소 하나의 지구어를 사용하는 지구인이 되는 것이다.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

이런 갈등을 20년 30년 겪어 낸다고 해서 완전한 지구인이 될 수는 없다.

40~50년이 걸려야 지구인의 모양을 갖추어 간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따지는 여자들이 있다.

그런 항의를 받을 때, 내가 하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하면 불만이 쑥 들어간다.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


100세 시대의 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에는 짧은 수명 때문에 일찌감치 작업을 포기했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생활이 끝나도 여명이 길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작업이 바로 부부간 갈등 작업인 것이다.


이외수의 저서 [여자는 여자도 모른다]는 말은 이 단계에서 극복된다.

남성은 여성을 통해서 철이 들고, 여성은 남성을 통해서 자신이 여성임을 알아가게 된다.

이제 이 부부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 언어는 여성적 언어이다.

남성은 남성적 언어와 여성적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bi-lingual(두 가지 언어사용)이 되고, 여성은 진정한 여성적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이런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았던 가치와 의미는 통합이 된다.


우주적 언어, 여성적 언어


남성과 여성의 공통언어 사용, 지구인의 탄생, 가치와 의미의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결혼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성숙한 관계를 위한 시작일 뿐이다.

성숙한 아내는 남편이 철들기 원한다면 남편을 절대 이해해 줘서는 안 된다.

아내는 남편의 미성숙함과 오류에 대해 자신의 여성성, 즉 ‘here and now’의 감정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의 결혼 10~15년이 왜 힘들었는가?

남편이 크게 잘못해도 ‘그게 남자인가 보다’ 하고 이해를 해 준 결과 아내의 내면은 늘 폭탄 맞아 찢어발겨지는 상태로 오래도 참아 왔다.

중년을 지나면서 아내가 자신의 상처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참지도 억압하지도 않는 ‘지금-여기’의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아내는 ‘이게 나야’하고 주장해야 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로 철들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나중에는 고통스럽지만 ‘순간순간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고 남편의 완고함, 모순, 탐욕, 강박, 조급함, 왜곡된 분노 등 미성숙함을 깨우쳐 주니 남편으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의 강함을 주장해 오던 남성은 여성적 감정의 약함을 통합하는 작업을 통해 우주적 존재로 거듭난다.

여성 또한 여성성의 주장이 사고(思考)적 견고함으로 무장한 남성을 이겨냄으로써 자신의 여성 됨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남성이 여성을 통하지 않고는 철이 들 수 없는 것처럼, 여성 역시 남성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여성 됨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만남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된다.

그들은 금성과 화성을 통합한 지구인이 될 뿐 아니라 우주의 중심이 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여성은 남성을 통해 여성적 언어를 구사하게 되고, 남성은 여성을 통해 여성적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 언어로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도 이해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통해 여성성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 지금-여기‘의 감정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변덕스러움과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하게 마련이다.

남편은 아내가 그런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견고한 울타리를 쳐 줘야 한다.

아내의 여성적 감정은 남편의 삶을 생생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의 변덕과 실수의 국면을 맞이할 때면 예전에는 짜증으로 표현했지만, 이제는 고교동창 조영우의 충고를 늘 되뇐다.


“아내의 실수는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시게. 아내의 실수가 아무리 크다 해도

나 같은 남자하고 결혼한 실수에 비하면야….”


남편들에게 마지막 충고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를 존중해 주라.

아내가 내게 허튼짓을 다 해도 그 허튼짓은 나의 못난 상태를 헤집어 놓는 신적 행위이다.

남편에게 아내는 존경의 대상이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존중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변화되어 갈 생각을 하면 된다.

그러면 아내는 나를 최고의 남편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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