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주장한 집단 무의식의 개념은 모든 인간이 물려받은 무의식적 지식과 경험의 공유 저장소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집단 무의식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아담 이래 내 부모님까지 인류가 경험한 모든 것을 몸에 장착하여 나온다.
칸트라면, 이 집단무의식을 선험적인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집단 무의식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공유된 경험과 지식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그 안에는 인류의 집단적 지혜가 담겨 있으며 개인에게 전임자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이 방대한 집단 지식 풀에 접근함으로써 개인은 이전에 접할 수 없었던 문제 해결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접근 방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와 학문의 아이디어를 융합하고 종합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혁신과 창의성이 촉발된다.
집단 무의식은 여러 범주에 걸쳐 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아담 이래 인류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한국사람으로서 집단무의식은 단군이래 한민족이 겪어 온 모든 경험을 다 안고 태어나는 것이다.
또는 내가 최가 가문이라면, 나는 가문의 경험이 집단 무의식으로 형성되어 물려받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남자로서의 집단무의식, 여자로서의 집단무의식도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집단 무의식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건 기회를 창출하고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나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집단 무의식이 나의 새로운 위치를 깨닫게 해 줌으로써 새 힘을 얻어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에게 그런 장면이 많이 연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마적과 대결을 하는 중 힘에 부쳐 판판이 깨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경꾼들이 볼 때 '게임이 끝났다' 싶었는데, 갑자기 김두한의 상상 속에 아버지가 나타나,
"두한아 일어나라. 너는 독립군 대장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다"
라는 환상을 보면서 벌떡 일어나 싸운다.
그 순간은 처음 싸울 때와는 다른 버전의 김두한이 되어 구마적을 수월하게 이기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장면이야말로 가문의 집단 무의식, 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동시에 작동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집단 무의식의 경험이 의식으로 통합되어 잠재력이 현실로 올라와 큰 에너지를 주체에게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을 집단 무의식은 수월하게 해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우리는 집단 무의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집단 무의식을 사회에 스며드는 집단적 이상, 원형, 상징을 통해 힘을 모으는 에너지의 해일로 상상해 보자. 이 저장소가 정점에 도달하면 개인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놀라운 기회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수의 공유된 경험, 열망, 욕구가 개인 의식과 집단의식 모두를 형성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수렴되면서 발생한다.
흔히 말하는 '시너지 효과'가 바로 집단 무의식의 효과인 것이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는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red-complex가 순식간에 폭발하는 집단 무의식의 에너지의 효과이다.
특히 한국이 일본과 함께 맞붙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일본은 한국을 이기기 힘든 이유가 바로 집단 무의식이 분출하는 에너지와 동기부여에 있다.
일본과 더불어 경쟁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한국인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이 되고, 일제강점기의 독립군이 된다.
이렇게 강한 투지와 힘은 바로 오랜 역사 속에서 핍박당한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집단 무의식은 모든 인간이 물려받은 지식, 경험, 상징적 표현의 공유 저장소가 존재함을 암시하는 개념이다. 집단 무의식은 끊임없이 독특한 가능성을 창출하는 창의성과 혁신의 깊은 원천이다.
집단 무의식과의 연결을 통해 개인은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풍부한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다.
집단 무의식 안에는 집단정신에 내재된 원형, 보편적 상징 및 패턴이 있다.
이러한 원형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을 창조하기 위한 구성 요소 역할을 한다.
개인은 이러한 원형에 참여하고 탐색할 때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의 경계를 넓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집단 무의식은 개인적인 편견과 한계의 제약을 벗어나 작동하기도 한다.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 집단적 원천에 연결함으로써 개인은 주관적인 관점을 초월하고 개인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아이디어와 가능성에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솔루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독특하고 획기적인 통찰력의 문을 열어준다.
집단 무의식의 힘은 개인에게 새로운 발견과 모험을 향해 영감을 주고 안내하는 능력에 있다.
개인이 이 집단적 근원과 연결될 때, 그들은 그것을 통해 흐르는 창조적 에너지를 활용하게 된다.
이 에너지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현 상태에 도전하고, 새로운 영역을 탐험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
이러한 참여 과정을 통해 개인은 혁신의 주체가 되어 인류의 지식과 이해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한다.
따라서 집단 무의식은 개인에게 개인적인 한계를 초월하고 광범위한 집단적 지식과 통찰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집단 무의식에 참여하면 개인은 새로운 관점에 접근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기존 사고에 도전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개인은 집단 무의식의 힘을 활용하여 혁신을 촉발하고 인간 이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요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교회다.
교회 안에서는 일반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어날 수 없는 특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미국의 청교도 운동, 17세기 영국, 웨일스,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영적 각성 운동, 19세기로 이어진 영 미 부흥운동, 20세기 각 나라에서 일어난 근대 부흥 운동 등은 모두 집단 무의식이 극도로 활성화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아니, 그게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사건이고, 성령님의 역사이지 어떻게 하나님과 아무 관련 없는 집단무의식의 결과로 몰아가느냐?
이런 식으로 의아해 사는 분들을 위해,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사람들의 심리적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시면서 일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양적으로 부어 주실 때는 집단 무의식을 활용하시고, 질적으로 신앙을 분화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인간관계를 활용하신다.
동일한 현상에 대해 영적 해석과 심리학적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신앙과 사고의 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집단 무의식을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평양부흥운동을 필두로 하여 1975년도의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세계 10대 교회 안에 한국 교회가 여럿 꼽히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 교회가 집단무의식을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집단 무의식의 긍정적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한국의 교회의 성장은 국가 경제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는 면에서 더 복잡해지는 집단무의식의 차원을 상상할 수 있다.
바로 그 차원의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K-pop 문화, 삼성 중심으로 일어나는 반도체 기술혁명 등이 세계화되는 것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역이 훨씬 넓은 고조선의 역사를 소환하게 만든다.
6.25의 폐허를 딛고 70년 만에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의 강력한 집단 무의식의 힘을 가졌다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얻는 과정에서 집단무의식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한 한국 교회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 교회는 다른 어떤 나라의 교회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집단무의식이 춤추는 곳이다.
이를 좀 부정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교회는 집단 무의식에 너무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개인의 발달이 그렇듯이 집단적인 것은 그 안에 반드시 개별화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함유하고 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