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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정신분석 심리분석가 꿈 분석가 최민식
Sep 21. 2022
여성의 잃어버린 고유한 여성성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고대 그리스는 철학, 정치, 예술 등 제반 분야에서 동시대의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발달하였지만,
여성에 대한 폄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여성의 존재론적 열등성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자는 늘 집에만 있어야 했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위치는 노예와 같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당시
여성의 지위를 보여주는 유명한 말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여자 친구들이 있으며 육체적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처녀들이,우리의 혈통을 잇고 집을 지켜주기 위해서 주부들이 있다."(출처: 부산일보 2017. 1.12)
당시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그의 [정치학]에서는
‘여성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명제를 분명히 합니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편견을 아테네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더욱이 심각했던 것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그렇다 하더라도 여성의 성을
남성의 성과 상대적 위치에 놓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무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성을 혈통을 이어주고, 육체적 쾌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위해
남녀 간의 결혼이라는 제도는 있었겠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을 교환할 수 있는
아니마를 여성들에게 투사하지 않고, 남성들에게 투사했습니다.
여자는 혈통을 유지하는 데에만 필요했을 뿐이었고, 고대 그리스 사회에 동성애가 유행했던 것이죠.
좀 충격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4대 성인으로 추앙하는 소크라테스조차도 동성애 애인이 있었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알키비아데스’였죠. 이런 것을 보면, 좀 심하게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여성분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 자체를 증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동성애적 편향성에 대한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그 사회 안에서 일어나니까요.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내세워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전환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를 망국으로 몰아갔지만,
[향연] 대화편 속의 소크라테스는 동성애 풍습에 종말을 고하는 발언들을 쏟아냅니다.
그것은 아테네의 정치 및 교육 체계를 위협하는 것이라 ‘젊은이들을 미혹한다’는 죄명을 씌워 독배를 마시게 하죠.
이 사건으로 고대 그리스는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 지역에 있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거론할 때,
근친상간이나 이성 간의 성적 사건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동성애 사건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동일 저자가 쓴 [로마서]에 동성애를 비판하죠. 그것은 로마에 동성애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플라톤의 [향연]은 동성애가 정상적인 성적 기호였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어
에로스를 남녀 간에 정착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과 비교해 보면 의식 수준은 얼마나 향상되어 있을까요?
그때와 지금은 분명하게 다른 교육 수준의 차이도 있고,
20세기를 넘어가면서 여성들의 정치적, 사회적 및 경제적 지위가 많이 향상되어 왔습니다.
21세기를 넘어온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이미 ‘여자의 세계’가 되었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가부장적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계층 저변에는 여성들의 파워가 많이 강해졌지만,
천정은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유리천장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지금은 과거의 고태적인 가부장 사회의 분위기에서 많이 벗어났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지위에 대한 변화가 불과 30~40년 남짓한 사이에 크게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한 마디에 온 가족이 추풍낙엽처럼 벌벌 떨었죠.
춥고 배고프던 시절, 겨울에 잠이라도 한번 실컷 잘 수 있다면 그것이 하루 중에 누릴 수 있는 분복(分福)이었는데,
아침 7시가 되면 아버지의 한 마디 호령에 모두들 후다닥 하고 일어났죠.
그리고 재빨리 이불을 개고 온 식구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부지런을 떨게 되죠.
그런데 요즘은 가정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답니다.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아버지가 아이들 이불 속에 들어가 같이 누워서 조용히 협박을 합니다.
“지금 안 일어나면 엄마한테 혼난다, 너~!” 여성적 위치에 대한 가정 분위기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 변화까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성들의 자기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 온, 여성 자신의 여성적 존재에 대한
모멸감, 자기 의심, 자기혐오, 무력감, 남성적 세계에 대한 공포감 등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여성은 왜 여전히 이런 것으로 고통스러워할까요?
그것은 바로 엄마 자신의 마음이요, 딸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물려받기 때문이죠.
이런 마음을 물려받은 어린 딸이 남자들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자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매일매일 자기 안에 있는
악마와의 전쟁을 치른 결과라는 것을 남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몸에 배어있는 자기모멸의 존재론을 물려받은 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자신의 신체를 히스테리화 하는 방향으로 삶을 선택했습니다.
남자와 대등하게 성적 환상을 가지고 맞서다가는 남자의 성적 환상을 공격적으로 자극할 뿐,
자체적으로 방어능력까지 겸비할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 성적 존재임을 잊어버려야만 했습니다.
남자들의 성적 시선에 반응하지 않는 형태로 방어기제를 세워나감으로써 자신의 여성성을 외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성으로서 나르시시즘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자들의 신체는 히스테리화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들이 안전하게 생존하는 방식으로 오래전부터 굳어져 온 통상적인 방식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게 나야’ 하며 색깔이 분명한 여성성은 억압되어 버립니다.
여성이 여성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남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전형적인 여자의 이미지이죠.
모린 머독은 [여성 영웅의 탄생]에서 “여성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아빠의 귀여운 딸’은 창가에 앉아 유리창에 코를 박은 채 어둠 속을 응시하며 아빠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여성들은 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으로 길들여진다. 남편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대부분 동화에서 여주인공은 기다림의 상태, 무의식의 상태에서 꺼내어진다.
그리고 즉시 더 멋진 상태로 극적으로 탈바꿈한다. 이 마법 같은 변화의 촉매는 대개 남성이다.”
남자를 기다리는 여성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억압된 여성성을 드러내어 줄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남자를 만날 때 콩깍지가 씌는 것이죠.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런 꿈은 결혼과 동시에 산산조각 나버리고, 자신의 여성성 대신에
남편이 투사하는 여성성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에로스는 강해지고, 치유받고, 장난꾸러기 소년에서 프시케의 배우자로서 자격을 갖춘 성인 남성으로 변화하는 여성의 아니무스이다.
이 모든 것은 프시케의 노고와 에로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그는 그녀를 구원한다.”
([She])
신화에서처럼 에로스가 프시케를 즉각적으로 구원해 내는 과정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에로스가 프시케를 구원하는 과정은 길고도 긴 세월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도 여성이 남편의 여성성 신화를 벗겨냄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여성의 히스테리 신화를 벗어야 가능한 것이고요.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요? 한 마디로 요약하기 힘든 말이기에 앞으로 나올 글들을 유심히 살피시기 바랍니다.
부부 간의 사랑과 갈등을 건강하게 겪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매우 힘든 과정이라는 점만 미리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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