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랑하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

loving vs being in love

사랑하는 것(loving)과 사랑에 빠지는 것(being in love)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자기 변화와 인격 발달 그리고 성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은 교육제도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피교육자의 신분을 벗어나면서 더 이상 성숙이나 인격발달을 이룩해 가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랑의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변화와 인격발달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런 전제를 배제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저 우연하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


‘사랑에 빠지는 것(fall in love)’은 로맨틱 러브를 말하는 것이겠죠. 

안전한 틀 안에서 위태위태한 로맨틱 러브를 유지하기 위해 결혼을 하게 될 겁니다. 

로맨틱 러브는 3년의 유효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3년이 지나면, 좀 좋게 말하면 ‘권태기’, 적나라하게 말하면 ‘환멸기’가 찾아옵니다. 

그때는 ‘내가 결혼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설공주와 왕자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신데렐라와 왕자님은 결혼하여 잘 살았답니다’라고 동화책들은 끝나죠. 

누가 알아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 왕자들도 여주인공들도 3년 후에는 

로맨틱 러브, fall in love가 끝나면서 환멸의 시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안 봐도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확인이 됩니다.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너 왕비의 결혼이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겁니다. 

연애할 때 상대방의 가장 매력 포인트가 결혼 후에는 갈등 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결혼에서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합니다. 

갈등이 시작되면, 연애할 때 애착 포인트가 바로 환멸 포인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매력이 갈등으로, 애착이 환멸로 바뀌는 순간이 오면, 

서로 간의 태도는 180도 달라지게 되면서 결혼의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탁월한 유머 감각에 반해서 결혼했는데, 환멸기가 오면 그 유머 감각은 아재 개그로 전락하면서 

아내는 남편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포인트가 됩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여자가 무슨 음식을 해줘도 잘 먹겠거니 해서 좋았습니다. 

환멸기가 오니까, 남편이 음식을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잘 치우지 못하는 남편이 결혼 전에는 아내의 깔끔한 성격이 매력적이었으나, 

환멸기가 오면서 강박적 청결에 숨이 막힌다 하소연합니다. 

왜 결혼은 이렇게 진행되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내 결혼 생활만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결혼이 이렇습니다. 그렇지 않은 결혼이 오히려 이상한 겁니다. 

답은 이렇습니다. 사랑에 빠질 때 받은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체적 사랑 : 사랑하기(loving)


사랑에 빠지는 것(fall in love)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loving)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해 지기를 바라는 사람만이 ‘사랑하기’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기’는 초월적 사랑이라면 ‘사랑하기’는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체적으로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또 다른 로맨틱 러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배우자와 그런 꿈을 꾸지 않죠. 이런 사람은 절대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fall in love에서 경험했던 환상을 가지고 이제 현실에서 보다 온전한 사랑을 만들어가야 하는 의무를 져야 합니다. 

연애 시절에는 상대방의 어느 한 부분 때문에 사랑했다면, 

환멸 기가 오면,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평범함과 실패 그리고 그 사람이 지닌 장엄함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투사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투사의 안개를 꿰뚫으면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다. 

문제는 투사의 안개에 가려 상대의 깊이와 고귀함을 뚜렷이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She])

‘fall in love’ 때는 매력 포인트 때문에 사랑했다면, loving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일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사랑을 거두어들이고, 주체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의 일상 속에서 거룩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그 사람 자체를 아는 것이다.”([She]) 

유일한 한 사람! 

유아기 때는 엄마가 그 유일한 한 사람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유일한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치를 발견해 가는 일은 진정한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가져옵니다([She]에서 인용) 

내게 유일한 한 사람을 알게 됨으로써 그를 통해 나를 보게 되고, 

그와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세계를 보고, 우주를 보며, 신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기’는 “자신이 특별히 디자인하고 만들어 놓은 이미지나 역할을 상대방이 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것은 상대의 고유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이렇게 변화될 때 “지속적이고 오랫동안 유효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She])

시인들이 지어 낸 사랑에 관한 환상들은 매우 아름답지만 ‘사랑에 빠진’, 초월적인 사랑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로맨틱 러브가 끝나면 사랑에 관한 시인들의 화려한 글의 매력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 대상에 대한 사랑, 그 대상의 고유함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 여성의 고유한 여성성, 그 남성의 고유한 남성성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인격으로 삼는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