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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쇼크(5): 누구에게나 모성원형은 있다

모성성과 모성원형

모성성과 모성원형


"모성이란, 모성원형에 관련되는 보편적인 인류의 모성적 심리 또는 모성 본능, 그 산출성, 인내성, 포용력, 양육과 보호의 본능, 예시적 기능, 기다림, 영원성, 그리고 그 뜨거운 파괴적인 애정, 마취성, 질식할 듯한 독점욕, 지배욕 등, 모든 긍정적 부정적 특징을 다 지니고 있다."([분석심리학], 이부영 저, 일조각, 232)


나는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상담현장에서 여러 이론들을 적용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칼융의 분석심리학과 대상관계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정통한 칼융 주의자들은 심리치료 이론으로 오로지 칼융의 분석심리학만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매우 편협한 생각이다. 

분석심리학만 믿고 분석을 진행하다가 수많은 지점에서 치료의 맹점이 발생한다.

그 맹점을 보게 만드는 이론이 바로 대상관계이론이다. 


모성성과 모성원형의 관계가 바로 그러하다. 

상담자가 주로 0~3세의 유아 심리를 다루는 대상관계이론 공부만 준비하고 있으면, 이 시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성장과정에서나 성인이 되어서나 반드시 증상을 일으킬 것이라고 쉽게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천으로 만든 어미 원숭이와 철사로 만든 어미 원숭이 실험으로 유명한 해리 할로우(Hary Halow)는 


  "마음에 상처받았다 해서 성장한 후에도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25%의 취약한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마더쇼크], 151쪽)


라고 말했다고 한다.


할로우가 말한 25%는 심리적 상황이 매우 취약한 아이들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75%는 왜 괜찮을 수가 있는가?


이것은 칼융의 <모성원형> 개념을 통해서 보완되어야 한다. 


 모성원형이란?


아기는 태어나면서 수많은 원형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림자 원형, 아니마(아니무스) 원형, 모성원형, 부성원형, 신성한 원형, 아기폐하 원형, 트릭스터(광대) 원형 등등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원형이라는 것은 유아에게 자아가 발달해 가면서 관계 안에서 분화되어 가야 한다.

원형은 삶에서 관계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실현되지 않으면 그 원형은 분화되지 않은 형태, 또는 개별화되지 못한 형태가 되면서 집단적인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원형이 집단적 상태로 머물게 되면 어느 순간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성경 속에 나오는 거라사 광인은 쇠사슬로도 그의 광기를 묶어두지 못했다.

모든 원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형이 삶으로 분화되지 않으면 누미노줌적인 신성한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모성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아이는 마땅히 받아야 할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 못해 결핍이나 상처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일반적인 심리학이나 대상관계이론에서 보면 그 아이는 증상을 가지게 되면서 크게 고통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결핍이나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모두 증상을 앓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할로우가 말했듯이, 그런 아이 중 75%가 정서적으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75%의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분석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하는 모성원형의 덕분일 수 있다.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정상적인 돌봄을 받지 못할 때, 아이 안에 있는 모성원형을 동원하게 된다.

 모성원형은 스스로를 돌보게 되는 기능을 수행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자라는 특징을 가지지만, 아동기를 1960년대~70년대 또는 그 이전 시대를 보낸 사람은 부모로부터 사랑이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자라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 자신이 바로 거기에 속한 사람이다.

나도 유아기에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상처를 받았고 또 결핍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정신증에 시달린 적이 없다.

알고 보니, 내 안에 있는 모성원형이 어머니도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그때그때 위기 상황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보호해 준 적이 많았다.


  어느 시점에는 모성원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성원형은 생물학적 모성을 넘어 양육, 자비, 보호 등 모성성의 광범위한 측면을 포괄한다. 

모성원형은 대인관계를 넘어 감정, 자연, 심지어 영성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성 보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강력한 템플릿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모성원형은 우리의 결핍이나 상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고 돌보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삶으로 분화되지 못한 원형의 작용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모성원형을 잘 사용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성원형을 확 놓아버리고 자아가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때만 해도 학교에서 날고 기던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올라가면서 그(녀)의 탁월함이 무디어져서 평범해져 버리는 경우의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성적으로 따지면, 늘 전교 10등 내외를 오랫동안 잘 유지해 오던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시점에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아이는 그때부터 아무리 애를 써도 예전과 같지 않은 성적기록을 남기면서 스스로 실망하게 된다.


 반전을 일으키는 자녀


이런 아이는 인생에서 중요한 계기를 맞이한 것이며,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런 자녀는 그동안 부모의 욕망에 자신의 사이클이 맞춰져서 부모가 원하는 모양을 갖춰 왔다.

그는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놔버리고 자기 안에 있는 모성원형을 끄집어내어 원형의 신성한 힘을 사용해 온 것이다.

 

부모가 투사하는 대로 자신을 맞춰가기에는 자기 안에 있는 모성원형을 사용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 모성원형이 작동하는 원리는 사람이 위기상황에 처할 때 자신을 돌보는 기능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계속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 사용하는 한 사용한계를 넘어서면 누미노제적인 힘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데에 사용된다


모성원형은 때로는 천재성이나 탁월한 재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진짜 천재와는 구별되는 여러 지점들이 있다. 

모성원형으로 천재인 경우, 대개 그의 재능은 '계산력'과 '기억력'으로 나타난다

계산과 기억력이라면 공부하는 데에 딱 필요한 것이니, 공부 잘하는 형태로 모성원형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원형은 절대 창의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모성원형은 정체성을 세워나가는 청소년기에 많이 무너진다. 

또는 계산력과 기억력으로 '천재', '신동' 칭호를 받다가 창조성이나 창의성을 요하는 시점이 되면 원형의 한계를 드러내며 삶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신유근'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써야 했지만, 창의성의 부족으로 표절을 수차례 하다가 들통이 나면서 그 학계에서는 영구제명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초등에서 중등, 또는 중등에서 고등으로, 상급학교에 진학사면서 급작스럽게 성적이 떨어져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과 달리 성적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아이는 이제야 자신의 존재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그동안 잘해 냈던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형의 힘으로 해낸 것이었다.

이제 유효기간이 지난 원형은 그 자녀의 존재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


그런 자녀가 아무리 해도 성적을 쉽게 올릴 수 없지만, 그런 노력이나 뒤쳐진 성적이야 말로 진정한 자기 것이다

이제 그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잘하는, 그런 신화적인 세계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다.

좀 부족해 보여도 이제 내가 해 내는 만큼 그것이 내 것이 되고, 나의 고유한 존재를 채워나가는 것이기에 삶을 분화시켜 나가야 만 삶의 가치를 느끼는 본인에게는 그런 과정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잘하는 공부, 조금만 신경 써도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절대 내 인생에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좋은 조건의 어머니 양육


부모가 나를 잘 돌보지 못할 때는 모성원형이 나를 돕지만, 모성원형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나면, 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애쓰는 만큼 그 노력이 내 존재에 즐거움을 주며 내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소가 된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양육 환경은 유아기부터 충분히 좋은 어머니를 만나 좋은 돌봄과 질 높은 모성성의 보호를 받으며 높은 자아감과 타자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양육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평생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 능력을 발달 시킬 수 있다.  


대상관계 이론의 틀에서 보면, 자라는 아이에게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가 필요하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는 '너무 좋은 어머니'가 아니다.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때와 상황에 맞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고, 자라는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줄 수 있는 어머니이다

그런 어머니는 자녀에게 일관된 양육, 보호, 미러링을 제공하며 자신의 감정과 흥분을 스스로 진정시킬 수 있는 양가적 가치를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아이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지 않고 아이로 하여금 자기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열어 주는 어머니이다. 

양육하는 어머니가 부정적 경험이 너무 많거나 정서적 조율능력이 부족하면 아이에게 불안, 회피, 무질서한 애착 스타일을 형성하게 만들어 아이로 하여금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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