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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쇼크(4): 모성은 모든 어머니의 본성이다

일차적 모성몰두



일차적 모성몰두


갓난아기는 온종일 거의 잠만 잔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아기가 울면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 건지 젖을 달라고 우는 건지, 어머니는 딱 알아챈다. 

깊은 밤 아버지는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고 자고 있어도 아기가 조금만 움직여도 엄마는 자동으로 깬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기가 정서적으로 하나의 몸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기의 이러한 정서적 연결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아기를 품은 어머니는 아기를 낳기 약 2~3주 전부터 비현실적인 상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엄마일수록 비현실성의 정도는 빠르게 진행한다. 

예전에 없던 민감성이 두드러져 성격이 날카로워진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면, 현실에서 유능하던 직무도 빨리 놓아 버리고 싶어 진다. 

사고력이 급격하게 퇴보하면서 현실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감정적 반응이 많아진다. 

어머니의 관심 초점이 곧 태어날 아기를 향해 점점 ‘미친 상태’처럼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올 때쯤 되면 산모는 외부상황을 차단하고 아기에게만 집중할 준비를 한다.


  아기는 엄마의 존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어머니의 존재를 흡수하는 블랙홀과도 같고, 어머니는 그 블랙홀을 3주 전부터 이미 감지해 왔다. 

두 사람은 유아 안에서 존재가 겹치면서 ‘융합’ 된다. 

이 ‘융합’ 상태에서는 아기가 아무 말을 못 해도 이미 엄마는 알고 있다. 

아기는 어머니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많은 신호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울음, 미소, 시무룩한 표정, 생생한 몸짓 등으로 어머니에게 지시한다. 

당분간 어머니는 자신의 주체는 아기에게 내어준다. 

어머니는 아기의 생명이 요구하는 신호에 맞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상태를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일차적 모성 몰두’라 불렀다. 


 우리나라의 일차적 모성몰두


70~80년 전 위니캇이 말한 ‘일차적 모성 몰두’라는 용어를 언급하기 전에 우리의 옛 부모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서양력이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나라 산모들은 ‘삼칠일’ 또는 ‘세 이레’라 하여, 3 X 7 =21일 동안 집 앞에 금줄을 쳐서 이웃의 출입을 금지했고 심지어 가족까지도 출입을 삼갔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삼칠일이 지나야 시아버지도 아기를 첫 대면을 할 수 있다. 

금줄이 해제되면 일가친척 마을 사람들은 실이나 돈을 가져와 아기를 대면하였으며, 외가에서는 할머니가 찰떡 · 시루떡 · 누비포대기 · 핫저고리를 해오기도 한다([한국 민속대관 1]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참조) 

삼칠일 동안 어머니는 아기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아기는 어머니와 아버지만 만나게 되고, 시기심에 차 있는 시어머니조차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 

삼칠일은 매우 짧긴 하지만 한국식의 ‘일차적 모성 몰두’ 기간이다. 


위니캇이 말하는 ‘일차적 모성 몰두’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지속한다. 

산모가 고통스럽게 겪는 산통을 아기를 낳고 나면 쉽게 잊어버리듯이 ‘일차적 모성 몰두’의 상태 역시 어머니들은 자신의 그런 상태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일차적 모성 몰두’는 특별한 어머니들이 아닌 ‘보통의 헌신적인 어머니’의 통상적인 경험이다. 

산모들은 이런 상태에 돌입함으로써 아기의 입장을 느끼게 되고, 아기의 욕구에 부응해 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보통 어머니의 통상적 경험이라 할지라도 어머니의 “일차적 모성 몰두 능력을 인식하는 것은 고도로 정교한 능력에 속하는 것”([소아의학을 거쳐 정신분석학으로], 위니캇, 576)이다. 

그렇다면 이 기간에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머니의 진정한 능력은 아기가 ’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충분하게 머물 수 있는 안전한 베이스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서 판가름 난다. (이상, 졸저, [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에서 인용)


  일차적 모성몰두가 불가능한 어머니


일차적 모성몰두가 왜 모든 산모들의 것이 될 수 없는가?

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 산모가 유아기에 자기 어머니 관계에서 일차적 모성몰두를 받지 못한 것이다.

산모가 유아기에 어머니로부터 일차적 모성몰두를 경험했다면 아기를 향한 몰두 능력이 몸에 이미 배어 있을 것이다. 

몸에 배어있는 몰두는 자신의 아기에게 자연스럽게 실행된다. 


모성을 발휘하는 것이 낯설고 내 아이 같지 않음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가 나를 향해 가졌던 마인드가 바로 그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어머니가 아이를 출산하였을 때 아이가 낯설고, 예뻐할 수 없고, 쉽게 만질 수도 없게 되면서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머니가 내게 한 것을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 이인증 현상이다.

이인증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증상을 말한다.

마음은 좋은 어머니이고 싶고, 아기에게 살갑게 다가가고 싶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몸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어머니를 이인증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 

이인증 증상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이인증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몸과 마음의 분리조차도 자신이 유아기에 어머니의 품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내가 받은 적이 없는 사랑을 아기에게 줄 때   


내가 아이를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이인증 현상과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어머니가 있다.

이런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내가 비록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나는 내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러지 않을 거야. 내가 나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 이상의 사랑을 줄 거야."


이런 어머니가 가끔 있다.

그래서 모성이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본다. 

그 어머니는 매우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지만, 그런 사랑의 한계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몇 명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어머니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중 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받지 못한 사랑을 주다가, 어느 순간 아기를 확 밟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다른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아기를 그네를 태우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밀어내고자 아기를 세게 떠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고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 자신이 끔짝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 그네를 없애 버렸어요."


이런 어머니는 왜 이런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서 넘치는 사랑으로 아기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위의 어머니들은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의지적으로 끄집어내어서 주려다 보니까, 내 안에 있는, 그리 많지도 않은 사랑을 긁어서 다 퍼주고 나니까 어느 순간 자신도 억울해진다.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얘를 이렇게 사랑을 줘야 하지?"


이런 의문과 함께 어머니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억울함과 어머니에 대한 원한 감정을 아기에게 확 퍼부어 버리고 싶은 현상에 직면하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보복을 아기에게 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 것이다.


이런 어머니는 자신의 사랑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그녀는 자기가 받은 사랑의 한계를 알고 줘야 할 사랑의 한계도 알아야 한다. 


이런 위기에 빠진 어머니는 남편과 그러한 위기에 대한 대화를 충분히 나눈 후에 남편으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녀는 남편이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고갈된 자기애를 조금씩 채워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주고받음의 프로세스, 그리고 자기 사랑의 채워짐과 비워짐의 원리와 그 한계를 알고 자녀를 돌봐야 산모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연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기 아이에 대해 줄 수 있는 사랑의 한계를 알고, 남편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아기에게 주는 사랑의 용량을 조금씩 늘려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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