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플라톤의 철학과 위니캇의 정신분석이 만나니까 어머니의 품이 아기를 우주적 존재가 지구적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되는군요. 이런 해석을 듣게 되니까, 천체학자 이석영 교수가 ‘아기가 태어날 때 몸을 구성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무거운 원소들이 태양계 탄생 이전의 한 초신성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실제로 우리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물의 주원료인 수소는 거의 전부가 빅뱅 우주 초기 3분간 만들어졌다. 우리 몸이야말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인 것이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여러분의 우주는 수백억 광년 크기에 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이석영, 서울: 사이언스 북스, 19)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 교수 강의 중 이 부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플라톤과 위니캇이 만난 새로운 해석을 들으니 그 강의가 보다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분석가 : 만일 우리의 몸이 태초의 3분 안에 만들어진 원소들로 구성되었다면 우리 인간의 몸은 각자의 나이보다 훨씬 오래 된 136억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탐구자 : 이렇게 보면 우리 인간의 존재는 그냥 우연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어 보입니다. 플라톤의 철학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몸은 공간적으로 전 우주로 연결되어 있고, 천체학적으로 보면, 우리 몸은 시간적으로 태초와 연결된 존재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정도면 우리도 초월적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철학자 : 이해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초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초월적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적 측면에서 우리의 몸이 전 우주의 축소판으로서 소우주가 되고, 시간적 측면에서 영원의 그림자를 우리 몸이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나’를 넘어서 시간적 공간적 초월성을 함유하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하나님이 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데카르트가 나의 사고 안에 가두어 놓은 ‘신체 기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17세기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프랙탈 우주론’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철학자란, 별의 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해보는 사람으로 알고 그의 상상력을 비웃었지만, 오늘날 현대 천체 물리학이 이를 하나씩 하나씩 증명해 가고 있습니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며, 우주 안의 모든 별들과 생명들은 우주의 한 요소로서 생성소멸을 거듭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세포가 6개월이면 죽고 다시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죠. 2006년 8월 뉴욕타임즈에 실린 두 개의 사진, 즉 인간의 뇌의 시냅스 연결망을 찍은 사진과 은하단을 찍은 사진은 거의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한한 생명의 한 조각이 무한한 우주를 담고 있는 것이죠.
신학자 : 지금 말씀하신 철학자의 설명은 모두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우주적 존재, 초월적 존재로 살고자 한다면 큰 무리가 따릅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거대한 우주 안에 보잘 것 없는 하나의 미물에 불과함은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미물에 불과한 존재가 거대하게 살려고 하다가 연예인들처럼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존재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 자아를 계속 팽창시켜 나가면 니체의 말년처럼 정신분열증으로 죽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존재의 위대함은 자아 팽창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내가 한갓 미물에 불과함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의 위대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죄인임을 알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이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유한함과 무한함이 만나는 데에는 이런 역설적인 문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문법을 터득하는 방법은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전우주적인 문법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통해 일어났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전능하심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영혼구원의 원리가 보잘 것 없는 십자가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사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권세는 사망권세입니다. 예수는 사망권세를 이기기 위해 그것보다 더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대항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권세에 순응하여 죽으심으로, 가장 연약한 방식으로 강력한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사망을 이기는 부활로 나타남으로써 역설적인 문법을 완성하신 것이고요. 가장 강한 것은 가장 약한 것으로 이기는 법입니다.
분석가 ; 그러한 역설은 기독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공을 해야 하는데, 세공을 하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를 깍아 내야 합니다. 다이아몬드를 깍아내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것이어야 할 텐데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단단한 다이아몬드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가장 부드러운 물입니다. 이와 같은 문법이 우리 마음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신학자께서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라는 말. 우리가 ‘자기’를 논하면서 알아야 할 것은, 내 자신을 깊이 알아감으로써 이웃을 알고 세계를 알고, 우주를 알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욕망이 함께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변화는 세계를 움직이고, 우주에 거대한 변수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상처는 나만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처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각종 증상은 우주적 증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내적 실재는 나만의 것으로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내 마음을 치유하고 나의 자기를 바로 세워나가는 것은 세계를 치유하고, 우주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나의 내적 실재는 곧 우주적 실재이자, 곧 내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철학자 : 오랫동안 철학은 거대담론만 거론해 왔고, 그에 대한 반발로 최근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여 거대담론을 피라미드에 묻어 버리고 미시담론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 하나님, 정신, 종교, 문학, 철학, 역사 등은 갈수록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브런치 등을 통해 개인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미시담론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일 뿐 아니라, 이 둘 사이에도 역설적인 문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역설적 문법은 삶의 일상 속에서 적용되어야 할 소중한 것입니다.
탐구자 :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데 왜 다시 내재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요?
분석가 : 자기가 ‘자체성’에서 자기 동일성으로 분화되면서 개별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듯이, 내 안에 초월적 존재는 나의 존재 크기에 맞게 나의 인격을 유형화하면서 나타납니다. 은유적 표현을 빌자면, 아기가 태어나면서 몸에 136억년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담고 나왔을 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의 존재가능성까지 다 담고 세상으로 나온 것입니다. 미래의 존재 가능성은 어머니에게 맡겨 두었다가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미래적 가능성을 ‘잠재력’의 형태로 되돌려 받게 됩니다. 신학에서는 초월적 존재의 흔적으로 ‘영혼’을 언급하겠지만, 정신분석학자인 위니캇은 ‘영혼’ 대신 내적세계의 정신적 기제로서 ‘내적 실재’를 언급합니다.
탐구자 : 그러니까, 플라톤이 말하는 자기 동일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정신분석적으로 말하자면, 유아의 ‘자기’가 내적 실재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되는군요. 철학보다는 정신분석적 기술(記述)에서 자기(self)의 보다 구체적인 발달과정을 볼 수 있겠군요.
분석가 : 초기 발달의 심리 과정을 보게 되면, 보다 구체적이라 할 수 있죠. 위니캇에 의하면 내적 실재는 유아의 전능 환상에서부터 나오는데, 그것은 유아가 생의 초기에 신체에 대한 느낌이나 신체의 기능 등에 대한 상상적 구성물(configuration)로 이루어집니다. 초기의 상상적 구성물은 너무 원초적이어서 의식에 영향을 못 미치지만, 어머니를 통해 받는 여러 형태의 감각을 열어가면서, 구성물은 상상의 차원에서 신경계통의 발달과 더불어 차츰 경험의 차원으로, 나중에는 무의식의 차원으로 확산되면서 내적 세계가 출현하게 됩니다.
탐구자 : 내적 세계의 출현은 심리학적 용어이고 신경계통의 발달은 생물학적 용어인데 두 용어가 결합하는 경우가 발생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군요.
분석가 : 카이스트대학의 뇌과학자 김대식 박사는 ‘신경(神經)’을 문자 그대로 우리 몸 안에 있는 ‘신의 통로’ 라고 말합니다. 유튜브(영상제목: [서프라이즈] 뇌가 없는데 IQ가 126)를 보니까, 존 로버라는 의사는 영국의 명문대 셰필드 대학교에 다니는 마크라는 학생이 너무 머리가 아파서 뇌CT 사진을 찍어 보니까 사진 상에 뇌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뇌척수액으로 가득 차 있어 뇌수종으로 머리가 아팠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크는 뇌가 없이도 IQ를 126으로, 정상인의 평균 IQ보다 높은 지수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상하게 여긴 로버박사는 그 동안의 뇌수종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뇌CT촬영을 해 본 결과 그 중에 60명의 환자가 무뇌(無腦)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60명의 평균 IQ가 100이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로버박사의 연구 결과는 1982년 Science 지에 “당신의 뇌는 꼭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실렸다고 합니다.
탐구자 : 일반적으로 약간의 뇌 손상으로도 평생 동안 고통 받게 되는데, 이런 결과는 충격적이라 할 수 있겠군요.
분석가 : 이에 대해 캐나다의 신경과학자 존 앤드류 아머가 ‘각종 장기의 신경세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억저장 기능이 작은 뇌의 기능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위니캇이 말했듯이, 내적 세계 발달이 신경 계통 발달과 연결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내적 세계의 발달은 먼저 감각의 발달에서 시작되지만, 감각의 발달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입니다. 유아기 때 어머니의 공감 받은 감정은 감각의 발달과 직결된다는 말입니다. 자체성에서 자기 동일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공감적 감정의 영향으로 개별 존재로 구별되는 주체는 피부를 경계로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구별하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공통의 감각, 공통의 감정, 공통의 인식을 가지게 되는 부분은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위니캇은 “자기 몸을 둘러싼 피부를 한계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안과 밖을 가지는 존재의 단계에 이른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내적 실재, 즉 풍부할 수 있고, 빈곤할 수도 있으며, 평화로울 수도 있고, 전쟁의 상태에 있을 수도 있는 내적 세계가 있다”(A 47)는 말을 남겼습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내적 세계와 자기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분석가 : 내적 세계는 각자의 것이지만, 자기는 각자의 것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죠. 자기는 너와 나, 나와 그(들) 뿐 아니라 전 우주와 하나님과도 연결되어 있죠. 각자의 내적 세계는 자기라는 엄청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