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기(3): 자발적 몸짓

참자기의 발현은 자발적 몸짓으로


탐구자 : 자기가 지구 코드화가 되는 생애의 최초의 단계에서는 아기의 몸은 어떤 상태로 보면 될까요?


분석가 : 위니캇은 그 단계에서 아기의 몸은 “자발적 몸짓과 개인의 창조적 생각이 나오는 자리”([성장과정과 촉진적 환경] 211 )의 상태로 규정합니다. 위니캇는 자신의 이론의 핵심을 “유아의 자발적인 몸짓이나 감각적인 환각에 대해 어머니가 성공적으로 대응해 주는 일 없이는 참자기가 살아 있을 수 없다”(같은 책, 210)는 데에 두고 있습니다. 위니캇은 참자기의 개념을 자발적 몸짓과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탐구자 : '자기' 앞에 왜 ‘참’자가 붙는 것일까요? 참기름, 진짜 참기름... 뭐 이런 건가요?


분석가 : 그것은 위니캇이 보편적인 자기 개념과 구별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누구나 보편적 자기를 개별적 자기로 가질 수 있죠. 그것은 개별적 자기는 참자기일 수도 거짓자기일 수도 있기 때문인데, 참자기는 개인적인 자기로 국한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기는 가장 자기다울 때가 ‘참자기’인 셈이죠.

위니캇은 개인적 자기는 몸에 한정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자발적인 몸짓’에서 참자기의 참된 모습을 찾고자 했습니다. 위니캇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참자기를 “신체 조직의 살아있음과 심장활동 및 호흡을 포함하는 신체기능의 작용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참자기로 산다는 것은 몸이 건강한 정신성을 가지고 현실 원칙대로 유능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몸이 건강한 정신성을 갖추지 못하면, 몸 안에서 비현실적인 환각이 작동하고, 그 환각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환각이 몸을 끌고 가게 되고, 그 환각이 밤에는 악몽까지 꾸게 만듭니다.


탐구자 : 참자기가 자발적 몸짓을 발현하는 데에는 뭔가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 참자기가 몸을 자발적으로 만든 후에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분석가 : 위니캇은 “참자기는 복잡성을 발달시키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외적 실재와 관계를 맺는다. 그때에야 비로소 유아는 심리적 실재 안에 자극에 대한 대응물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외상없이 자극에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유아는 모든 자극을 밖으로 투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기가 절대적 의존기에 여성적 요소를 통해 감각적 지각형성을 충만케 함과 동시에 감정을 발달시킵니다. 이때는 어머니와 융합상태이기 때문에 어머니 존재를 통해 타자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존재를 타자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첫째는 자체성에서 자기 동일성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더 복잡한 관계 안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탐구자 : 프로이트가 복잡한 관계성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풀어가는 데, 위니캇의 관계의 복잡성은 어떤 것인가요?


분석가 : 복잡성은 오이디푸스적 관계 경험을 의미하는 것은 위니캇이나 프로이트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위니캇은 어머니와 융합함으로써 타자성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를 복잡성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복잡성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이의 3자 관계의 복잡성으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양면성, 즉 한편으로는 아기의 어머니로서, 한 남편의 아내로서 이중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아기는 그것을 무의식중에 인식해 가면서 수용하게 되는 것도 오이디푸스기 직전에 터득해야 할 복잡성의 관계입니다.


탐구자 : 아이가 외부세계와의 관계의 복잡성을 터득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기가 필요한 것이겠죠?


분석가 : 관계의 복잡성은 오이디푸스기 이후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의존기의 아기는 생체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몸 시간의 개념에 적응해 주면서 상호간에 존재연속성을 유지하는 데에 주력하게 됩니다. 상대적 의존기가 되면서 아기는 존재연속성을 시간 연속성으로 변환하게 됩니다. 아기는 자신의 생체시간을 우주적 시간, 또는 물리적 시간에 맞춰 나가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아이에게 타자성이 들어오게 되면서 아이는 자신 밖에 있는 외부적 실재와 관계를 맺는 형태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즉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외부 세계와 복잡한 관계를 맺을 준비를 하는 것이죠. 특히 상대적 의존기가 되면서 남성적 요소가 들어오게 되는데, 남성적 요소는 타자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면서, 자아 욕구와 본능적 욕구(성적 욕구)를 작동시키기 시작합니다.


탐구자 : 남성적 요소가 타자 개념을 구체화한다는 말이 좀 애매한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분석가 : 아기가 태어나면 배가 볼록하죠. 왜 그럴까요?


탐구자 : 배 속에서 복식호흡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분석가 : 맞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리비도는 주로 내장에 몰려 있습니다. 내장에 몰려 있는 리비도가 점차 내장 밖으로 확산되어 갑니다. 태어난 지 약 1년 정도가 되면 리비도는 피부까지 확장되어 갑니다. 이때는 자발적 생생함이 충만할 때입니다.. 아기가 피부를 경계로 삼게 됨으로써 ‘나’를 지킬 수 있게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나 아닌 것, 즉 나와 타자를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아의 경계를 피부로 삼게 되면서, 이제는 외부의 자극에 일방적으로 상처 받지 않고 자신의 정신적 내용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어느 정도 방어를 할 수 있게 되고 정신적 내용을 남에게 투사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절대적 의존기에 이런 과제를 수행하고 나면, 상대적 의존기에 발현되는 남성적 요소는 타자 개념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방어능력과 투사능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적절한 좌절


탐구자 : 어머니는 아기의 참자기를 위해 실패를 하면 안 되겠군요.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라면 아기를 위해 완벽하게 양육을 해야 되겠군요.


분석가 : 그건 아닙니다. 세상에 완벽한 어머니, 완전한 어머니는 없습니다. 위니캇은 완벽함이나 완전함이란 기계적인 것일 뿐, 어머니는 점진적으로 실패하는 어머니가 온전한 어머니입니다. 앞의 책에서 언급된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바로 온전한 어머니입니다.

pexels-pixabay-265987.jpg

탐구자 : 완전함과 온전함으로 말씀하시니까 어머니됨의 개념이 분명해지는 군요.


분석가 : 완벽한 어머니, 완전함을 추구하는 어머니가 있다면, 그 어머니는 아기에게는 위험한 어머니입니다. 아기의 절대적 의존기 후반부터 어머니는 아기에게 적절한 좌절을 주게 되는데, 다니엘 스턴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이러한 좌절, 또는 실패를 대신해서 아기는 자아 욕망으로 채워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이트의 욕동 삼중구조(제 2 지형학적 구조, ‘이드-자아-초자아’를 나타내는 구조)로 볼 때, 초기에 어머니의 돌봄은 원본능(id)를 만족시켜주지만, 원본능에서 느끼는 불만이 있어야 자아가 원본능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오게 되는 겁니다.


탐구자 : 어머니가 실패할 때 아기의 참자기는 깨지지는 않는 것인가요?



분석가 : 유아 초기에 어머니가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면 아기의 참자기는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잘못된 태도로 아이의 양육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크게 실패하는 것이 아닌 한, 참자기가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자기를 만들어내어서 참자기를 보호하게 만듭니다. 거짓자기는 대개 순응적이 되거나 반동적이 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월, 금 연재
이전 18화참자기(2): 우주적 존재에서 지구적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