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성과 여성성 회피
'어머니와의 동체성'이라는 용어는 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여자아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모성성을 많이 차용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어머니와 동체성으로 살아가는 여자는 자신의 어머니의 성격, 심리적 구초, 체질등과 융합될 뿐 아니라, 어머니의 콤플렉스까지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온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살아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 결과 그녀가 마땅히 찾아야 할 고유한 인격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딸은 일상에서 어머니와 상호 투사하면서 내 삶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까지 같이 살아간다.
어머니나 딸이나 각자의 고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대신 사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 삶 속에서 일종의 대리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살다 보면, 어머니와 딸이 서로 구별이 안 된다.
사고, 감정, 느낌까지도 이게 내 것인지 어머니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딸은 어머니를 따로 떼어 놓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들은 어머니와 딸 사이에 서로 존재 구분 없이 살아간다.
친구를 사귀거나 남자친구와 연애를 해도 친구로 삼는 기준이 바로 어머니에게 있다.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친구, 남자친구를 사귄다.
심지어 결혼 대상자까지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남자를 찾는다.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여자들 간의 고부 갈등이 있다.
서양에는 고부갈등은 별로 보이지 않고, 대신 장서 갈등이 엿보인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와 딸 간의 동체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서, 딸이 자기가 사랑할 남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좋아할 남자를 찾아 결혼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딸을 사로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는 때 맞춰 김치 담가 갖다주고, 고기를 재서 갖다 준다.
현관입구 비밀번호는 어머니에게 공유되어 있어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허락받지 않고 딸의 집을 들락거릴 수 있다.
어머니가 딸의 외모, 옷차림, 체중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간섭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심지어 어머니는 딸의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조언을 한다.
어머니는 부부간에 갈등을 부추기기도 하고, 이혼을 종용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사위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머니가 딸의 부부관계에 불화를 조성하고 일방적으로 나서서 딸을 이혼시키기는 상황까지 이끄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은 여성이 어머니와의 동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은 계속 모성성만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 모성성을 많이 사용해 왔으며, 또한 신체적으로는 히스테리화되어 남성성을 많이 사용해 왔다.
중년기가 되면 여성은 이러한 모성성과 남성성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여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여성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소해하며 매우 낯설어한다.
칼융은 중년기 여성들 중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 개인적인 유대감, 에로스적인 요구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 이에서 도망치려는 사람이 많음을 지적한다.
어머니와의 동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성일수록 에로스적인 요구가 귀찮아지고 모성성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가족끼리 무슨 스킨 쉽이야?
그리하여 sexless 부부가 탄생한다.
그녀는 오랜 세월 어머니와 융합된 삶을 살면서 모성성에 압도되었고, 히스테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어 남성적 신체 관념을 가지고 있어 성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익숙한 삷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라는 요구를 받는 것이다.
결혼 후에도 어머니와의 동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은 모성성의 요구를 많이 받게 된다.
C라는 여성은 결혼 13년 차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으며, sexless 부부가 된 지는 8년이 넘었다.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온몸에 배어 있어 누가 봐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다.
외모가 매우 아름답고 우아해 보이지만 누가 봐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섹시하다는 느낌보다는 전통적인 조선 여성 어머니의 품위를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다.
C가 다음과 같은 꿈을 꿨다.
한 밤 중에 절친인 A가 요강에 똥을 넘치도록 싸는데 요강에 넘쳐 엉덩이에 똥이 묻어 있는 것도
모른 채 졸고 있다. A가 갑자기 확 일어나는데, C는 A의 벗은 몸에서 똥이 묻은 성기가 확 눈에 들어와 성적인 느낌에 압도되어 그 순간 잠이 깼다.
이 꿈에서 A는 꿈 주인인 C의 그림자이다.
A가 졸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여성성이 졸고 있다는 뜻이다.
똥을 요강 넘치도록 싼다는 것은 항문기의 과도함이며, 성기의 강렬한 인상은 그동안 외면해 온 부부 성생활에 대한 느낌이다.
이 꿈은 잠재적 내용과 외현적 내용이 반대로 나타나는데, C의 발현되어야 할 성기적 에로스가 억압되어 있어 성기단계의 이전 단계인 항문기 에로스의 과다함을 요강이 넘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꿈에서 C의 성기적 에로스는 항문기적 에로스로, 즉 배설물로 허비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여성 내담자 중에는 청소를 일절 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몇몇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남성에게 별로 나타나지 않는데,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남성들 중에도 자기 방을 잘 치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여성에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어떤 청소녀의 경우, 그 어머니의 말을 들어 보면, '딸의 방은 어머니가 아무리 치워줘도 1주일만 지나면 온통 쓰레기장이 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직장 여성은 홀로 기거하는 15평 아파트에는 온갖 짐과 책, 가재도구 등이 모든 바닥을 다 뒤덮어버린다고 말한다.
그녀는 휴일이 되어 큰 마음먹고 방을 치우고 싶어도 그 집을 치울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늘 자기 누울 공간정도만 확보하며 하루 종일 누워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들은 친구들이 모여서 그녀의 집을 한번 청소해 줘 봤지만, 다시 어지러워지는 데에는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제는 그런 상태가 편하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황창현 신부의 강의 중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가 60을 넘으면 다 깡패가 되더라."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사람이 바로 60대 여성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무적이다.
제주도에 잠시 집을 구해 살고 있는 나의 내담자가 겪은 일이다.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 60대 권사님 집사님 8명이 얼마전에 제주도로 와서 2주간 머물고 갔다고 한다.
이들은 마치 10대의 못 말리는 청소년처럼, 자고 나면 이불도 안 개고, 이불 위를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다니고, 밥을 해 먹고는 설거지하는 사람이 없어 다음 식사 때 그릇이 없으니까 '외식하자' 라며 우르르 나가서 외식을 하고 들오온다.
외식한 후에도 다음 식사를 위해 설거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심지어 컵으로 정수기 물을 마신 후 컵을 다 쓰고 나니까, 씻을 생각하는 사람 한사람이 없어 생수를 박스채로 사다 놓고 물을 마신다.
세수한 후에는 수건을 아무렇게나 놔둬서 누구 것인지 알지 못해 수건도 사 와서 쓰는 해프닝도 있었다 한다.
함께 식사하는 식탁에 앉아서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것을 빤히 보면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말리고, 누구는 식탁에 앉아 화장을 하고, 누구는 밥을 먹고 있고 등등...
이런 여성들은 왜 이러는가?
이런 여성은 매우 독특한 심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모성성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그렇다고 여성성을 찾은 것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상태에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남성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태도, 즉 모성성, 여성성 그리고 히스테리화된 남성화 중 모성성도 버리고 여성성에도 근접하지 못한 채 남성화된 상태로 머물러 버린 것이다.
만일 젊은 여성이 이런 상태라고 하면, 칼융의 지적대로 다음의 두 가지 어려움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자궁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저항이다.
이 저항은 생리불순, 잉태의 어려움, 임신에 대한 두려움, 임신 중의 출혈, 조산, 임신 중의 심한 입덧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들은 그녀가 모성성을 발휘하는 데에 무의식적 저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 불안정과 갈등을 신체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다.
여기에는 딸로서 어머니에 대한 시기심이나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강한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둘째, 물질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저항이다.
이 저항은 대상들과의 관계에서 인내심이 없고, 음식 그릇이나 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없으며, 옷도 잘 다루지 못한다.
물질로서 어머니는 일상생활에서의 모성 역할을 상징한다.
이는 그녀가 일상적인 물리적 활동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요리도 못하고, 집안일을 잘하지 못하게 되며, 살림을 잘 살지 못한다.
집안을 관리하거나 남편이 월급을 이런 아내에게 맡기면 아무런 계획성 없이 펑펑 써 버려서 남편이 아내를 믿고 가정 경제권을 넘겨줄 수가 없다.(인터넷 쇼핑 중독도 바로 같은 범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딸이 차라리 어머니와의 동체성이라면, 그나마 엄마를 닮아서 집안 일도 잘할 수 있고, 요리도 잘하고, 아기를 잘 키워내는 등 엄마로서의 역할, 주방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와 분리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집안일을 잘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집안이 엉망이 되고, 온 집을 치우지 못해 집안을 온통 쓰레기 통으로 만들어 버린다.
모성성도 여성성도 없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반포의 이레마을에 살았던 프랑스 부인의 사례이다.
그녀는 모성성이 없어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아기는 그냥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기를 낳아 냉동실에 얼려 죽여 버렸다.
수사결과, 냉동실에는 영아 사체 2구가 발견되었고, DNA감사 결과 친자녀로 밝혀졌다.
수사관들이 그녀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집은 발 디딜 곳이 없이 온통 쓰레기로 바닥을 덮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