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건국전쟁 스토리
내가 건국전쟁(1)에서, 좌파에서도 이승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
그런데 영화, <건국전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바로 황현필 국사 강사이다.
영화에서는 '한강 인도교 폭파, 민간이 희생자 없었다.'라고 말한다.
황현필은 국방부 공문자료를 제시하면서, 한강인도교 폭파 당시 민간이 500명에서 800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기록은 '한강 인도교 폭파 책임자로 사형당한 최창식 관련 법정기록'에서 인용되었다.
'한강 인도교 폭파 책임자로 사형당한 최창식 관련 법적 기록. 일반 시민에게 주지 시킨 후에 후퇴 피난시킨 후 끊어야 할 터인데 그러한 조치가 없이 실행한 건 실책이었다.'
그 자료는 한강 인도교 위에서 죽은 사람이 최소한 500 ~800명으로 본다.
그 자료는 폭파 전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었다고 증언한다.
황현필은 Korea Times를 인용하면서,
"죽은 자와 죽어가는 시체가 다리 위에서 흩어져 있고 민간인과 군인도 전체 중 수천 명이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채로 뒤로 돌진하는 생지옥 아비규환이 된 채 쓰러진 피난민들이...."
황현필은 또한 한강 인도교 폭파 현장 표지 동판도 보여준다.
그 동판에도 '정부의 일방적인 교량 폭파로 피난민 8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전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가?
두 이야기 모두 사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해당된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나는 양측 모두의 말을 믿는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스토리'에 해당한다.
일단 두 가지 스토리가 하나의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검증과정과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의 사건에 어떻게 두 가지 스토리가 나올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이런 경우가 수도 없이 일어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어떻게 두 가지 사실 증언이 나올 수 있는가?
그만큼 이 사회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장차 이 사회가 통합이 되는 시점이 오면, 그때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하나의 스토리로 모아질 것이다.
사회가 통합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날 같이 좌 우 양진영이 상호 대치 상태를 극복하고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을 내어 놓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양 진영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적인 자료를 내어 놓는다고 해서 절대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다큐멘터리가 역사적 사실을 유기적으로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따른 편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양 진영에서 서로 다른 기록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를 각자 편집하여 잘라낸 틈 사이를 열어 빠진 부분을 메워가고, 연결해 가며 합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진영의 적극적인 대화와 의사소통, 그리고 상호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어머니와 딸의 싸움'이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사람의 기억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어머니와 딸의 싸움을 끝이 나지 않는다.
상담자는 그 두 사람이 치료가 되면서 결국 하나의 스토리로 모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사건에 대한 두 사람의 '기억의 차이'는 '시간의 차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어머니는 현재시점에서 기억을 더듬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딸은 과거의 기억을 간직해 뒀다가 현재 시점에서 터뜨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두 사람 사이에 시간 차이를 좁혀 주면 기억의 차이에 의한 갈등은 해소되어 가는 것이다.
대개 딸은 어느 시점에서 어머니로부터 상처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보복하기 위해 과거의 그 시점에서 특정 사건을 기억해 둔다.
딸이 10살 때 상처받은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으로 기억해 두면서 감정을 거기에 남겨두는 것이다.
이런 딸이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건 속에서 그때그때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 감정을 남겨 둔다면, 나중에는 현실을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감정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인데, 감정 에너지를 과거의 사건에 두고 왔기 때문에 현실을 정상적으로 살아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딸은 우울증, 조현병, 환청 등의 증상으로 시달릴 수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른 기억은 부부간에도 왕왕 일어난다.
부부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싸우게 되고, 정반대로, 싸우게 되면서 다른 기억 때문에 더 큰 싸움으로 비화된다.
부부가 평소 잘 지내다가, 어떤 갈등이 발생하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부부는 전혀 다른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각자는 자신의 배우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
'아니, 저 사람은 그 일에 대해 왜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같은 사건을 두고 왜 저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지?'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사는 세월이 많을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갈수록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기억 방식이 얼마나 달랐으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용어가 나왔겠는가?
보통 남자는 이성으로 기억을 하지만, 여자는 감정으로 그리고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저장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저장되는 내용도 서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좌파와 우파가 갈라지면서 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방식이 달라지듯이, 각 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싸움은 결국,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는 도대체 내게 그렇게 밖에 못했느냐
는 것이다.
자녀는 관계의 기원을 따지는 <건국전쟁>을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좌파와 우파로 갈라지면서 사회에 분열만 가져다주면서 발달을 저해해 왔다면 사회 조현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좌와 우로 나누어지면서 그런 사회적 조현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분열로 인해 사회에는 발달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가 625 이후 최빈곤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 것도 어쩌면 분단국가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치의 발달, 경제 발달 또한 좌와 우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
자녀들이 부모와 싸우는 시점은 부모와 존재가 확연하게 갈라지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그 사건들에 대해 기억이 달라지면서부터이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싸워내지 않으면, 계속해서 부모에게 예속화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녀는 더 이상 부모에게 예속화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독립을 선언하는 방법이 바로 부모와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다른 기억 때문에 갈등을 심화해 나갈 필요는 없다.
자녀의 갈등 유발은 부모님과 살아가는 존재 차원이 달라짐을 선언하는 것이고, 더 이상 부모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겠다는 발전적 이별을 선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융합되어 있던 시점, 이 시점이야 말로 자녀로서는 바로 '나'라는 나라를 건국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와 <건국전쟁>을 치름으로써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부간 갈등 원인은 바로 결혼 자체에 있다.
대개 부부는 결혼 전 관계와 결혼 후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부부관계의 기원이 되는 결혼이라는 <건국전쟁>은 일평생 갈등의 주제가 된다.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에게서 발견했던 한 가지의 매력 포인트 때문에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는 그 매력 포인트가 갈등의 포인트가 된다.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에게 반했던 바로 그 포인트 때문에 결혼 후에는 늘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왜 저 사람하고 결혼을 했지?"
연애 때나 결혼하는 시점에서는 상대방에게 정신을 빼앗겨 생각하지 못했던 이슈가 결혼한 후에야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종의 결혼 기원 관련 <건국전쟁>이다.
어떤 여성은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후회가 되면서,
"내 청춘 돌려도"
라며 울부짖는다.
내가 당신하고 결혼해서 내 인생 망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하소연하기를 포기한 여성조차도,
"내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된 거야."
라며 자포자기하며 결혼의 의미와 인생의 의미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서도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훨씬 낫다.
결국 이렇게 사나, 또는 저렇게 싸우나 어떤 방식의 삶을 택하건 부부간 결혼 자체에 대한 <건국전쟁>은 피할 수 없다.
애도의 부재
이것은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국민 각자가 과거의 사건에 대해 그때그때 잘 정리하지 못해 과거의 사건으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사회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애도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애도를 하게 되면서, 역사적 사건들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떠나보내게 되면 그 다음에는 사회는 제대로된 발달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는 과거의 사건에 대해 애도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사회에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이 시점에 사회적 화두로 던져진 이유는, 이제야 말로 과거를 애도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좌와 우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유는, 건국전쟁 당시 좌와 우를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이 둘을 통합하지 못한 이유 역시 과거를 제대로 애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형태는 1940~50년대, 정치 유아기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1980년대의 운동권 세력이 첨단 과학 혁명을 앞두고 있는 사회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뒷덜미를 잡고 있는 이유가 바로 과거를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국전쟁>은 보수주의자들의 과거 역사에 대한 애도를 하고자 함이다.
그들은 그 영화를 보고 한바탕 크게 울면서 그 시대를 떠나보내야 한다.
이제 진보진영에서도 <건국전쟁>을 만들어 애도할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더 이상 과거의 역사적 패턴을 반복하는 일 없이 서로 화합하여 한 차원 높은 나라로 격상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통합을 통해 최고의 선진국이 된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일랜드이다.
그 나라는 보수 정치권과 좌파 노조와 극적인 타협을 하게 되면서, 지금의 GDP 11만 불을 달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이런 꿈을 꿀 수 있다.
단,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과거를 애도해야만 가능하다.